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해주는 광활한 평원과 지하자원, 울창한 삼림이 우거진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탐스런 대지로, 일찍이 러시아는 동쪽으로 진출하면서 천혜의 부동항에 블라디보스토크라는 이름으로 수도를 정했다. 더구나 연해주는 고대사로부터 근현대사에 걸쳐 우리 한민족과는 깊은 관련을 지니고 있다. 고대에는 우리의 옛 땅인 발해의 영토였고, 근대에 이르러서는 이주 한인들의 생활터전이고 항일독립투쟁을 하던 선조들의 활동무대였다.
스탈린은 자본주의적 요소를 도입한 레닌의 ‘신경제정책(NEP)’을 버리고 급속한 산업화와 농업의 집단화를 추진하기 위해 중앙 통제적 계획경제체제를 구축하였다. 이러한 스탈린 체제구축은 교포들의 경제활동 및 기타 문화 활동을 크게 위축시키고 변화시켰다.
1953년 스탈린이 사망하고 나서야 이 모든 제약이 조금씩 풀리기 시작하였고, 한인은 온갖 역경을 극복하며 벼농사를 시작해 중앙아시아를 주요 쌀농사 지역으로 변화시켰다. 한인은 목화 등 다른 작물에서도 뛰어난 실적을 올리면서 빠르게 정착해 나갔다. ‘고려인들은 바위에 올려놓아도 풀이 난다’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끈질긴 생명력과 부지런한 정신을 바탕으로 농업기술을 발전시켜 나갔던 것이다.
이렇게 50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거기서 농사를 짓고 자식을 낳고 자리 잡고 살게 되었는데 이제 사정이 달라졌다. 구소련이 해체되는 바람에 민족 독립 국가들이 세워지자 상용되던 러시아 어도 쓸 수 없게 되었고 현지에 살던 고려인들은 국적도 없어져 버렸다. 한인과 같은 소수 민족은 거주국가의 민족어를 배우지 않으면 모든 면에서 차별대우를 받을 수밖에 없었고, 회교도의 민족주의 확산으로 인해 위기감이 고조되어 가는 상황이 이어졌다. 그런 가운데 이제 한인은 여러 가지로 심한 차별을 극복하고자 다시 옛 땅 연해주를 찾아 돌아오기 시작했다.
장차 통일을 전제로 해서 연해주가 지닌 경제적 특성을 고려해 본다면 한국은 정치적 간섭이나 주권을 행사할 수 없을지라도 연해주가 지닌 비옥하고 드넓은 땅과 천혜의 풍부한 자연자원을 이용한 경제적 투자를 적극적으로 펼쳐나가는 것도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동포들의 한을 풀어줄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이곳은 한국, 중국, 러시아, 일본이 인접하여 경제적 활성화를 꿈꿀 수 있는 지역이며, 이 지역을 중심으로 동북아 경제권이 형성되면 역사적·지역적 특성을 배경으로 우리가 주도적인 위치를 확보하게 될 것이다. 그때를 대비한 한국기업들의 현지 진출이야말로 귀환해 온 연해주 고려인들의 생계대책에 큰 도움을 주지 않겠는가.
연해주가 한국에 의해 주도적으로 개발되어 경제권이 형성되고 우리 기업들의 진출이 활발해지면 강제 이주당했던 고려인들을 속속 귀환시켜 그들의 한을 풀어줄 수 있을 것이고, 더불어 국내 실업문제도 어느 정도 해소시킬 수 있다. 연해주가 지닌 자연적 보고를 이용하면 중앙아시아 고려인들과, 국내에서 일자리를 찾아 떠난 한국인들로 구성된 한민족의 생활공간은 더욱 확충될 수밖에 없을 것이며, 이렇게 되면 대규모 경제, 문화 공동체가 형성될 것이다. 우리 세기에 새로운 역사의 장이 발해 땅에서 다시 펼쳐지게 되는 것이다.
일제 식민의 압제에서 광복된 지 60년, 그 긴 세월이 중국과 러시아에 흩어져 살던 해외동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그들이 60년 동안 이루 말할 수 없는 아픔과 고난의 세월을 어떻게 견뎌왔을까. 또한 그들에겐 조국 광복의 기쁨을 느끼기도 전에 조국의 분단이라는 서글픈 현실 앞에서 방치된 채 상처를 입고 살아왔다. 이제 우리는 그들이 아프게 걸어온 세월을 어루만져 줄 때가 되었다. 무관심한 방치와 냉대를 그만 접고 60년의 길고 긴 부끄러운 공동체의 역사를 성찰해야만 한다.
