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서도 말했지만 ‘만파식적의 정치’는 내 정치의 꿈이다. 나의 그 꿈은 현실적으로 우리의 정치사회에서 해방의 정치, 화해의 정치, 통합의 정치를 통해서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먼저 ‘해방의 정치’란 ‘억압에서 벗어남’이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우리는 권위주의와 획일주의로부터 해방되어야 한다. 탈권위주의야말로 우리 시대의 최고의 명제다. 권위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한 조직은 개인의 창의력을 재산으로 하는 지식기반 사회에서는 성공할 수 없으며 민주주의를 향유할 수 없다. 스스로 동의하지 않는 것에 의해 부과되는 억압은 어떠한 명분으로도 용납될 수 없는 사악한 강제일 뿐이다. 그것을 위한 정치라야 해방의 정치가 된다고 생각한다. 해방은 투쟁을 통해서 얻어진다. 그 투쟁은 물리적인 것만이 아닌 정신적인 것도 있으며, 이 투쟁의 시작은 자기로부터 행해지는 것이기에 나는 해방의 기본 출발이 자기와 그 주변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고 확신한다. 자기 스스로를 해방시킬 수 있을 때 비로소 다른 사람도 해방시킬 수 있다.
두 번째 나는 ‘화해의 정치’를 주장한다. 우리 사회는 잘못된 과거에 얽매여서 미래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가해자 의식과 피해자 의식이 혼합되어 정치의 갈등구도를 증폭시킨다. 화해를 통해 모든 것을 털고 미래로 나아가야 한다. 화해는 서로 손잡는다는 의미만은 아니다. 갈등을 넘어 화해를 이룩하기 위해서는 먼저 갈등의 본질을 알아야 하고 원인과 전개 과정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필요하다. 그런 다음 잘못한 사람이나 집단이 스스로의 잘못을 용서받으려는 자세를 취할 때 비로소 진정한 화해가 이루어질 수 있다.
피해자가 먼저 손을 내미는 것이 아니라 가해자가 용서를 구하는 자세가 취해졌을 때 비로소 화해도 이루어질 수 있다. 가해자가 강자라는 이유만으로 자신의 잘못, 즉 가해자로서의 잘못을 숨기거나 왜곡한다면 화해는 사라지고 만다. 그러므로 피해자에게 강요되는 화해는 단지 강자에 의한 가해의 또 다른 되풀이일 뿐이다.
진정한 화해는 가해자 자신이 잘못을 깨닫고 속죄하는 마음을 갖고, 피해자가 자신의 고통을 가해자의 속죄만으로도 맺힌 마음을 풀려고 노력할 때라야 가능해진다.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가하는 한풀이 식의 보복은 또 다른 보복을 불러오는 악순환으로 전개될 뿐이다. 어느 면에서 이러한 상황은 사태의 해결을 뒤로 미루고 더 큰 비극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
세 번째, 나는 ‘통합의 정치’를 강조한다. 통합은 단순히 모두가 하나 되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어느 면에서는 새로운 가치관, 새로운 지도체계, 새로운 삶의 방식으로 돌아갈 때 비로소 이룩되는 과정이자 결과이다. 그러므로 통합에는 새로운 가치관이 있어야 한다. 단순히 미래를 장밋빛으로 묘사하는 구호적 이념이 아니라 구체적인 미래지향의 이념 그리고 그것의 현실화라야 살아 있는 가치관으로 작동될 수 있다. 변화하는 시대정신을 담아낼 수 있는 새로운 패러다임이어야 한다.
새로운 지도체계도 마찬가지다. 어느 한쪽을 편드는 사람으로는 새로운 지도체계를 구축할 수가 없다. 자기가 싫어하는 사람이나 집단조차도 수용할 수 있는 지도자적인 선택과 행동이 이루어질 수 있을 때 비로소 민주적 시대에 부응할 수 있는 새로운 지도체계가 형성될 수 있다. 어느 한쪽만을 제거하거나 다른 집단을 벌주면서 자기 편만이 절대적인 것처럼 믿고 행동하는 지도자는 그 패거리의 두목일 수는 있어도 전체를 위한 지도자는 될 수 없다.
새로운 가치관, 새로운 지도체계, 새로운 삶을 통해 우리 모두가 하나라는 생각을 하게 될 때 비로소 일체성의 사회가 가능해질 수 있다. 이 점에서 통합의 정치는 정치가 지향하는 최종적인 귀결이자 최고의 가치라고 할 수 있다.
