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년 묵은 홰나무(下)

    기고 / 시민일보 / 2006-11-05 16:3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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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나라당 맹형규 의원
    허리를 반이나 끊긴 홰나무는 풀 위에 누운 나무꾼들을 보았습니다. 도끼를 머리맡에 놓고 누운 애꾸눈이 나무꾼의 머리에는 뜨거운 햇살이 내려쪼였습니다.

    홰나무는 애꾸눈이 나무꾼을 불쌍히 생각하고 그 해를 가려 주려 하였으나 홰나무는 이미 허리를 반이나 끊기어서 온몸이 아파서 팔을 쳐들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도 인정이 많은 홰나무는 억지로 팔을 벌려 코 고는 애꾸의 얼굴을 가려 주었습니다.

    “아, 너무 잤다. 자들 일어나게, 어!”하고 애꾸는 풀 위에 자는 동무들을 흔들어 깨웠습니다.
    나무꾼들은 또 도끼질을 하였습니다.

    “애, 돌이하고 부성일랑 나무에 올라라”하며 애꾸눈이 허리에 찼던 바를 두 젊은 사람에게 주었습니다. 이 두 사람은 나무 위에 올라 나무 허리를 잡아매었습니다.

    “모두 위로들 올라가서 이 줄을 잡아들 당기게”하고 애꾸눈이가 말하니 모두 줄을 잡고 저쪽으로 올라갔습니다.

    애꾸눈이와 얼굴에 수염투성인 나무꾼이 도끼를 들어 힘껏 홰나무 밑을 찍으니 홰나무는 무서운 소리 슬픈 울음을 내며 풀 위에 꺼꾸러졌습니다.

    제 집에 새끼를 품고 있던 산비둘기 한 쌍이 놀라서 새빨갛게 물들인 저녁 하늘로 달아났습니다. 한참 동안을 흔들거리던 홰나무 가지들도 얼마를 지나니까 잠잠히 죽었습니다.

    “아, 참 정신이 산듯하여! 오늘 밤부터는 맘대로 별빛을 볼 수가 있겠구나”하고 등롱꽃은 말하였습니다.
    “인제 나도 보고 싶던 달을 맘껏 볼 수가 있네”들국화가 말하였습니다.

    “인제야 답답하던 가슴이 시원한데”이 말은 싸리나무의 말이었습니다.

    나무꾼들은 홰나무 가지들을 다 치고는 아래로 굴렸습니다. 홰나무는 떽떼굴 굴러 산 밑으로 내려갔습니다.

    “에헤헤, 아하하” 싸리, 들국화, 등롱꽃 들은 손뼉을 치며 웃었습니다.

    “천 년 묵은 할아범 이제야 죽었구나, 아하하.” 그러나 홰나무가 골짜기로 내려가기 전에 가지 끝에서 작은 씨를 풀 위에 뿌리고 간 것은 아무도 몰랐습니다.

    홰나무를 벤 뒤로는 산이 갑자기 넓어진 것 같았습니다. 총총히 박힌 별들이 반짝반짝 보입니다. 달빛이 풀 위에 환하게 비쳤습니다.

    “자, 인제부터 우리네 세상이다”하고 등롱꽃, 싸리꽃, 들국화, 바위옷 들은 풀 위에 모여 앉아서 달을 보며 별을 노래하며 이슬로 빚은 술을 마시며 춤을 추기 시작하였습니다.

    너무 술 먹고 춤추다가 지쳐서 모두 풀 위에 쓰러져 잠을 잤습니다. 달은 흐려집니다. 바람이 세차게 불어옵니다.
    이 바람에 들국화와 싸리꽃 들은 잠을 깼습니다. 잠을 깼을 그때는 벼락이 풀 위에 떨어지고 무서운 천둥 소리가 났습니다.

    들국화, 등롱꽃, 싸리꽃 들은 깜짝 놀라 홰나무 그늘로 들어가 숨으려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곳에는 홰나무는 없었습니다.

    날이 샌 때 국화, 싸리꽃, 등롱꽃 들은 어젯밤 밤바람과 모진 비에 잎사귀는 떨어지고 허리는 짓이겨지고 꽃은 거의 다 떨어져서 숨만 겨우 붙었습니다.

    그러나 작은 홰나무 싹은 풀 속에 너더댓 치 솟아 나왔습니다.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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