과거사 청산 등을 국가 현안문제로 논의하는 이 시점에서 나라를 잃고 일제의 식민지하에 연해주에서 독립의 근거지를 마련했던 일제강점기 이전 이후의 해외동포의 문제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할 것이다. 거주국의 차별과 냉대를 받으며 가난과 질곡의 시간을 보내온 해외동포 문제를 해결하지도 못한다면 한민족공동체 통합의 새로운 역사발전을 어떻게 기대한단 말인가.
스탈린은 자본주의적 요소를 도입한 레닌의 ‘신경제정책(NEP)’을 버리고 급속한 산업화와 농업의 집단화를 추진하기 위해 중앙 통제적 계획경제체제를 구축하였다. 이러한 스탈린 체제구축은 교포들의 경제활동 및 기타 문화 활동을 크게 위축시키고 변화시켰다.
1953년 스탈린이 사망하고 나서야 이 모든 제약이 조금씩 풀리기 시작하였고, 한인은 온갖 역경을 극복하며 벼농사를 시작해 중앙아시아를 주요 쌀농사 지역으로 변화시켰다. 한인은 목화 등 다른 작물에서도 뛰어난 실적을 올리면서 빠르게 정착해 나갔다. ‘고려인들은 바위에 올려놓아도 풀이 난다’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끈질긴 생명력과 부지런한 정신을 바탕으로 농업기술을 발전시켜 나갔던 것이다.
이렇게 50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거기서 농사를 짓고 자식을 낳고 자리 잡고 살게 되었는데 이제 사정이 달라졌다. 구소련이 해체되는 바람에 민족 독립 국가들이 세워지자 상용되던 러시아 어도 쓸 수 없게 되었고 현지에 살던 고려인들은 국적도 없어져 버렸다. 한인과 같은 소수 민족은 거주국가의 민족어를 배우지 않으면 모든 면에서 차별대우를 받을 수밖에 없었고, 회교도의 민족주의 확산으로 인해 위기감이 고조되어 가는 상황이 이어졌다. 그런 가운데 이제 한인은 여러 가지로 심한 차별을 극복하고자 다시 옛 땅 연해주를 찾아 돌아오기 시작했다.
장차 통일을 전제로 해서 연해주가 지닌 경제적 특성을 고려해 본다면 한국은 정치적 간섭이나 주권을 행사할 수 없을지라도 연해주가 지닌 비옥하고 드넓은 땅과 천혜의 풍부한 자연자원을 이용한 경제적 투자를 적극적으로 펼쳐나가는 것도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동포들의 한을 풀어줄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이곳은 한국, 중국, 러시아, 일본이 인접하여 경제적 활성화를 꿈꿀 수 있는 지역이며, 이 지역을 중심으로 동북아 경제권이 형성되면 역사적·지역적 특성을 배경으로 우리가 주도적인 위치를 확보하게 될 것이다. 그때를 대비한 한국기업들의 현지 진출이야말로 귀환해 온 연해주 고려인들의 생계대책에 큰 도움을 주지 않겠는가.
연해주가 한국에 의해 주도적으로 개발되어 경제권이 형성되고 우리 기업들의 진출이 활발해지면 강제 이주당했던 고려인들을 속속 귀환시켜 그들의 한을 풀어줄 수 있을 것이고, 더불어 국내 실업문제도 어느 정도 해소시킬 수 있다. 연해주가 지닌 자연적 보고를 이용하면 중앙아시아 고려인들과, 국내에서 일자리를 찾아 떠난 한국인들로 구성된 한민족의 생활공간은 더욱 확충될 수밖에 없을 것이며, 이렇게 되면 대규모 경제, 문화 공동체가 형성될 것이다. 우리 세기에 새로운 역사의 장이 발해 땅에서 다시 펼쳐지게 되는 것이다.
일제 식민의 압제에서 광복된 지 60년, 그 긴 세월이 중국과 러시아에 흩어져 살던 해외동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그들이 60년 동안 이루 말할 수 없는 아픔과 고난의 세월을 어떻게 견뎌왔을까. 또한 그들에겐 조국 광복의 기쁨을 느끼기도 전에 조국의 분단이라는 서글픈 현실 앞에서 방치된 채 상처를 입고 살아왔다. 이제 우리는 그들이 아프게 걸어온 세월을 어루만져 줄 때가 되었다. 무관심한 방치와 냉대를 그만 접고 60년의 길고 긴 부끄러운 공동체의 역사를 성찰해야만 한다.
과거사 청산 등을 국가 현안문제로 논의하는 이 시점에서 나라를 잃고 일제의 식민지하에 연해주에서 독립의 근거지를 마련했던 일제강점기 이전 이후의 해외동포의 문제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할 것이다. 거주국의 차별과 냉대를 받으며 가난과 질곡의 시간을 보내온 해외동포 문제를 해결하지도 못한다면 한민족공동체 통합의 새로운 역사발전을 어떻게 기대한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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