먼저 ‘해방의 정치’란 ‘억압에서 벗어남’이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우리는 권위주의와 획일주의로부터 해방되어야 한다. 탈권위주의야말로 우리 시대의 최고의 명제다. 권위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한 조직은 개인의 창의력을 재산으로 하는 지식기반 사회에서는 성공할 수 없으며 민주주의를 향유할 수 없다. 스스로 동의하지 않는 것에 의해 부과되는 억압은 어떠한 명분으로도 용납될 수 없는 사악한 강제일 뿐이다. 그것을 위한 정치라야 해방의 정치가 된다고 생각한다. 해방은 투쟁을 통해서 얻어진다. 그 투쟁은 물리적인 것만이 아닌 정신적인 것도 있으며, 이 투쟁의 시작은 자기로부터 행해지는 것이기에 나는 해방의 기본 출발이 자기와 그 주변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고 확신한다. 자기 스스로를 해방시킬 수 있을 때 비로소 다른 사람도 해방시킬 수 있다.
두 번째 나는 ‘화해의 정치’를 주장한다. 우리 사회는 잘못된 과거에 얽매여서 미래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가해자 의식과 피해자 의식이 혼합되어 정치의 갈등구도를 증폭시킨다. 화해를 통해 모든 것을 털고 미래로 나아가야 한다. 화해는 서로 손잡는다는 의미만은 아니다. 갈등을 넘어 화해를 이룩하기 위해서는 먼저 갈등의 본질을 알아야 하고 원인과 전개 과정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필요하다. 그런 다음 잘못한 사람이나 집단이 스스로의 잘못을 용서받으려는 자세를 취할 때 비로소 진정한 화해가 이루어질 수 있다.
피해자가 먼저 손을 내미는 것이 아니라 가해자가 용서를 구하는 자세가 취해졌을 때 비로소 화해도 이루어질 수 있다. 가해자가 강자라는 이유만으로 자신의 잘못, 즉 가해자로서의 잘못을 숨기거나 왜곡한다면 화해는 사라지고 만다. 그러므로 피해자에게 강요되는 화해는 단지 강자에 의한 가해의 또 다른 되풀이일 뿐이다.
진정한 화해는 가해자 자신이 잘못을 깨닫고 속죄하는 마음을 갖고, 피해자가 자신의 고통을 가해자의 속죄만으로도 맺힌 마음을 풀려고 노력할 때라야 가능해진다.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가하는 한풀이 식의 보복은 또 다른 보복을 불러오는 악순환으로 전개될 뿐이다. 어느 면에서 이러한 상황은 사태의 해결을 뒤로 미루고 더 큰 비극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
세 번째, 나는 ‘통합의 정치’를 강조한다. 통합은 단순히 모두가 하나 되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어느 면에서는 새로운 가치관, 새로운 지도체계, 새로운 삶의 방식으로 돌아갈 때 비로소 이룩되는 과정이자 결과이다. 그러므로 통합에는 새로운 가치관이 있어야 한다. 단순히 미래를 장밋빛으로 묘사하는 구호적 이념이 아니라 구체적인 미래지향의 이념 그리고 그것의 현실화라야 살아 있는 가치관으로 작동될 수 있다. 변화하는 시대정신을 담아낼 수 있는 새로운 패러다임이어야 한다.
새로운 지도체계도 마찬가지다. 어느 한쪽을 편드는 사람으로는 새로운 지도체계를 구축할 수가 없다. 자기가 싫어하는 사람이나 집단조차도 수용할 수 있는 지도자적인 선택과 행동이 이루어질 수 있을 때 비로소 민주적 시대에 부응할 수 있는 새로운 지도체계가 형성될 수 있다. 어느 한쪽만을 제거하거나 다른 집단을 벌주면서 자기 편만이 절대적인 것처럼 믿고 행동하는 지도자는 그 패거리의 두목일 수는 있어도 전체를 위한 지도자는 될 수 없다.
새로운 가치관, 새로운 지도체계, 새로운 삶을 통해 우리 모두가 하나라는 생각을 하게 될 때 비로소 일체성의 사회가 가능해질 수 있다. 이 점에서 통합의 정치는 정치가 지향하는 최종적인 귀결이자 최고의 가치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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