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의 품계라니

    기고 / 시민일보 / 2007-02-13 16:2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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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노근(노원구청장)
    자경전(慈慶殿) 강론에서 필수과목으로 학습해야 직성이 풀릴게 있는데 그것이 고건축 용어이다.

    “이 자경전을 잘 살펴보면 예사 건물과는 사뭇 다르지요… 자경전(慈慶殿), 복안당(福安堂), 청연루(淸燕樓), 협경당(協慶堂)등 4동이 한 채로 합축(合築)돼 있어요… 한 건물에 전(殿)·당(堂)·루(樓)등이 뭉쳐있는 거죠… 그 용도에 따라 양식이 다양하지요.”

    그렇다면 그 복합 건물의 용도가 뭐냐고 한참 궁금해 할 거다.

    “서북쪽의 복안당은 목욕실이고 겨울용 침방(寢房)이다… 건물 중앙에 있는 자경전은 주로 낮에 이용하고… 동남쪽 청연루는 다락집이라 여름철에 사용하며… 시녀(侍女)들은 동쪽 협경당을 쓰지요….”

    여하튼 나는 그 노교수의 강론을 경청해 갔다.

    그 순간 참으로 이상한 생각이 스쳐갔다.

    ‘건축물 용도(用途)와 양식(樣式)이 그렇게 다양하다면 현대판 주상복합 건물과 유사한 개념이 이미 그 당시에 도입된 것이 아닌가…. 협경당은 자경전·복안당 등 여타 건물에 비해 지붕이 낮은데 왜 그럴까? 혹시 그 쓰임새가 시녀(侍女)들이 쓰는 집이라 그러할까? 그렇다면 신분질서가 건물에도 있다는 말일까?’

    왜 어느 건물은 전(殿)이고 당(堂)이며 각(閣)일까?

    하여간 이 천객의 궁금증이 한꺼번에 쏟아 지는게 아닌가!

    아무튼 그 노객의 강론요지는 짐작하건데 그 이름에는 분명히 무엇인가 그 이유가 있을 거다. 뜻밖에도 건물에 위계질서(位階秩序)가 있다는 거였다. 바로 그 강론은 고궁건축의 품계론을 학습할 수 있는 단서가 됐다.

    “그 건물용도에 따라 관직처럼 위계질서가 있지요… 그러니까 전(殿)·당(堂)·합(閤)·각(閣)·재(齋)·헌(軒)·루(樓)·정(亭)이 그것이죠.”

    그 노학의 강론요지를 대필(代筆)하면 이러하다.

    ‘전(殿)은 왕과 왕비(또는 대왕과 대비)가 머무는 공간이다. 그 규모가 대축(大築)이고 장엄이 고결해서 궁에서 우두머리를 차지한다. 근정전(勤政殿), 사정전(思政殿), 강녕전(康寧殿), 교태전(交泰殿)이 그러하다… 당(堂)은 세자나 대군(大君) 또는 후궁들이 사용하거나 또는 관리들의 공무 공간으로 사용한다. 전(殿)보다 한 등급이 낮은 건물이다. 자선당(資善堂), 집경당(緝敬堂), 함화당(咸和堂)이 그 예일 거다.’

    그러나 절간의 대웅전, 대적광전, 지장전, 내불당이나 성균관(成均館)의 대성전(大聖殿)과 명륜당(明倫堂), 안동 도산서원(陶山書院)의 전교당(典敎堂)과 장판각(藏板閣) 등에서 보듯 성지건축(聖地建築)에도 통용된다는 사실은 나중에야 알았다.

    그러나 고건축 용어의 혼동을 피하기 위해 꼭 알고 가야할 게 있다.

    바로 ‘묘(廟)’는 뭐고 ‘사(祠)’는 무엇인가이다. 둘 다 죽은 분의 위패(位牌)를 모시는 혼전(魂殿)이지만 그 격(格)이 다르다.

    “황제, 왕이나 대성인은 묘(廟)자를 붙여 쓰고 정승판서나 대학자 장군등과 같이 그에 버금가는 인물은 보통 사(祠)자를 쓰지요… 종묘(宗廟:조선 임금 등 정전 19실 49위와 영녕전 16실 34위)·문묘(文廟:공자 등 39위)·동묘(東廟:관우장군)·만동묘(萬東廟:명나라 신종황제 괴산군 화양동 소재) 등이 그에 해당하고… 충렬사(忠烈祠:이순신), 상덕사(尙德祠:퇴계 이황), 삼충사(三忠祠:백제의 충신 흥수, 성충, 계백) 등등….”

    여하튼 왕조시대의 벼슬품계(品階)처럼 궁궐건물도 위계(位階)가 있다고 하니 세상은 원래가 계급사회인 것 같다. 하기야 현대판 인간들도 주택을 신분(身分)처럼 여기면서 온갖 오두방정을 떨고 있지 않는가?

    ‘저택→빌라→아파트→단독주택→다세대→다가구→판자촌….’

    그러나 당신의 통찰력이 사자(死者)의 음택(陰宅)에도 품계가 있다는 사실까지 알아낸다면 정말 경악(驚愕)하지 않을 수 없다.

    ‘임금·왕비의 무덤을 릉(陵)이라고 하고… 세자와 세자빈, 왕부와 왕모 무덤을 원(園)이라 부르고… 백성들의 무덤을 묘(墓)라고 분류하니….’

    그러하니 경기도 여주군 소재 ‘영릉(英陵)’을 찾았을 때 영릉 앞에서 세종대왕 묘(墓)라 말한다든가 서울 도봉구 소재 ‘연산군 묘지(墓地)’ 앞에서 연산군릉(陵)이라 부른다든가 하는 것은 큰 실수를 하는 거다.
    ‘살아서 품계가 죽어서도 품계라니… 정말 그 놈의 계급장은 도대체 천당(天堂)과 지옥(地獄)까지 따라간다는 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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