孔子는 죽지 않는다

    기고 / 시민일보 / 2007-03-07 16:5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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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기(중국북경대학 연구교수)
    최근 중국에서는 공자의 사상을 해설하는 책이 수백만 부 팔리는 베스트셀러가 되었다는 소식이다. 30여년 전인 70년대 초까지만 하더라도 중국 천지에 황사처럼 자욱하던 비림비공(批林批孔 공자와 임표를 싸잡아 비판했던 문화혁명의 구호) 운동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 소식은 참으로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그렇다고 중국이 이번에는 거꾸로 마오쩌뚱(毛澤東)을 불사르고 짓밟으면서 공자를 치켜세우고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마오는 마오 대로 공자는 공자대로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제 자리를 잡아가고 있으니 비로소 중국이라는 거대한 나라가 문명국으로서의 위상에 걸맞게 제정신을 차리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일찍이 루쉰(魯迅)이 ‘공자는 중국의 봉건적 누습의 근원’이라고 갈파한 이래 중국의 현대화와 민주화를 기치에 걸고 나선 혁명가들마다 공자 때려잡기에 열중하더니 이제 겨우 균형을 잡고 공자의 참모습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은 보다 심각하다. 몇 해 전 누군가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책을 내어 공감을 얻어내더니, 최근에는 소설가 최인호가 장편소설 『儒林』을 내면서 ‘공자가 살아야 나라가 산다.’고 선언하고 나섰다. 공자는 한국에서 여전히 ‘죽일 놈’, ‘살릴 놈’으로 시비의 대상이다. 그런데도 정작 공자의 무엇이 나라를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하는지 제대로 아는 사람은 드물다.

    공자가 정치를 통해 현실 속에서 이루고자 했던 이상 국가의 형태는 어쩌면 실현 불가능한 꿈의 모델일 뿐이었다. 서양에서는 플라톤이 그린 ‘철인국가(哲人國家)’가 비슷한 모형인데 두 경우 모두 위대한 천재들의 상상력이 낳은 비현실적인 이상이라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플라톤이 철인 국가의 실현을 가능하게 하는 인간의 조건으로 ‘이성(理性)’을 꼽은데 비하여 공자는 인(仁)이라는 성품(性品)에 기대를 걸었다. 우리말로 ‘어질다’고 번역할 수밖에 없으나 인(仁)은 ‘어질다’ 보다 사실은 기독교의 ‘사랑’과 불교의 ‘자비’에 더 가까운 가치 개념이면서 또한 인간의 정신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 영역의 이름이다.

    인(仁)이 도덕적, 철학적 실천 윤리의 최고 가치라면 그에 도달하기 위해 현실적으로 갖추어야할 덕목으로 공자가 세운 것은 예(禮)다. 그러나 예와 인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예가 곧 인이며 인이 곧 예라는 것을 공자는 자주 언급하고 있다. 공자 자신도 이상과 현실의 일치가 쉽지는 않았던 듯 ‘나이 칠십에 이르러 마음먹은 대로 말하여도 도리에 맞았다’고 술회한 적이 있었다.

    그는 강대한 제후들의 현실적 권력에 굴하지 않고 인의 철학과 정치를 요구했으며, 제후들은 그런 공자를 문전박대하여 ‘상가집 개’와 같이 떠도는 신세로 만들었다.

    권력에 취한 대부들을 질타하고 정치의 바른 도를 실현하라고 외치는 성인의 모습에서 인류 역사상 끝나지 않는 (끝날 수 없는) 혁명과 개혁의 지침을 찾을 수 있다. 이런 공자를 ‘봉건적 누습의 근원’으로 치부하여 밀쳐낸 후 마오쩌뚱이 중국에 도입한 정치 행태는 노나라 대부들의 노략질 같은 정치 수준에 지나지 않았다. 그것을 개혁이니 진보니 혁명이니 하는 구호로 포장했을 뿐이었다. 오늘날 북한에서 칼 마르크스는 그림자도 찾을 수 없다. 공자도 형해만 남아 있을 것으로 짐작된다. 권력을 쫓는 사이비 통치자에게는 공자나 마르크스나 모두 쓰디쓴 약일뿐이다.

    당연한 일이지만 공자의 이상 정치, 즉 인과 예를 기본으로 하는 덕치(德治)는 현실 권력자들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고향 노나라에서 실패하고 쫓겨난 공자는 제(齊)나라로 간다. 요즘 말로는 망명이었다. 제나라 경공(景公)이 물었다.

    “정치의 요체는 무엇인가?”

    공자가 대답했다.

    “군(君)은 군(君)이고, 신(臣)은 신(臣)이며, 부(父)는 부(父)이고, 자(子)는 자(子)이다.”(論語 안연편)

    이 말을 두고 ‘예의 근본을 설파한 말’이라고도 하고, ‘당시 제나라의 혼란을 빗대어 말한 것’이라고도 하고, 또 ‘봉건질서에 대한 민중의 복종을 강요하고 개혁과 혁명을 근원적으로 봉쇄하는 보수적 굴종 철학’이라고 질타하는 무리도 있었다. 공자는 이 모든 비판을 초연하게 떠나 인간 사회의 본질을 꿰뚫어 보고 있었다. 그리고 정치의 궁극적 형태가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 분명하게 밝혀주고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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