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경복궁 광화문 밖의 강의(講義)는 이쯤에서 마감을 하고 궁궐 안쪽으로 들어가야겠다. 그런데 막상 입궐하려니까 광화문 해치석상이 갑자기 내 발길을 묶으려하는 것이 아닌가!
“해치는 영물(靈物)인지라… 음흉한 간신이나 반역이 몰래 궁궐에 들어오면 그 자들을 영락없이 가려낸다는데!”
여하튼 나는 그 해치석상한테 잔뜩 겁에 질렸는지라 그 거동(擧動)을 살폈다. 그런데 기이한 일이 벌어졌다. 그 몸뚱이가 광적(狂的)으로 둔갑을 하는 게 아닌가!
‘마치 눈매는 독수리가 굶주린 것 같고… 표정(表情)은 미친개가 성난 것 같고… 외뿔은 성난 황소의 부러진 뿔 같으니!’
그러나 이 천학의 담력도 만만찮아 결코 그 기세(氣勢)에 주눅 들지 않았다.
“이 사람은 그저 경복궁을 구경 나온 사람이요… 왕실을 해치려는 음흉한 자가 아니라오… 맹세컨대 세상 죄(罪)는 많더라도… 결코 왕실한테는 죄가 없소이다.”
그런 주문(呪文)으로 당당히 대응을 하였더니 그 해치상은 아주 평온해졌다. 잠시 후 정신을 바짝 차려 봤더니 그건 허상(虛像)이었다.
여하튼 기왕에 해치야화를 만났으니 여기서 그걸 확장시켜 설악산의 천불비화(千佛秘話)를 하나 공개하겠다. 그러니까 이 천학이 수년 전 천불동 계곡을 찾았을 때다.
“참으로 내 정신이 혼란하다… 천 분의 부처가 있다는 뜻일 텐데… 혹시 그 길을 잘못 든 게 아닐까?”
때마침 그 곳을 지나던 한 노스님이 이렇게 핀잔을 주는 게 아닌가?
“여기서 아무나 천불(千佛)을 찾을 수 있다면 이미 용화세계(龍華世界)가 왔겠지! 중생들은 지금 무척 혼란하지… 욕심(慾心)들 때문에 허구헛날 서로를 마구니라며 싸우지!”
“만일 선생께서 욕심을 버린다면 저기 저 기암괴석이 모두 부처로 보일게야.”
“선생의 마음을 저 물거울에 비춰봐… 모르기는 몰라도 사악(邪惡)한 마구니들로 가득 차 있을 거야… 그러니까 천불(千佛)은 고사하고 일불(一佛)도 보지 못할 거야!”
바로 중생들은 그 각자의 마음이 부처이니 욕심을 버려야 성불(成佛)한다는 뜻일 거다.
이제부터 답사화두(踏査話頭)를 광화문(光化門)으로 바꾸어야겠다. 흔히 조선의 5대 궁궐로 “경복궁·창덕궁·경희궁·경운궁(덕수궁)·창경궁” 등을 꼽는다. 그러나 정작 그 궁궐의미도 모르고 사용하는 것이 우리 시대의 천객(賤客)들이다.
“궁(宮)은 군왕(君王)과 그 문무백관(文武百官)들이 사용하는 전(殿)·당(堂)과 누(樓)·정(亭) 등을 말하고 궐(闕)은 궁(宮)을 둘러싼 대문·담장(牆)과 그 부대시설을 말하지요.”
“그러니까 근정전·사정전·강녕전 같은 전각은 ‘궁(宮)’이고… 광화문·동십자각·회랑(回廊)같은 것이 ‘궐(闕)’이지요… 그러나 두 개념은 그렇게 확연히 구분해서 쓰질 않고 있어요.”
사실 궁궐문화에 어지간히 정통한 사람도 막상 궁과 궐이 별개라는 사실을 잘 모른다.
“궁궐문양에는 봉황(鳳凰)이 자주 등장하는데 거기서 ‘봉(鳳)’은 수컷이고 ‘황(凰)’은 암컷이지요… 그런데도 봉황새를 그냥 한 마리 새로 잘못 알고 있지요….”
“궁중의상(宮中衣裳)을 말할 때 ‘의(衣)’는 윗저고리이고 ‘상(裳)’은 아래치마인데도 그걸 제대로 알고 쓰는 사람은 별로 없어요.”
솔직히 말하건대 이 천학도 근래까지 그런 무지(無知) 속에 빠져 있었다.
여하튼 이 우학은 그 수치를 보상하기 위해 궁궐 야화 한 토막을 소개하겠다. 바로 광화문 작명논쟁(作名論爭)이 그것이다. 그렇다면 왜 경복궁 정문을 광화문(光化門)이라 했을까?
원래 경복궁 낙성 당시에는 정문(正門)또는 오문(午門)이라 하였는데 1426년 세종 8년에 광화문으로 개명(改名)하였다.
화두의 중심은 바로 광화문 작명배경에서 출발한다.
