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딸 (5)

    기고 / 시민일보 / 2007-03-12 15:3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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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인봉(변호사) 譯
    10살이 된 마가렛은 일본의 중·고교에 해당하는 여학교 케스티븐 앤드 그랜덤 걸즈 스쿨(Kesteven and Grantham Girl’s School)의 입학시험에 합격했다. 우수한 학생만을 모집하는 공립 그래머 스쿨이다. 그녀 앞에 노력 나름으로 대학에 가는 길이 열린 것이다. 게다가 마가렛은 장학금 시험에도 합격했다.

    여학교 시절의 마가렛은 우수했지만 뛰어나게 머리 회전이 빠른 학생은 아니었다. 어느 학교에나 그다지 노력하지 않아도 늘 톱클래스에 드는 학생이 몇 명은 있는 법이지만, 그녀는 그런 천재형 학생은 아니었다. 책상에 달라붙어 묵묵히 공부해서 성적이 올라가는 노력형 수재였다. 수업 중에는 조심스러워하며 선생의 말을 열심히 듣고, 귀가하면 반드시 그날의 수업에서 무엇이 있었는지 복습했다. 그녀가 다니던 여학교에서는 학생을 학력에 따라 A, B 두 클래스로 나누는 제도를 운영했는데, 첫해에 B클래스였던 마가렛은 다음 해부터 A에 들어가서 졸업까지 A를 지켜냈다.

    책을 많이 읽었던 탓인지 이 무렵 그녀는 드라마틱한 세계를 동경하여 여배우가 될 것을 꿈꿨다. 그러나 그녀의 고지식함과 거리낌 없는 성격으로는 도저히 여배우는 될 수 없었을 것이다. 대부분의 과목에서 톱 클래스에 들어간 그녀가 창조력, 표현력을 가장필요로 하는 예술 과목에서는 결국 톱 클래스에 들어가지 못한 사실이 그것을 시사하고 있다.

    그녀의 거리낌 없는 점은 변론 시간에는 크게 도움이 되었다. 변론부에 들어간 그녀는 직설적이고 확실한 화법으로 금방 주목을 받았다.

    어느때는 부드럽고 어느때는 강하게 강약 자유자재로 말하는 방식이 영국 웅변가의 기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마가렛은 달랐다. 하나의 생각을 극한까지 밀어 붙여 가는 것이다. 밀고 밀고 또 밀어 붙이는 강속구 형의 연설방법이었다.

    마가렛이 정치가로서 의회에서 질문에 나섰을 때, 또는 각료나 수상으로 답변에 나섰을 때의 말하는 방법은 여학교 시절의 방법과 별로 다르지 않았다. 야당 당수 시절 캘러헌(Callahan) 수상, 힐리(Healy) 재무장관을 끝까지 몰아세워 ‘전후 공격에 가장 우수한 정치가의 한 명’이라 불리게 된 것도 이 화법에 의해서였다.

    아버지는 한 가지를 더 가르쳤다. 그것이 마가렛의 인생의 방향을 결정짓게 된다.

    시회 의원에서 시장이 된 아버지 알프렛은 지방 정치가로서는 권력 단계의 꼭대기까지 올라갔다고 할 수 있으나, 의원이 되기 전에 이미 그의 점포는 일종의 정치 살롱으로 변해있었다. 식료품 점포의 안에 있던 응접실에는 도시 사람들이 들락날락 하며 어떤 사람은 도시 발전계획에 열변을 토하고, 어떤 사람은 국가의 군비 증강을 지지했으며, 다른 사람은 독일이나 이탈리아의 독재제도 강화를 비판하거나 했다. 시, 국가, 세계로 화제가 확대되다가 다시 신변 문제로 돌아오곤 했다.

    마가렛은 초등학생이었으나 어른들의 이야기에 가만히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아버지는 아이들에게 “어른들의 이야기를 듣지 말라”고도 꾸짖지 않았고 “어른들의 방해를 하지 말라”고도 말리지 않았다. 거꾸로 두 딸에게 어른들의 이야기를 적극적으로 듣도록 권하기까지 했다. 그런 아버지의 뜻에 적극적으로 따른 것은 둘째 딸 마가렛이었다. 그녀는 어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신의 세계가 확실히 넓어져가는 것을 스스로 느끼고 있었다.

    이 도시에 유명한 정치가가 찾아와서 연설회를 여는 경우, 알프렛이 일이 있어 갈 수 없으면 마가렛을 연설회 장소로 보내 이야기의 요점을 메모하도록 했다. 마가렛의 조숙함을 보여주는 에피소드인데, 아버지는 그녀가 조숙하도록 늘 자극을 주고 있었다. 알프렛은 마가렛을 남자 아이로 기르고 싶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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