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 민족이 해야 할 일은 많다. 그 중에서도 민족 통일만큼 중요한 일은 없다. 갈라진 이 땅을 하나로 잇는 일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민족적 과제이다. 그것은 우리 민족이 지난 한 세기 동안 겪어왔던 온갖 질곡과 고통에서 벗어남을 의미한다.

나는 민족 통일을 포함해서 우리 민족이 해야 할 당면 과제 세 가지를 다음과 같이 생각해 보았다.

첫째는 민족 통일이고, 둘째는 사회 통합이고, 셋째는 민주주의 정치 발전이다.

먼저 민주주의 정치 발전의 과제를 살펴보면, 우리의 정치현실은 아직도 우리가 바라는 참된 민주주의 정치체제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정치에 대해 하나의 믿음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정상적인 민주주의와 합리적인 시장체제 그리고 이것들의 기반이 되는 시민사회, 이 세 가지가 적절하게 어울릴 수 있을 때 비로소 ‘참여국민정치’가 이룩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므로 나는 단순히 민주주의라는 말을 사용하기보다는 ‘참여국민정치’라는 말을 더 쓰고 싶다. 그것은 사람들이 자기의 책임과 자율성을 갖고 민주적으로 정치에 참여할 때 자유와 평등에 기반을 둔 정의 사회가 이룩될 수 있다는 믿음의 표현으로 이해할 수 있다.

국가나 사회의 중요한 일에는 국민이 직접 정치에 참여하여 결정할 수 있는 기회를 가져야 한다. 국민청원권, 국민소환권, 국민투표권 등이 적극적으로 활용되어야 한다.

가진 자를 중심으로 하는 부르주아 민주주의와는 달리 ‘참여국민정치’에서는 평등하고 자율적으로 참여하는 모든 사람들이 연대하는 정치가 이룩될 수 있을 것이다.

우선 민족 통일은 특정 개인에게 ‘민족의 위대한 지도자’로서의 영광을 가져다주기 위한 것이 아니다. 우리 모두가 평등하게 사람다운 대접을 받을 수 있는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첫 단계라고 말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민족 통일은 북한의 김일성 - 김정일 집단을 위해서도 아니고, 대한민국의 특정 세력들을 위해서도 아니다. 그렇게 된다면 그것은 통일이기보다는 또 다른 분열과 혼돈으로 빠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민족 통일은 우리가 하나라는 것을 의미하며, 우리 모두를 하나로 만들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

민족 통일은 우리 민족의 최대 과제다. 그것은 우리 민족이 지난 한 세기 동안 겪어왔던 온갖 질곡과 고통에서 벗어남을 의미한다. 우리 민족이 이룩해야 할 중요한 과제로는 민족 통일, 나아가 세계사적 발전의 성취, 개인적인 자아실현, 그밖에 세계의 새 문명의 진원지로 올라서는 것을 들 수 있다. 그 중 민족 통일은 가장 중요한 과제이자 다른 과제들을 이룩하기 위한 기반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통일은 시작일 뿐 완성이 아니다. 이 점에서 우리는 통일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외세의 힘을 빌린다거나 그들의 책상에서 흥정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나는 민족 통일이나 남북 통일이라는 말보다는 민족 통합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민족이 단순히 하나로 어울리는 것만으로 만족할 수는 없다. 그보다는 완전한 일체성을 이룩하는 것, 즉 합일체가 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상대방의 존재와 위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전제되어야 하며 마침내 하나로서 달려가는 일대 결단이 이루어져야 한다. 물론 먼저 남과 북이 통일의 과정을 거쳐야 하며, 그런 후에 통합으로 이어져야 한다. 만일 통일이 어느 한쪽을 굴복시키고 어느 한편에게만 승리감을 가져다주는 것이라면 통일 그 자체가 또 다른 불행을 가져오는 새로운 요인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승자와 패자로 나누어 승자가 패자의 항복을 받는 형식의 통일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보다는 모두가 한마음으로 어울려서 이긴 자도 없고 진 자도 없는, 즉 모두가 다 이긴 자가 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통일, 다시 말해 통합의 본 모습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