‘태양의 기운(氣運)이 가장 왕성한 때가 정오(正午)이다… 정문을 오문(午門)이라 한 것은 극성한 남양광(南陽光)을 받아 밝은 정치를 행하려는 소망 때문이다. 그래서 광화문이라 바꾸었다.’
“해치는 영물(靈物)인지라… 음흉한 간신이나 반역이 몰래 궁궐에 들어오면 그 자들을 영락없이 가려낸다는데!”
여하튼 나는 그 해치석상한테 잔뜩 겁에 질렸는지라 그 거동(擧動)을 살폈다. 그런데 기이한 일이 벌어졌다. 그 몸뚱이가 광적(狂的)으로 둔갑을 하는 게 아닌가!
‘마치 눈매는 독수리가 굶주린 것 같고… 표정(表情)은 미친개가 성난 것 같고… 외뿔은 성난 황소의 부러진 뿔 같으니!’
그러나 이 천학의 담력도 만만찮아 결코 그 기세(氣勢)에 주눅 들지 않았다.
“이 사람은 그저 경복궁을 구경 나온 사람이요… 왕실을 해치려는 음흉한 자가 아니라오… 맹세컨대 세상 죄(罪)는 많더라도… 결코 왕실한테는 죄가 없소이다.”
그런 주문(呪文)으로 당당히 대응을 하였더니 그 해치상은 아주 평온해졌다. 잠시 후 정신을 바짝 차려 봤더니 그건 허상(虛像)이었다.
여하튼 기왕에 해치야화를 만났으니 여기서 그걸 확장시켜 설악산의 천불비화(千佛秘話)를 하나 공개하겠다. 그러니까 이 천학이 수년 전 천불동 계곡을 찾았을 때다.
“참으로 내 정신이 혼란하다… 천 분의 부처가 있다는 뜻일 텐데… 혹시 그 길을 잘못 든 게 아닐까?”
때마침 그 곳을 지나던 한 노스님이 이렇게 핀잔을 주는 게 아닌가?
“여기서 아무나 천불(千佛)을 찾을 수 있다면 이미 용화세계(龍華世界)가 왔겠지! 중생들은 지금 무척 혼란하지… 욕심(慾心)들 때문에 허구헛날 서로를 마구니라며 싸우지!”
“만일 선생께서 욕심을 버린다면 저기 저 기암괴석이 모두 부처로 보일게야.”
“선생의 마음을 저 물거울에 비춰봐… 모르기는 몰라도 사악(邪惡)한 마구니들로 가득 차 있을 거야… 그러니까 천불(千佛)은 고사하고 일불(一佛)도 보지 못할 거야!”
바로 중생들은 그 각자의 마음이 부처이니 욕심을 버려야 성불(成佛)한다는 뜻일 거다.
이제부터 답사화두(踏査話頭)를 광화문(光化門)으로 바꾸어야겠다. 흔히 조선의 5대 궁궐로 “경복궁·창덕궁·경희궁·경운궁(덕수궁)·창경궁” 등을 꼽는다. 그러나 정작 그 궁궐의미도 모르고 사용하는 것이 우리 시대의 천객(賤客)들이다.
“궁(宮)은 군왕(君王)과 그 문무백관(文武百官)들이 사용하는 전(殿)·당(堂)과 누(樓)·정(亭) 등을 말하고 궐(闕)은 궁(宮)을 둘러싼 대문·담장(牆)과 그 부대시설을 말하지요.”
“그러니까 근정전·사정전·강녕전 같은 전각은 ‘궁(宮)’이고… 광화문·동십자각·회랑(回廊)같은 것이 ‘궐(闕)’이지요… 그러나 두 개념은 그렇게 확연히 구분해서 쓰질 않고 있어요.”
사실 궁궐문화에 어지간히 정통한 사람도 막상 궁과 궐이 별개라는 사실을 잘 모른다.
“궁궐문양에는 봉황(鳳凰)이 자주 등장하는데 거기서 ‘봉(鳳)’은 수컷이고 ‘황(凰)’은 암컷이지요… 그런데도 봉황새를 그냥 한 마리 새로 잘못 알고 있지요….”
“궁중의상(宮中衣裳)을 말할 때 ‘의(衣)’는 윗저고리이고 ‘상(裳)’은 아래치마인데도 그걸 제대로 알고 쓰는 사람은 별로 없어요.”
솔직히 말하건대 이 천학도 근래까지 그런 무지(無知) 속에 빠져 있었다.
여하튼 이 우학은 그 수치를 보상하기 위해 궁궐 야화 한 토막을 소개하겠다. 바로 광화문 작명논쟁(作名論爭)이 그것이다. 그렇다면 왜 경복궁 정문을 광화문(光化門)이라 했을까?
원래 경복궁 낙성 당시에는 정문(正門)또는 오문(午門)이라 하였는데 1426년 세종 8년에 광화문으로 개명(改名)하였다.
화두의 중심은 바로 광화문 작명배경에서 출발한다.
‘태양의 기운(氣運)이 가장 왕성한 때가 정오(正午)이다… 정문을 오문(午門)이라 한 것은 극성한 남양광(南陽光)을 받아 밝은 정치를 행하려는 소망 때문이다. 그래서 광화문이라 바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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