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대선과 정세전망

    기고 / 시민일보 / 2007-01-29 18:2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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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동호 참정지운동본부 부위원장
    {ILINK:1} 2007년 대선의 한해가 시작되었다. 금년의 대통령선거는 좌파정권의 10년을 종식시키고 새로운 우파정권을 탄생시키느냐, 아니면 다시 한 번 좌파에게 정권을 넘겨 또 다시 통한의 눈물을 삼켜야 하느냐의 중대한 기로이다.

    지난 2002년 1월 1일자 조선일보의 기사를 보았다. 이회창 후보의 승리를 장담하는 여론조사 결과를 보도하고 있었다. 후보간 가상구도에서 이회창 후보는 이인제후보에게는 10%, 노무현 후보에게는 16%를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모든 신문이 이회창 후보의 승리를 예측하는 결과를 보도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회창 후보는 모든 신문의 예측을 전부 무색하게하고 패배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너무도 많다. 그러나 오늘 제가 말하고자하는 주제는 정치공작과 관련지어진 것으로 한정하고자 한다. 우선 본 주제에 넘어가기 전에 한 가지만 지적하고자 한다. 당시의 여론조사에서 조사에 참여한 사람들의 50%이상이 현재의 대선구도가 바뀌었으면 한다는 것이었다. 다만 대구·경북만 현재의 대선구도로 가야한다는 응답자가 압도적으로 많았을 뿐 심지어 부산·경남에서도 응답자의 50% 이상이 대선구도의 변화를 원하고 있었다.

    그것은 이회창 후보가 김대중의 실정에 따른 반사적 이익에도 불구하고 아직 많은 수의 국민들이 혼쾌히 이회창을 지지하고 있지는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대선구도 변화라는 응답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2002년 민주당의 대선공작은 이러한 여론을 배경으로 시작되고 있었다. 분명한 것은 정치공작이란 여론의 배경이 없이는 성공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대통령선거가 아직 11개월이나 남은 현재의 시점에서 열린우리당이 어떠한 카드로 다시금 국민을 현혹시킬까하는 것을 예측하는 것은 보통 난감한 주제가 아니다. 이 문제를 접근하자면 우선 역지사지의 입장에서 ‘열린우리당이 어떻게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을까’하는 문제와, 과거에 그들은 어떤 방법으로 열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대선환경을 뒤집었을까를 되새겨보아야 한다. 그리고 2007년 대선환경의 연속성과 불연속성, 이들의 사용 가능한 카드를 예측해 보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2002년 대선을 앞둔 민주당은 그야말로 진퇴양난이었다. 권력형 각종비리와 대통령의 아들비리로 민주당의 지지도는 바닥이었다. 각종 보궐선거에서 민주당은 참패를 거듭했다. 2001년 11월에 있었던 구로와 동대문, 강릉의 보궐선거에서 각종언론의 접전이라는 예상과는 달이 상당한 격차로 패배했다. 구로와 동대문은 전통적인 민주당 지지세가 강했던 지역이다. 더욱이 구로는 상당한 격차로 항상 민주당에 승리를 안겨주던 곳이기에 민주당이 겪은 충격은 컸다.

    민주당이 이런 불리한 환경을 딛고 어떻게 승리할 수 있을까? 첫째, 전통적인 호남지지세의 회복과 1997년 DJP연합구도로의 복귀이다. 둘째, 이회창에 만족하고 있지 못한 부산·경남유권자들을 이회창으로부터 분리해 내는 것이다. 셋째, 네거티브활동을 통해 이회창으로 쏠리는 유권자들을 막아내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반 이회창연합을 구축하는 것이다.
    2002년 민주당의 대선공작은 크게 세 가지 과정을 거쳐 진행되었다.

    첫째, 국민참여경선을 통해 민주당을 외면했던 민심을 되돌리고, 노무현이라는 대중적 스타를 탄생시킴으로서 그간의 열세의 구도를 단숨에 대등한 구도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2002년 2월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민주당의 경선레이스는 대중적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무엇보다도 국민참여경선은 국내에서 실시된 적이 없는 최초의 정치실험이라는 점 때문이었다. 더욱이 지난 2년여 동안 당내 선두를 달리던 이인제후보를 노무현 후보가 광주경선에서 극적으로 제치면서 그 효과는 극대화 되었다.

    둘째, 김대업이라는 인물을 내세워 이회창 후보의 두 아들 병역기피의혹을 증폭시키는데 성공했다. 오마이뉴스에서 특종으로 보도한 이회창 후보 두 아들 고의병역기피의혹은 전 언론에 연일 보도되면서 이를 기정사실화 했다. 거기에 이회창 후보의 아들과 며느리가 호화빌라 위아래 층에 함께 거주하고 있다는 사실이 폭로되었고, 이회창 후보의 며느리가 당시 사회 문제가 되었던 일부 강남부유층에서 성행하던 미국으로의 원정출산의혹까지 가세했다.

    당시 언론의 반응과 여론은 호화빌라와 원정출산의혹에 훨씬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성공적인 네거티브공작은 전혀 사실이 아닌 것을 시도했을 때 역풍을 맞을 소지가 있다. 그러나 민주당의 네거티브공세는 이런 면에서 성공작이라고 평가할 만하다.

    마지막으로, 대통령선거를 한 달 앞두고 월드컵열기로 한창 상승세를 타던 정몽준 후보와 후보단일화를 이룸으로써 반 이회창전선을 완성시켰다. 이로써 민주당의 승리는 굳혀졌다. 민주당이 반 이회창전선에 성공한 후 노무현 후보는 이회장 후보에 지속적으로 승리하고 있었다. 이런 추세는 대선에 돌입해서도 한 번도 뒤집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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