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다음 답사경로는 어디로 가야 할까?
“그런데 저 앞쪽의 공사판은 무엇을 하는 거지?”
그 노객을 향해 그걸 물었더니 소주방(燒廚房)을 복원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소주방이 무엇일까?
사실 소주방하면 불현듯 ‘요사이 먹자골목에서 소주(燒酒)를 파는 주점’을 연상 할 텐데 그런 집은 궁궐 안에 없을 거고 그렇다면 무엇이란 말인가?
여하튼 그 노객은 ‘주방’이 소주방의 준말이라며 ‘대궐 안에서 음식을 만들던 부엌’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수라간(水剌間) 답사에서 필수과목으로 공부해야 할 것은 ‘수라상(水刺床)’이다. 청문식 강의는 답사 초보자들에게 그 정보를 전달할 때 아주 효과적이다.
통상 수라상(水刺床)은 음식종류가 생각보다 그리 많지 않아 차림새가 아주 소박하다. 그런데 현대판 식도락가들은 ‘수라상(水刺床)’ 하면 상다리가 부러질 만큼 아주 푸짐하고 기름질 줄 아는데 그건 잘못이다.
그렇다면 임금님은 하루에 몇 차례 진지를 드시나요?
“하루 네 다섯 차례 식사를 하지요… 아침 수라(水刺)가 대개 10시경에 저녁은 6~7시에 드시고… 식전(食前)에는 미음이나 보약을 들고… 점심상은 낮것 상이라고 말하는데 국수장국·떡국·만두국 등을 드시죠.”
맛보다는 균형 있는 식사를 한 것 같다.
기왕에 궁중음식 얘기가 나왔으니 각론(各論)까지 확장할 터이다.
“궁중요리에는 수라상(水刺床) 이외에 어상(御床), 진연상(進宴床), 돌상, 제사상이 있어요… 어상(御床)은 나라에 큰 경사가 있을 때 임금께 올리는 큰상으로 고배상(高排床)으로 차리지요… 진연상(進宴床)은 국경일이나 외국사신을 맞을 때나 또는 왕족의 생신·혼례·회갑·칠순·왕세자 책봉 때 차리지요.”
이때는 특히 진연도감(進宴都監)을 두고 그 의식에 따라 찬품단자(饌品單子)를 짜고 기명(器皿)과 조리 기구를 점검하는 등 준비가 철저하다.
“잔치등급에 따라 진연(進宴)·진찬(進饌)·진작(進爵)·수작(受爵)등으로 차등을 두지요… 왕이나 왕족의 잔칫상은 고배상(高排床)으로 차리고 친척·내외명부·신하들에게는 사찬상(賜饌床)을 차리지요.”
그러나 궁중요리 중 잔칫상의 진실코드(眞實cord)는 그 차림새라기보다 잔치 후 그 음식을 배당하는데서 찾아야 할 거다.
“잔치 후에는 어상(御床)의 고배음식을 나눠주지요… 종친이나 신료들은 물론 악공이나 문지기까지… 그건 잔치의 주인공들이 그 애정을 전한다는 뜻이죠… 이런 관습은 점차 사가(私家)에도 퍼져나갔어요… 오늘날까지 미풍양속으로 남아 있어요.”
그러나 궁중요리 학습의 키워드(keyword)는 그걸 문화상품으로 개발하여 그 부가가치를 창출하는데서 찾아야 할거다.
“경복궁이나 창덕궁 등 국내외 관광객이 많은 곳에 고궁 ‘수라간(水剌間)’을 열고… 세종대왕 수라상(水刺床)·고종황제 낮것상·효령대군 회갑상 등등….”
만약 수라간에서 그런 종류의 관광음식을 개발하여 출시한다면 그 장사는 영락없이 수지(收支)가 맞을 거다. 중국 북경의 천단공원이나 심양 고궁엘 가면 그 인근에 청나라 황사손(皇嗣孫)이 운영하는 황제요리집이 있는데 연일 문전성시(門前成市)를 이루고 있다.
소주방(燒廚房) 학습목록에서 ‘장금이’의 치병스토리는 결코 빼놓을 수는 없을 거다. ‘장금이’는 알다시피 어릴 적 ‘생각시’로 궁중에 들어와 궁중 나인(內人:내인)이 되어 소주방에서 수라상을 차리고 병환을 다스리는데 탁월한 재능을 보였다.
그래서 장금이의 치병(治病) 스토리는 현대판 인간들을 감동시키고 있다.
“원래 중종(1506년 9월~1544년 11월까지 재위)의 왕비 장경왕후(중종의 둘째왕비)가 왕자(인종)를 낳고 산후 후유증으로 승하(昇遐)를 하셨어요… 그때 장금이가 산후조리를 맡았지요… 중종 38년 1월 7일 경복궁 소주방에 불이 나는 통에 중종은 그 처소를 창경궁 환경전으로 옮겼어요… 그해 중종이 갑자기 대변을 3일간이나 못 봐 위급해 졌지요… 전의(典醫)를 불러 백방으로 치료를 해 봤지만 아무 차도(差度)가 없었어요… 그때 장금이가 오령산이라는 탕제(湯劑)를 지어 무난히 하기(下氣)를 다스렸지요.”
가장 총애를 받던 장금, 그 공로(功勞)로 중종은 장금이와 의녀 대복금, 전의 등에게 콩·쌀 10석씩 상급(賞給)을 내렸다고 한다.
