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격, 세상 속으로

    기고 / 시민일보 / 2006-11-14 17:4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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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나라당 맹형규 의원
    남자라면 모름지기 군대에 갔다 와야 사람이 된다고 했던가. 군복무를 끝내고 다시 학교로 돌아온 나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당시 애인이었던 아내는 이미 졸업을 해서 사회인이 되어 있어 더 이상 태릉으로 출근할 일도 없었지만 무엇보다 ‘내가 이러면 안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이런 경우를 두고 철이 났다거나 사람이 되었다고 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일단 그동안 살던 할아버지 품을 떠나 서강에 방 한 칸을 얻어 나왔다. 할아버지는 집 떠나는 손자를 몹시 서운해하셨지만 내겐 해방이나 다름없었다. 등굣길의 행선지도 태릉에서 도서관으로 바뀌었다. 어찌나 열심히 공부를 했던지 복학한 첫 학기에 장학금을 받았다. 개과천선의 대가로 받은 성과물치고는 꽤 짭짤했다. 집에는 이 사실을 숨긴 채 받은 장학금으로 아내의 코트를 샀다. 내게 받은 첫 선물이어서 아내는 요즘도 그 코트 이야기를 꺼낼 때가 있다.

    요즘도 그렇지만 캠퍼스란 본래 조용한 날이 없는 법이다. 4학년이 되어서는 전국적으로 교련 반대 운동이 벌어졌는데, 우리 학교라고 예외가 될 수는 없었다. 격렬한 데모가 연일 일어났다.

    그러던 어느 날, 도서관에서 공부하던 친구 몇몇이 후배들이 저렇게 열심히 교련 반대 시위를 하는데 우리도 뭔가 해야 하지 않느냐는 제안을 했다. 대찬성이었다.

    계획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그리고 그날 저녁, 야밤을 이용해 실행에 옮겼다. 주변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우리는 살금살금 학교의 상징물인 독수리상으로 다가갔다. 손에는 누군가 구해 온 붉은 페인트 한 통이 들려 있었다. 우리는 독수리를 떠받친 기둥에 붉은 페인트로 ‘교련 반대’라는 네 글자를 큼지막하게 써놓고는 줄행랑을 쳤다.

    이튿날 학교가 발칵 뒤집혔다. 어떻게 알았는지 형사들이 도서관까지 들이닥쳤다. 도망을 쳐서 나왔지만 마땅히 갈 곳이 없던 나는 이미 약혼을 한 아내의 원효로 집으로 무조건 쳐들어가서 일이 잠잠해질 때까지 문간방에 숨어 살았다. 아마 누군가의 도움으로 일이 해결되었을 테지만 숨어 사는 몇 날 동안은 참으로 죽을 맛이었다.

    ‘취재란 전쟁이다.’

    견습기자 시절부터 귀가 따갑도록 들은 말이다. 실제로 기자라는 딱지를 단 순간부터 그만두는 순간까지 나는 한순간도 긴장을 풀어 본 적이 없다. 언제 어디서 총알이 날아와 박힐지 모르는 전쟁터처럼 기사거리 역시 언제 어디에서 튀어나올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자다가도 일이 생기면 뛰쳐나가야 하고 기사거리가 없으면 찾아 헤매야 했다. 남들보다 일찍 발견하면 특종 기자가 되고 남보다 한 발이라도 늦으면 낙종 기자가 되었다. 특종과 낙종은 더도 덜도 아닌 딱 한 발 차이다. 천성이 경쟁을 좋아하고 활동적인 내게는 이만큼 궁합이 맞는 직업도 없었다.

    견습 생활을 끝내고 나는 정치부 기자로 배정되었다. 신출내기 기자였으면서도 일주일에 특종 한두 개씩은 꼭 터뜨렸다.

    특종의 비결은 두 가지였다. 우선 신발이 닳도록 돌아다녔다. 제일 무식한 방법이었지만 제일 정직한 방법이기도 했다. 이제 막 견습 딱지를 뗀 기자에게 “여기 있소” 하며 기사가 될 만한 소스를 가져다 줄 사람이 아무도 없으리라는 것은 너무도 자명했다. 결론은 하나. 그런 사람을 찾아다니는 일이었다. 신발이 닳도록. 둘째는 노루목을 찾아 지키는 일이었다. 노루가 다니는 길이 있듯이 정보가 다니는 길도 있는 법이다. 노루를 잡으려면 그 길목 지킬 줄도 알아야 하고 적절한 시기에 쏘아야 하듯이 정보도 길목을 지키고 적절히 낚아채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시작부터 내 경쟁 상대는 동기들이 아니라 선배였다. 그리고 나중에는 더 나은 기사를 유지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열심히, 집요하게, 지독하게……. 예비 ‘맹다구’는 그렇게 키워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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