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정신을 바짝 차릴 때

    기고 / 시민일보 / 2007-04-12 20:21:28
    • 카카오톡 보내기
    전대열(한국정치평론가협회장)
    {ILINK:1} 호떡집에 불났을 때라는 말이 왜 생겼을까. 어떤 곳이든 불이나면 시끄럽고 혼잡스럽다. 까딱 잘못하여 당황하다보면 초기진화에 실패하고 큰 불로 번질 수 있다. 조금만 더 침착하게 대응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화재사고가 많다. 엄청난 피해를 안겨줬던 대구지하철도 하찮은 방화가 우왕좌왕하다가 엎치고 덮친 격이 된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의 실정을 보면 누구라 할 것 없이 정신없이 돌아가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만든다. 북한의 핵실험으로 초긴장상태가 계속되더니 이번에는 FTA타결로 온 나라가 들썩이고 있다. 만만찮은 반대세력들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데모를 한다. 이로 인해서 광화문을 중심으로 한 교통체증이 시민들을 못내 짜증으로 몬다. 그렇다고 시위자들에게 욕을 할 수도 없다.

    나름대로 국가와 국민을 위해서라는 대의명분을 내걸었는데 그만 두라고 하기도 어렵다. 다만 반대를 위한 반대가 되지만 않는다면 총론은 몰라도 각론에 들어가면 경청할만한 대목이 많다. 가장 큰 문제점은 농산물이다. 자원이 부족한 국가가 그나마 경제적인 성장을 이루려면 수출을 많이 할 수 있는 공산품에 승부를 건다.

    한국이 그나마 비약적인 경제성장을 이뤄 오늘날 세계 12위의 경제대국이 된 것은 국민들의 높은 교육열과 이를 바탕으로 일궈낸 기술에 있다. 특히 IT분야와 자동차, 철강, 조선과 같은 고도의 기술과 기능 그리고 마케팅이 필요한 분야에서 우수한 인력이 뒷받침을 하고 있기 때문에 세계시장을 석권할 수 있는 것이다. 이번 FTA에서도 이 분야는 전통적인 섬유와 함께 웃음꽃을 피웠다고 평가된다.

    다만 농축수산 분야는 우리가 가장 취약한 면이다. 끝없이 펼쳐진 비옥하고 널따란 농토에서 완전 기계화로 생산되는 미국의 농산물과 축산물 그리고 한참 앞선 수산물의 값싼 공세를 이겨내기란 쉽지 않다. 1차 산업인 농수산업에 종사하는 인구가 과거처럼 많은 것은 아니지만 아직도 우리의 뇌리에는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의 사상이 깔려있다.

    쌀의 소비량이 옛날에 비하면 3분의1에 불과할 정도로 줄어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우리는 가장 큰 주산물로 쌀을 챙긴다. FTA협상에서도 쌀은 불가촉물(不可觸物)이었다. 이를 잘 알고 있는 미국측에서 마지막 판에 쌀을 건든 것은 다른데서 양보를 더 얻어내기 위한 협상기술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날카로운 신경전을 벌이면서도 어찌되었든 FTA는 타결되었다.

    양국의회의 비준이라는 고비가 남아있긴 하지만 14개월을 끈 난산 끝에 낳은 옥동자를 태평양에 내버리는 어리석음은 저지르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핑계만 있으면 독설을 퍼붓던 한나라당이 이례적으로 노 대통령을 높이 평가하고 국민들도 박수를 보내고 있는 판에 깽판이 나오진 않을 듯하다. 진보단체 일부에서는 ‘배신자’라고 손가락질을 하고 있지만 해일처럼 몰려오는 칭찬 속에 묻혀버렸다.

    김근태와 천정배의 단식반대는 명분을 잃었다는 평가만 받았을 뿐이다. 국무회의에서 FTA피해상황을 보고하던 해수부장관이 엄청난 피해라는 표현을 썼다가 대통령에게 질책을 당했다는 보도는 과학적인 근거와 통계에 입각하지 못한 주먹구구식 포퓰리즘에 대한 경고다. 이런 판국에 국민연금법은 부결되고 기초노령연금법만 통과시키는 일이 벌어졌다. 많이 내고 조금 받도록 법을 고쳐야 하는데 많이 주는 법만 만든 셈이다.

    이에 대한 책임을 지고 유시민이 복지부장관 자리를 내놨다. 청와대에서 수리를 보류하긴 했지만 연금법이 부결된 것은 그에 대한 국회의원들의 반감 때문이라는 말도 떠돈다. 개인적인 호오(好惡)는 차치하고라도 그는 소신을 가지고 연금법 개정에 매달린 사람이다. 그가 물러나더라도 연금법개정안은 통과해야만 국가 장래가 안정될 것으로 보인다.

    지금 정부는 폭주하는 국내외의 사정변경에 어지러움을 느끼고 있는 모양새다. 미국과의 FTA는 중국, 일본, EU까지도 이에 대한 협상이 곧 진행될 수밖에 없는 국제적 환경이 조성되었다. 이런 것들이 몰려온다고 할지라도 정부가 소신 있는 판단으로 임하기만 하면 꿀릴 게 없다는 것이 우리의 확신이다.

    모처럼 국민 여론과 야당의 지지를 이끌어낸 노무현 대통령의 뚝심은 뚝심으로 끝나선 안 된다. 아무리 소신이라지만 개헌안발의 같은 것은 접어두는 슬기를 발휘해야 한다. 1년도 남지 않은 임기를 앞두고 FTA라는 거대한 파도를 넘은 것은 그의 업적이 될 수 있다. 이를 증진시키고 여기에 모든 여력을 집중하여 ‘경제 대통령’으로 추앙받을 유일한 기회다.

    차기정권 재창출이나 남북정상회담 그리고 개헌 등 어렵고 복잡한 일에 매달리지 않아도 FTA만으로도 크게 평가받는다. 정부가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할 때라고 충고하고 싶다.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시민일보.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시민일보 시민일보

    기자의 인기기사

    뉴스댓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