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세의 추억

    기고 / 시민일보 / 2006-11-26 14:5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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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나라당 맹형규 의원
    10월의 송파는 황량했다. 허허벌판이어서 바람이 불면 가을인데도 코끝이 매웠다. 간신히 사무실을 하나 마련하기는 했지만 도와줄 사람이 없었으니 썰렁하기는 밖이나 안이나 매한가지였다.

    나는 또다시 아버지에게서 짧은 칼을 물려받은 막내아들의 심정으로 구두끈을 질끈 묶고 거리로 나섰다. 조직이 있는 것도 아니고 돈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믿을 것이라고는 몸뚱어리 달랑 하나였다.

    하루에 100명, 200명을 만나기보다는 한 사람을 만나더라도 내 진정성을 알게 하자는 각오로 정성을 기울여 손을 맞잡았고 지혜를 다해 이야기를 나눴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존경은 못 되어도 사랑은 받는 앵커였다는 사실이었다. 길거리를 지나면 사람들이 알은체를 해왔다. 그것이 어찌나 힘이 되던지 발이 부르트는 줄도 모르고 길거리를 누비며 사람들을 만났다. 선거운동 시작이 점점 가까워 오면서 지역에서는 나를 지지하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모르는 사람은 없을 정도가 되었다.

    어느 날부터인가 사무실에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선거가 시작된다는 표시였다. 바깥출입도 못할 정도로 수십 명씩 몰려와서는 이렇게 해야 한다, 저렇게 해야 한다 훈수를 두기도 하고 자기가 관여하는 모임이 많으니 도와주겠다며 내 두 손을 꼭 움켜쥐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어떤 이야기를 하더라도 결론은 한 가지, 돈이었다. 소위 브로커라 불리는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시작부터 이런 데에 휘말리면 큰일날 게 뻔했다. 아무리 작은 불씨라도 한번 옮겨 붙으면 큰불이 되는 법이다. 나는 그들에게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내가 정치부 기자 출신입니다. 숱한 선거를 취재해 봤지만 돈 써서 당선된 사람이 잘 되는 걸 본 적이 없습니다. 세상이 이렇게 바뀌었는데도 돈을 써야 당선이 된다면 저는 차라리 국회의원을 포기하겠습니다”

    그 뒤로 그들의 모습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실제로 선거 막바지에 이르러 중앙당에서 나온 사람들이 수군덕거리는 이야기를 전해들은 적이 있다. 맹 후보는 돈을 안 써가지고 큰일났다고.

    그러나 나는 당당히 당선이 되었고 그날 이후 아직도 이렇게 건재하다. 돈이 당선의 바로미터는 아니라는 증거다.
    선거운동이 시작되었다고 해서 이전과 달라질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내 칼은 여전히 짧았다. 한꺼번에 많은 사람을 내 편으로 만들기보다는 한 사람이라도 정성을 다해 제대로 만나자, 사람들을 모아 놓고 악을 써가며 연설하는 것보다 한 사람에게라도 내 진정이 통하면 그 소문이 열 사람 백 사람에게 전달될 것이다라는 믿음이 있었다.
    얼굴을 알아보고 쫓아와서 악수를 청하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이기보다는 시비를 거는 사람 하나와 쪼그리고 앉아서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내가 그를 이해하고 그가 나를 이해할 때까지 대화를 나눴다.

    나는 사람을 두고 절대 계산하지 않는다. 나를 좋아하거나 그렇지 않거나 똑같이 대한다. 그래야 후회가 없다.

    학창 시절 다른 친구가 먹던 밥을 빼앗아 먹었던 것처럼 주민들과 밥을 먹을 때에도 먹다 남은 밥이라도 가리지 않고 잘 먹는다. 옆자리의 수저로 국물을 떠먹기도 한다.

    처음에는 이런 내 모습을 보고 연출이 아니냐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10년이 지난 지금은 으레 그러려니 한다. 진심이란 이렇듯 한결같은 것을 의미한다.

    진심을 다해 대하는 마음, 남의 수저로 국을 떠먹는 소탈함이 전해지기 시작했던지 점점 괜찮은 후보라는 소리가 주민들의 입에서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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