영어 '돌림병'

    기고 / 시민일보 / 2006-03-30 18:5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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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대로 우리말 살리는 겨레모임 공동대표
    {ILINK:1} 요즘 한국은 영어 돌림병을 심하게 앓고 있다. 어린 아이는 말할 거 없고, 그 어버이와 교육 정책 담당자까지 이 돌림병에 시달리고 있다. 이 돌림병은 가정을 무너지게 하고, 교육을 망치고, 나라와 겨레말과 얼까지 죽게 만들 엄청나게 무서운 정신병이다.
    그런데 이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모르는 국민이 많고, 오히려 정부는 이 병을 더 앓게 부채질하고 있다. 초등학교 1학년부터 영어를 가르친다고 하고, 특정지역에서는 수학과 과학이나 역사까지 영어로 수업하는 ‘몰입 교육’이란 걸 하겠단다.
    이 병은 이 나라 지배자들인 정부와 경제단체, 학자, 정치인과 언론이 퍼트리고 더욱 심하게 만들었다. 하루 빨리 이 위기에서 벗어날 길을 찾고 온 국민이 힘을 모아 이 망국병을 고쳐야겠다.
    이 영어 돌림병은 언제 생겼고 누가 퍼트렸나?
    이 돌림병은 15년 전쯤 소련이 무너지고 미국이 세계의 최강국이 되면서, 미국이 인터넷통신을 시작하고 온 세계에 퍼트리면서 미국말 세력이 팽창해 생겼지만, 우리나라에 널리 퍼지기 시작한 것은 12년 전 김영삼정부 때부터다. 김영삼 정부는 국제화 세계화를 외치면서 한자와 영어 조기교육을 한다고 떠들었다.
    김영삼 정부는 영어교육만 강조하면서 얼빠진 세계화를 외치다가 1997년에 국제통화기금의 경제 식민지가 되었다. 그리고 1998년 전경련 산하단체인 자유기업원(원장 공병호)과 소설가 복거일이 영어를 공용어로 해야 한다고 떠들으니 김대중 정부도 그 말에 귀를 기울인다. 정경유착과 부정부패로 나라살림을 망친 경제단체와 정치인이 이제는 겨레말과 얼까지 죽이려 나선 것이다. 그리고 김대중 정부는 2001년 5월15일, 민주당 제주도 국제자유도시 정책기획단(단장 이해찬 : 전 국무총리)이 제주도를 국제자유도시로 만들고 영어를 공용어로 채택해야 한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내놓자 현실성을 검토하겠다고 하였다. 영어암으로 바뀌는 큰 계기가 된다.
    영어 조기교육이 시행되고 그 부작용으로 영어 돌림병이 생겼고, 영어를 공용어로 한다고 떠들면서 개인은 말할 거 없고 나라와 교육이 이 병에 더욱 시달리게 된다. 거기다가 지방자치단체까지 수백억원씩 들여 영어 마을을 만들고, 교육부는 불난 집에 기름 붓는 격으로 초등학교 1학년부터 영어 공부를 시키겠다고 발표까지 한다.
    정부와 공무원, 경제단체와 일류대학, 영어 학원과 교재 업자들이 이 영어 돌림병을 만들고 조선일보 같은 언론이 퍼트리고 있다. 이 가운데 교육부가 이 돌림병을 일으키고 퍼트리는 원흉이다.
    김영삼 정부 때 영어 조기교육 정책을 반대했던 이야기
    김영삼 정부가 국제화를 외치며 한자 섬기기에 나서더니 세계화 하겠다면서 초등학교 3학년부터 영어 조기교육을 하겠다고 나섰다. 나는 정부에 절대로 그런 식으로 시행해서는 안 된다고 강력하게 건의하고 반대운동을 했다. 그러나 정부는 이 문제에 대한 공청회도 열지 않고 충분한 설명도 없이 그대로 결정하려고 했다. 그래서 어떻게든 막아보겠다고 여기저기 글을 쓰고 토론회라도 열자고 애타게 호소했다.
    그때 마침 조선일보 교열부 전태수 기자가 “조선일보 교열부에서 함께 일하는 후배 기자가 이대로 선생이 추진하는 영어 조기교육문제 토론회 경비를 대 주겠다고 하니 만나보겠느냐?”고 전화를 했다. 전태수 기자는, 조선일보가 한자는 국제 공통 글자라면서 한자 복권운동을 강력하게 할 때 조선일보 노조신문에 그를 반대하는 글을 써서 우리와 함께 그 짓을 못하게 한 고마운 분이었다.
    또 많은 분들이 그 정책이 잘못된 것이고 국어 교육과 다른 교육을 망칠 정책임을 알려주고 사교육비를 늘리는 등 부작용이 심할 것이니 더 연구 검토하고 시행할 것을 강력하게 주장했다. 그러나 무엇에 쫓기는지 정부는 제대로 된 공청회도 하지 않고 서둘러 그 정책을 결정하고 발표했다.
    영어 조기교육으로 잃은 것과 얻은 것
    영어 조기교육은 내가 내다본 대로 엄청난 돈과 노력과 시간을 빼앗은 것에 비해 얻는 게 별로 없고 잃는 건 많았다.
    도대체 교육부장관과 영어 선생들은 무엇 하기에 지방자치단체장까지 영어 교육에 수백억원을 들여서 ‘영어 마을’을 만들어 영어 교육에 나선단 말인가? 왜 집집마다 넉넉지 않은 살림에 영어 학원과 영어 연수에 돈을 바쳐야 한단 말인가?
    영어 조기교육 확대와 영어 공용어 바람을 막아야 한다.
    많은 이들이 이제 영어 조기교육은 세상의 큰 흐름이라 어쩔 수 없다고 한다.
    절대로 그렇지 않다. 영어 조기교육이 모든 교육문제를 푸는 처방전이 아니고 교육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드는 근원이다.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많은 잘못된 정책이다.
    교육부는 ‘영어 교육 5개년 계획’을 세우고 엄청난 돈과 노력을 들인다고 한다. 그런데 국어를 살리고 빛내려는 정책과 계획은 보이지 않고 예산도 영어에 비하면 쥐꼬리만하다. 참으로 딱하다. 한글학회와 어문회 같은 말글 관련 모임과 국어 정책을 세우고 수행하는 국어원은 무엇을 하는지 모르겠다. 말글 학자와 국어단체와 말글 관련 직업을 가진 국문과 교수와 국어 교사들이라도 똘똘 뭉쳐서 영어 조기교육 확대와 영어 공용어 바람을 막아야겠다. 그리고 우리말을 살리고 빛내서 후손에게 물려주자.
    (이 글은 신기남 의원 홈페이지 중 ‘시선의 권리’에 게재돼 있습니다.)

    <위 글은 시민일보 3월 31일자 오피니언 5면에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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