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룡 전 문광부 차관께

    기고 / 시민일보 / 2006-08-16 19:4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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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권 (한나라당 의원)
    {ILINK:1} 찌는 듯한 더위에 마음고생까지 겹쳐, 어떻게 지내십니까? 대문에서 기자를 맞은 유차관이 “이제 그만 하자, 제발 좀 봐 달라”고 하소연하더라는 기사를 읽으면서, 그 착잡하고 당혹스런 심사를 짚어볼 수 있었습니다.

    제가 유 차관께 처음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지난 5월 말입니다. 문광부 직원들이 ‘사랑의 헌혈행사’를 가졌다는 뉴스를 접하고부터 였습니다.

    기사를 통해 문광부 안의 가톨릭, 불교, 개신교 직원모임이 이 행사를 공동으로 마련한 점, 유 차관이 종종 헌혈을 한다는 사실도 알게 됐지요. 직원들 사이에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는 모습도 보기 좋았습니다.

    행정고시를 통해 사무관에 임용된 후 문화산업국장, 정책홍보관리실장을 거쳐 차관에 오른 이력, 토론회를 통한 정책전문가로서의 면모를 유심히 보았습니다. ‘문화관광과 투자유치’ 스포츠 여가산업을 다룬 ‘꿈을 꾸는 사람들이 세상을 바꾼다’ 등의 글을 특히 관심을 가지고 읽었습니다. FTA협상 문제나 국방, 외교 등의 현안을 두고 우왕좌왕하는 현실이 현 정부의 ‘전문가 부재’에 기인한 바 크다는 생각이기에, 유 차관은 ‘보배’처럼 돋보였습니다.

    제가 ‘팬’을 자처하게 된 것은, 전문성이 아니라 유 차관의 ‘소신’ 때문입니다. e-스포츠 육성기반을 닦기 위해 열성을 다하는 한편, 사행성 도박게임을 규제하기 위해 안간힘을 기울인 그 소신 말입니다.

    유 차관은 지난 5월17일 기자브리핑을 갖고 ‘사행성 게임과의 전투개시’를 선언했었죠. 민간 기구인 영상물등급위원회에는 ‘바다 OOO’, ‘황O성’ 같은 사행성 게임 불허를 끈질기게 요구했으나 ‘묵살’됐다지요. 보통의 경우와 비교하면 마치 민·관의 역할이 바뀐 듯 황당한 일입니다. 유 차관이 우려했던 대로, 그 게임들은 ‘시장’을 휩쓸면서 숱한 ‘게임 파산자’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유 차관이 영상물등급위원회에 사행성 성인오락기의 위험성을 세 차례나 경고했었다는 ‘뒷얘기’를 언론에 공개한 것을 보고는, 오죽 답답했으면 저럴까 싶었습니다.

    그런 차에 듣게 된 유 차관의 경질소식은 정말 뜻밖이었습니다. 차관직은 정무직이라지만 ‘내부 승진’ 케이스였고, 취임한 지 불과 6개월 만에 경질하면서도 인사배경을 “정해진 절차와 기준을 지켰다”고 동문서답하는 청와대가 궁색하게만 보였습니다.

    청와대가 다시 입을 열면서 ‘드러난’ 유 차관의 ‘새로운 면모’는 저를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습니다. 그 주장에 따르면 유차관은 맡겨진 직무를 나몰라라 한 게으른 공무원이고, 신문유통원이 직원들 급료조차 주지 못하고 부도위기에 몰렸는데도 수수방관한 무능한 공무원이더군요. 청와대 수석과 홍보기획비서관의 인사 압력을 거부한 죄, 민정수석실의 비리조사를 받고도 순순히 물러나지 않고 버틴 죄, 이런 괘씸죄가 아니라면, 유차관은 입이 열이라도 할 말이 없는 셈이지요. 하지만 유 차관이 굳이 입을 열 필요도 없는 것 같습니다. 유 차관을 대신한 무수한 입이 언론과 인터넷을 달구고 있으니 말입니다.

    문제가 된 아리랑 TV 부사장직은, 청와대 홍보수석이 술자리에서 고향 후배에게 “해 볼 생각 있냐?”고 선 제의한 다음 유 차관에게 부탁을 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부탁을 들어주기는 커녕 부사장 자리를 아예 없애버린 유 차관에게 앙갚음 차원의 비리조사를 시켰는지 여부를 따지는 것은 무의미합니다. 유 차관이 문광부의 다면평가에서 1위를 차지한 유능한 차관이라든지, 문광부 직원들이 ‘우상이 떠나갔다’고 애석해 하고 있다는 사실을 내세울 것도 없습니다. 홍보수석실 관계자가 유 차관에게 전화를 걸어 “배 째 달라는 말씀이지요? 예, 째 드리지요”라고 했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그 말 안에 모든 답이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옛 일 한두 가지를 상기해 보려고 합니다. 그 첫 째는 이문옥 전 감사관 사건입니다. 1990년 당시 23개 기업의 비업무용 토지 실태와 한창 진행하던 조사가 재벌들의 로비로 중단된 사실을 폭로했던 일 말입니다.

    1990년 구속 당시 검찰은 그를 ‘인사불만에 따른 기밀누설자’로 폄하했습니다. 그러나 6년만에 이 감사관은 대법원의 무죄 판결을 받아 명예를 회복했습니다. 그 일이 계기가 돼 내부 고발자 모임인 ‘공익제보자를 위한 모임’이 발족했고 부패행위 신고자 보호 보상을 위한 ‘부패방지법’이 제정됐습니다.

    관권선거를 폭로했던 한준수 전 연기군수, 보안사의 민간인 사찰을 폭로했던 윤석양 이병, 군 부재자 부정투표를 폭로한 이지문 중위도 있습니다. 이 중위 역시 3년간에 걸친 재판 끝에 대법원의 파면취소처분과 함께 중위신분으로 명예전역한 바 있습니다.

    배신자로 낙인 찍혀 ‘조직의 쓴맛’을 보았고, 한준수 전 군수의 경우는 그가 고발한 사람보다 오히려 중형을 받기도 했습니다. 윤 이병은 기자회견장에 나간 행위가 ‘특수 군무이탈’로 간주되어 2년의 실형을 살았지요. 이 중위도 기자회견장에서 체포되어 이등병으로 강등과 함께 파면 당하는 수모를 겪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만약 불의에 순응하고 침묵했다면, 우리 사회는 그 시절에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한 채 지금도 부정과 압제 아래 살고 있을 것입니다. 청탁이나 압력에 ‘아니오’라고 분명하게 외치는 것은 부정과 불의에 오염된 우리 사회를 깨우치는 죽비소리입니다.

    유 차관의 고통과 희생으로, 우리 후손들이 살아갈 이 나라가 조금씩 바로 서고 맑아질 것을 믿습니다. 부디 몸 보중하시고,힘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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