“그런데 저 앞쪽의 공사판은 무엇을 하는 거지?”
그 노객을 향해 그걸 물었더니 소주방(燒廚房)을 복원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소주방이 무엇일까?
사실 소주방하면 불현듯 ‘요사이 먹자골목에서 소주(燒酒)를 파는 주점’을 연상 할 텐데 그런 집은 궁궐 안에 없을 거고 그렇다면 무엇이란 말인가?
여하튼 그 노객은 ‘주방’이 소주방의 준말이라며 ‘대궐 안에서 음식을 만들던 부엌’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수라간(水剌間) 답사에서 필수과목으로 공부해야 할 것은 ‘수라상(水刺床)’이다. 청문식 강의는 답사 초보자들에게 그 정보를 전달할 때 아주 효과적이다.
통상 수라상(水刺床)은 음식종류가 생각보다 그리 많지 않아 차림새가 아주 소박하다. 그런데 현대판 식도락가들은 ‘수라상(水刺床)’ 하면 상다리가 부러질 만큼 아주 푸짐하고 기름질 줄 아는데 그건 잘못이다.
그렇다면 임금님은 하루에 몇 차례 진지를 드시나요?
“하루 네 다섯 차례 식사를 하지요… 아침 수라(水刺)가 대개 10시경에 저녁은 6~7시에 드시고… 식전(食前)에는 미음이나 보약을 들고… 점심상은 낮것 상이라고 말하는데 국수장국·떡국·만두국 등을 드시죠.”
맛보다는 균형 있는 식사를 한 것 같다.
기왕에 궁중음식 얘기가 나왔으니 각론(各論)까지 확장할 터이다.
“궁중요리에는 수라상(水刺床) 이외에 어상(御床), 진연상(進宴床), 돌상, 제사상이 있어요… 어상(御床)은 나라에 큰 경사가 있을 때 임금께 올리는 큰상으로 고배상(高排床)으로 차리지요… 진연상(進宴床)은 국경일이나 외국사신을 맞을 때나 또는 왕족의 생신·혼례·회갑·칠순·왕세자 책봉 때 차리지요.”
이때는 특히 진연도감(進宴都監)을 두고 그 의식에 따라 찬품단자(饌品單子)를 짜고 기명(器皿)과 조리 기구를 점검하는 등 준비가 철저하다.
“잔치등급에 따라 진연(進宴)·진찬(進饌)·진작(進爵)·수작(受爵)등으로 차등을 두지요… 왕이나 왕족의 잔칫상은 고배상(高排床)으로 차리고 친척·내외명부·신하들에게는 사찬상(賜饌床)을 차리지요.”
그러나 궁중요리 중 잔칫상의 진실코드(眞實cord)는 그 차림새라기보다 잔치 후 그 음식을 배당하는데서 찾아야 할 거다.
“잔치 후에는 어상(御床)의 고배음식을 나눠주지요… 종친이나 신료들은 물론 악공이나 문지기까지… 그건 잔치의 주인공들이 그 애정을 전한다는 뜻이죠… 이런 관습은 점차 사가(私家)에도 퍼져나갔어요… 오늘날까지 미풍양속으로 남아 있어요.”
그러나 궁중요리 학습의 키워드(keyword)는 그걸 문화상품으로 개발하여 그 부가가치를 창출하는데서 찾아야 할거다.
“경복궁이나 창덕궁 등 국내외 관광객이 많은 곳에 고궁 ‘수라간(水剌間)’을 열고… 세종대왕 수라상(水刺床)·고종황제 낮것상·효령대군 회갑상 등등….”
만약 수라간에서 그런 종류의 관광음식을 개발하여 출시한다면 그 장사는 영락없이 수지(收支)가 맞을 거다. 중국 북경의 천단공원이나 심양 고궁엘 가면 그 인근에 청나라 황사손(皇嗣孫)이 운영하는 황제요리집이 있는데 연일 문전성시(門前成市)를 이루고 있다.
소주방(燒廚房) 학습목록에서 ‘장금이’의 치병스토리는 결코 빼놓을 수는 없을 거다. ‘장금이’는 알다시피 어릴 적 ‘생각시’로 궁중에 들어와 궁중 나인(內人:내인)이 되어 소주방에서 수라상을 차리고 병환을 다스리는데 탁월한 재능을 보였다.
그래서 장금이의 치병(治病) 스토리는 현대판 인간들을 감동시키고 있다.
“원래 중종(1506년 9월~1544년 11월까지 재위)의 왕비 장경왕후(중종의 둘째왕비)가 왕자(인종)를 낳고 산후 후유증으로 승하(昇遐)를 하셨어요… 그때 장금이가 산후조리를 맡았지요… 중종 38년 1월 7일 경복궁 소주방에 불이 나는 통에 중종은 그 처소를 창경궁 환경전으로 옮겼어요… 그해 중종이 갑자기 대변을 3일간이나 못 봐 위급해 졌지요… 전의(典醫)를 불러 백방으로 치료를 해 봤지만 아무 차도(差度)가 없었어요… 그때 장금이가 오령산이라는 탕제(湯劑)를 지어 무난히 하기(下氣)를 다스렸지요.”
가장 총애를 받던 장금, 그 공로(功勞)로 중종은 장금이와 의녀 대복금, 전의 등에게 콩·쌀 10석씩 상급(賞給)을 내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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