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DA 협상의 교훈

    기고 / 시민일보 / 2007-04-16 18:3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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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근식 경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ILINK:1} BDA 문제로 2.13 프로세스가 머뭇거리고 있다. 2.13 합의 이후 북미관계 정상화 실무회담 등 5개의 워킹그룹 회의가 원만하게 진행되고 3월19일 미국 재무부가 BDA 동결 자금 전액 해제를 발표할 때만 해도 상황은 낙관적이었다. 그러나 자금 이체와 관련한 기술실무적 문제가 발생하면서 지난달 개최되었던 6차 6자회담마저 공전하게 되었고 지금까지 BDA 문제는 진행형을 맞고 있다.

    최근의 BDA 해결과정에서 우리는 중요한 교훈을 인식해야 한다. 북한과 미국 모두 문제해결을 지나치게 정치적 차원에서만 사고함으로써 정작 해결에 합의하고도 문제를 제대로 풀지 못하는 기묘한 상황을 맞았다는 점이다.

    미국은 미국대로 자신의 정치적 결단만 있다면 북한이 2.13 합의 약속을 응당 취할 것으로 쉽게 생각했다. 6자회담과 별개라면서 끝까지 대북 금융제재의 정당성을 강조했던 재무부를 달래서 부시 행정부가 BDA 해결의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을 때, 즉 3.19일 글래이져 부차관보의 성명 발표로 미국은 문제가 일단락되는 것으로 쉽게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북한은 재무부를 설득한 미국의 정치적 결단과 선언만으로 BDA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생각지 않았다. 동결자금의 직접 입금이 확인되어야만 다음 단계의 조치로 넘어가겠다는 입장이었다. 그리고 중국은행 내 북한 계좌로의 송금을 거쳐 제3국 은행에 이체하는 방식이 중국 당국의 비협조와 중국은행의 거부라는 돌발상황을 맞으면서 기술실무적으로 난관에 봉착하고 말았다. 결국 미국은 문제를 해결하고도 해결이 완료되지 않은 어정쩡한 상황을 맞게 된 것이다.

    이는 북한도 마찬가지였다. 그동안 BDA 문제의 해결은 미국 정부가 결심하기만 하면 되는 것으로 북한은 간주했다.

    그러나 정작 미국이 문제해결에 나서기로 결심했음에도 불구하고 이후 송금 이체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복병이 나타났고 이는 사실상 냉정한 국제금융시스템의 생리를 조금만이라도 안다면 그리고 신용 평가에 목맬 수밖에 없는 은행의 현실을 고려한다면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다. 즉 북한도 BDA 문제 해결을 미국 정부의 정치적 결정에만 지나치게 집착함으로써 정작 미국의 결정 이후에도 금융체계와 시장원리상 복병이 나타날 수 있음을 전혀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북미 협상의 본질은 정치적 주고받기이고 정치적 결정이겠지만 구체적 쟁점의 해결과정에서는 이를 실행하는 기술적 문제와 실무적 고려가 치밀하게 수반되어야 하고 특히 경제논리와 관련된 이슈는 양국의 정치적 판단 이외에 경제적 차원의 다양한 변수들을 고려해야 함을 교훈으로 깨달아야 할 것이다.

    최근 BDA 해결과정을 보면서 일각에서는 2.13 합의가 결국은 부도나고 말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을 섣불리 내놓기도 한다. 애초부터 2.13 합의를 달갑게 여기지 않았던 측에서는 이번 BDA 지연과정을 보고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라는 식의 판단을 내리고 북한과 미국 모두 2.13 합의 이행이 어려울 것이라고 지레 예단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이번 BDA 과정을 통해 하나 놓쳐서는 안 될 대목은 우여곡절을 겪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2.13 합의의 생명력이 아직은 존재하고 있다는 점이다.

    3.19 미국 재무부 성명 이후 BDA 문제를 정치적으로는 해결해놓고 실무적으로 해결하지 못하면서 2.13 합의 일정표가 한 달 가까이 지연된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이 바로 2.13 합의이행의 동력이 중단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이 과정 동안 미국은 그 어느 때보다 문제해결을 위해 총력을 기울여 올인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렇게 바쁜 미국 재무부 부차관보가 북경에 10일씩 머물면서 문제해결을 위해 백방으로 노력한 사실 자체는 미국이 2.13 프로세스의 원만한 진행을 위해 얼마나 절실하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역으로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또한 중국은행을 경유한 송금 방식이 좌절되자 미국 재무부의 기존 방침에 위배되면서까지 BDA 은행의 북한계좌를 전면해제하고 정상화시키기로 한 것 역시 지금 국면에서 미국이 2.13 이행을 위해 그 어느 때보다 적극적임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번처럼 한 달 가까이 문제해결이 지연되었다면 과거의 경우에는 북한과 미국 모두 상대방에게 책임을 전가하면서 맹렬히 비난하고 협상 결렬 선언과 함께 갈등 국면으로 되돌아갔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이번 상황에서는 북한과 미국 모두 지연되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름대로 성의를 다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고 이를 기다려주는 태도였다는 점에서 잠깐의 기복은 있을 수 있겠지만 2.13 합의 이행은 여전히 동력을 간직한 채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또 우리는 그렇게 되도록 촉구하고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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