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달리는 그 길, 내겐 새로운 인생의 출발 (4)

    기고 / 시민일보 / 2007-04-02 16:3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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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기(중국북경대학 연구교수)
    매질을 견뎌내기도 힘들었지만, 눈물을 보이지 않기 위해 나 자신과 싸우는 일은 더욱 힘들었다. 또 내가 이런 일을 당할 만큼 잘못했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내가 이를 악물고 버티는 것을 지켜보던 조교 형들과 학생들이 울음을 터뜨렸다. 제대로 먹지를 못해 바싹 야윈 내 몸에 사정없이 와 닿던 몽둥이의 무게가 안 느껴진다 싶더니, 나는 그 자리에서 정신을 잃고 말았다. 어떻게 그 자리를 벗어났는지, 누가 나를 끌고 나왔는지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하지만 동물적인 감각으로 매질이 그쳤다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

    그날 저녁, 같이 지내는 조교 형들은 시꺼멓게 멍든 내 몸을 보며 나보다 더 많이 울었다. 아마도 쓰러진 나를 들쳐 업고 그 자리를 빠져나온 이도 이들 중 한 사람일 거라고 생각하니 그들의 정이 고마워 나도 모르게 주르륵 눈물이 흘렀다. 하지만 내가 처한 상황 때문에, 나 자신을 향한 연민 때문에 울지는 않았다. 맞은 자리가 너무 아팠지만 이상하게도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그날 밤 나는 어떻게 해야 이 싸움에서 내 자존심도 지키고 사람들에게 내 본래 의도를 확인 시킬 수 있을지 생각하느라 밤을 꼬박 새웠다. 강사들 중 일부는 나의 돌출적인 새벽 강의를 자신들이 어렵사리 닦아놓은 기득권에 대한 중대한 도전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학생과장의 거친 대응은 그런 강사들의 속뜻을 대변하는 행동이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내 의도는 그런 것이 아니었다. 내가 주제넘게 학생들 앞에 선 것은 다른 사람의 기득권을 넘보았다기보다는 나 자신에 대한 확인이었고 나 자신에 대한 도전이었다. 나의 도전 상대는 언제나 그랬듯이 바로 나 자신이었다. 그러므로 여기서 물러설 수는 없었다. 나와의 약속을 믿고 새벽부터 와 있을 학생들을 저버려서도 안 될 일이었다. 무엇보다 몽둥이가 무서워 물러선다는 것이 참을 수 없는 치욕으로 느껴졌다. 인간에게 가장 공포를 느끼게 하는 것은 육체에 가해지는 폭력이 아니다. 그깟 몽둥이 하나로 나를 때려눕히려 한 학생과장은 그런 점에서 인간에 대해 너무 무지한 사람이었다.

    ‘나, 김정기 아직 살아 있다.’

    마이크를 잡고 보니 다시금 내 안에 오기가 생겼다. 그리고 중요한 건 학생들에게 좋은 강의를 하는 것이지, 조교니 강사니 하는 타이틀이 아니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날 수업이 끝나고 나는 다시 죽지만 않을 만큼 맞아야 했다. 전날 맞은 매로 퍼렇다 못해 새까맣게 멍이 든 허벅지와 엉덩이 위로 다시 몽둥이가 날아들었다. 나는 다시 쓰러지고 말았다. 나와 학생과장과의 싸움은 어느 새 벼랑 위의 싸움이 되어 있었다. 누구도 물러설 수 없는 오기 싸움이 된 것이다. 이 싸움은 내가 입주 가정교사 자리를 구해 학원을 그만둠으로써 일단락되었다. 상경 6개월 만이었다.

    18세의 어린 학생이 학원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강의를 한다는 것이 무얼 의미하는지 그때 나는 몰랐다. 그게 강사들에겐 엄청난 도전이고, 학원으로서도 많은 위험 부담이 따른다는 걸 알게 된 것은 그 일을 겪고 난 다음이었다. 나 자신을 새로운 모험에 던져놓고 스스로 청한 도전에 빠져 그런 생각은 못 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열여덟이란 어린 나이에 그 많은 학생 앞에서 영어 강의를 한다는 것은 나로서도 쉽지 않은 결단이었다. ‘내 강의를 학생들이 잘 들어줄까?’ 30분 강의를 하기 위해 나는 수백번씩 사전을 뒤적여야 했고 몇 시간 동안 수업 내용을 연구해야 했다. 정해진 조교 수당 외에 더 많은 돈을 바라고 한 일도 아니었다. 나는 나 스스로 맡은 그 일을 잘 하고 싶었고, 그럼으로써 나 자신의 능력을 시험해보고 싶었을 뿐이다.

    내가 그때 학생과장의 폭력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 내 삶이 또 다른 장애와 도전에 부닥쳤을 때 나는 또다시 무릎을 꿇었을 거라는 사실이다. 한 번 벽을 넘지 못한 사람은 그 다음 장벽 앞에서도 무기력하게 무릎을 꿇고 만다. 그렇게 함으로써 꿈 많고 패기 넘치던 청년은 어느덧 평범한 소시민으로 변해가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살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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