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시대 협상전문가로 국제변호사가 되다 (2)

    기고 / 시민일보 / 2007-04-15 19: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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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기(중국북경대학 연구교수)
    집주인과 세입자의 갈등 외에도 친구나 연인끼리 돈 문제로 싸우다 찾아오는 경우도 심심찮게 있었다. 어떤 대학생은 친구한테서 중고차를 샀는데 일주일도 안 돼 고장이 났다며, 원래 자동차 주인인 친구에게 보상을 요구하겠다고 법정을 찾아왔다.

    오랫동안 동거하다 헤어지는 남녀가 집세나 전화요금 같은 돈 문제로 다투다 찾아오는 경우도 있었다. 그들은 동전 한 닢까지 계산을 끝낸 다음 헤어졌다. 우리처럼 법정을 찾아와서도 울고불고 매달리는 연인들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아무튼 문제가 해결되면 감정의 앙금 없이 깨끗하게 악수하며 관계를 정리하는 결단은 대단해 보였다. 줄 것은 주고, 받을 것은 받아야 감정도 깔끔하게 정리된다고 생각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미국인들은 자기 감정을 조절하는 데 뛰어나다. 판사시보 때는 서민들의 분쟁 조정을 많이 맡았는데, 욕설이나 인신공격 등 자신의 감정을 함부로 드러내고 다투는 사람은 거의 보지 못했다.

    우리 모습은 어떤가. 문제가 생기면 당사자들끼리 서로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퍼붓고 주먹질이 오갈지언정 법정에는 좀처럼 서려 하지 않는 게 우리나라 사람들이다. 또 이웃이나 친구 간에 손해 보는 일이 있어도 치사한 사람이라는 말이 듣기 싫어서, 아니면 인정에 이끌려 혼자 속으로만 분을 삭이는 경우도 많다. 미국 사람들은 사람들 사이에 문제가 생기면 기본적으로 법정에서 해결한다는 마인드를 가지고 있다. 우리는 ‘보증과 송사는 자칫 잘못하면 3대가 망한다’는 속설 때문인지 법정에 나서는 것에 거부감이 심하다.

    법원의 조정이나 중재 기능이 강화되면 정식 재판 전에 조정과 중재 과정을 거치게 되는데, 이러한 과정은 법정에 대한 두려움과 거부감을 훨씬 줄여준다. 더불어 법 전문가들의 도움으로 합리적인 결과를 얻어낼 수 있다. 조정과 중재의 목적은 승자와 패자가 갈리지 않고 모두가 승리하는 ‘윈윈 게임’이 되게 하는 것이다. 일방적으로 한쪽의 손을 들어줌으로써 다른 한쪽을 패자로 만드는 재판보다는 조정과 중재를 통해 타협점을 찾는 시스템이야말로 송사 당사자들에게 문제를 해결해주는 바람직한 방편이다. 이런 시스템은 건전한 사회를 이루어나가는 데 반드시 필요하다.

    우리가 익히 경험하듯이 승자와 패자가 명확히 구분되는 사회에서는 구성원들이 극과 극으로 치달아 화합을 도모하기 어렵게 된다. 그러면서도 승자는 언제 패자로 전락할지 모른다는 초조함으로 늘 긴장하고, 패자는 자신의 가능성에 한계를 그음으로써 상처를 안게 된다. 하지만 조정과 중재를 거치면 합의점을 찾는 과정에서 서로 양보하게 되고, 그러면서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게 된다. 이러한 이해와 양보는 건강한 사회를 만들어가는 지름길이 된다.

    조정과 중재의 과정은 제도적인 면에서도 많은 장점이 있다. 우선 갈등이나 분쟁을 아주 빠른 시간에 간단히 해결할 수 있는 점을 들 수 있다. 대부분의 사건은 보통 오전 9시쯤 조정에 들어가면 정오가 되기 전에 끝난다. 아무리 길어봐야 3시간을 넘기지 않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무엇 때문인지 별것 아닌 일로 질질 끌고, 절차도 복잡하고, 무엇보다 소송을 준비하는 데 비용이 많이 들어 소송 당사자가 망설이는 경우가 많다. 이런 문제들도 조정과 중재 과정에서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다. 이렇게 법원 문턱이 낮아지면 가난한 보통 사람들이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다른 곳을 기웃거리지 않고 곧장 법원으로 달려와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에서는 법원에 접수되는 사건의 95퍼센트를 조정과 중재를 통해 해결한다. 그리고 접수된 사건의 70퍼센트 이상이 합의에 도달한다. 우리나라는 가족법 분야에서만 조정 제도를 활용하는데, 다른 분야에서도 조정과 중재 시스템을 확대해야 한다. 상대방을 이겨야만 내가 사는 체제가 아니라 함께 살 수 있는 과정을 통해 사람들은 인간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을 배우게 된다. 양보는 패배가 아니라 승리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배우는 것이다.

    우리 사회가 승자와 패자로 나뉘는 분열된 사회여서는 안 된다. 이제 모두가 다 함께 잘사는 상생의 사회가 되어야 한다. 양보와 이해심을 통해 합의점을 찾는 방법이 제도화되기를 바라는 것도 이런 절박한 이유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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