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녕대군

    기고 / 시민일보 / 2007-02-27 16:2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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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노근(노원구청장)
    동궁학습에서 그 답사미각(踏査味覺)을 배가시키려면 무엇보다 그 화두에 양념을 쳐주어야 하는데 그것이 동궁야화라면 제격 일게다.

    그렇다면 당신은 무슨 동궁비화라도 있느냐고 되물을 거다.

    동궁야화(東宮野話)를 화두에 올릴 때는 아무래도 양녕 세자의 폐위사건(廢位事件)을 뺄 수가 없다.

    “양녕대군(讓寧大君)은 태종의 장자(長子)이지요… 적통대군(嫡統大君)의 왕위승계원칙에 따라 1404년 11세에 세자가 됐어요… 그러나 불행히도 1418년 그 지위를 잃어 버렸어요… 태종의 셋째아들 충녕대군이 그 뒤를 이었지요… 그 분이 후에 세종이 됐지요.”

    그렇다면 양녕 세자는 왜 그 지위를 박탈당했을까?

    세간(世間)의 보고서는 그 폐세자 경위를 작성하는데 있어 ‘갑설을설(甲說乙說)’로 제출하고 있다. 우선 갑론(甲論)은 폐세자(廢世子)의 혐의점을 양녕대군의 부도덕한 행실에 두고 있다.

    폐세자 주장의 근거는 태종 18년 1418년 6월 2일 의정부·육조·삼군도총부 등 여러 부서의 상소를 보면 알 수 있다.

    ‘세자(世子)가 간신(奸臣)의 말을 듣고 함부로 여색(女色)에 혹란(惑亂)하여 불의를 자행하였다… 만일 후일에 생살여탈(生殺與奪)의 권력을 마음대로 한다면 형세를 예측하기 어려우니… 바라옵건대 세자를 폐하여 외방(外方)으로 내치도록 허락하시면 공도(公道)에 심히 다행하겠으며….’

    태종실록에는 거의 비슷한 시기에 사간원·사헌부에서도 수차례 그와 유사한 상소문을 올렸는데 그걸 보면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다.

    다음 을론(乙論)은 양녕대군의 폐세자(廢世子) 원인을 둘러싸고 후대에 온갖 종류의 동궁루머(東宮 rumor)가 무성하게 일고 있는데 그건 갑론이 진실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양녕대군은 누구보다도 조선초기의 비극을 잘 알고 있어요… 수많은 고려 충절(忠節)들이 조부(祖父) 태조 이성계에게 죽었고… 또한 부왕(父王) 태종이 골육상쟁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였나요…. 그러한지라 양녕대군은 누구보다 세상의 권력(權力)이 얼마나 부질없는 욕심인지 잘 알고 있어요… 바로 그런 헛된 권도(權道)에서 일부러 비키려 한 것이지요.”

    그래서 그가 거지행세나 여색(女色)을 즐긴 거다.

    사실 양녕대군은 시문(詩文)과 서예(書藝)에 능통하고 풍류와 방랑을 좋아하는 별난 성품인지라 엄한 동궁법도에 적응하기란 무척 어려웠을 거다.

    아직도 양녕 세자의 파직(罷職)사유는 역사의 베일(veil)에 싸인 채 끊임없이 격론(激論)이 벌어지고 있다. 아마 그 해답은 영원히 풀기 어려운 숙제일 거다. 하여간 내가 자선당(資善堂) 구경을 마치고 막 빠져나가려 할 때였다.

    그 순간 이상한 현상이 일어났다. 하늘에는 마른번개와 천둥이 몇 번씩 반복을 하더니… 웬 호랑나비 한마리가 내 눈앞으로 달려들어 길을 막는 게 아닌가!

    여하튼 내가 발걸음을 잠시 멈췄다. 그러자 동궁(東宮)의 정적은 더욱 깊어져 갔다. 그리고 어디선가 하소연이 들려왔다.

    “글쎄! 세간에는 내가(양녕세자) 패륜행위 때문에 파직(罷職)을 당했느니… 수군거리며 별 흉을 다 보지! 그런 허튼 얘기를 들을 때면 정말 분통이 터지지… 그래! 내가 허구헛날 동궁에 갇혀 매우 심신이 답답한지라… 때로는 몰래 월장(越牆)하여 저자거리에서 술주정도 하고 여색도 즐겼거늘… 조정 관리들은 그걸 청년 세자의 혈기(血氣)쯤으로 이해하질 않고… 부왕(父王)께 그걸 허물이라고 일일이 고해 바쳤거든… 그러니까 부자간에 이간질을 한 거지… 그게 바로 파직의 이유였다면 당신은 이해를 하겠어?”

    참으로 기이한 현상이었다.

    제철도 아닌데 호랑나비는 뭐고 그 소리는 무엇일까?

    잠시 내가 귀신(鬼神)에 홀린 듯 하여 바짝 정신을 차려 보았다. 그렇지만 동궁의 구석구석을 아무리 살펴봐도 그 호랑나비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렇다면 그 호랑나비가 혹시 양녕대군의 화신(化身)이 아닐까?

    여하튼 나는 아직까지도 그 나비의 정체(正體)를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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