三不에서 一可라도 해야

    기고 / 시민일보 / 2007-04-18 19: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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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대열 (한국정치평론가협회장)
    {ILINK:1} 큰 절에 가면 삼존불(三尊佛)을 모신 대웅전이 자리 잡고 있어 참배객들이 절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석가모니불과 관세음보살 그리고 문수보살이나 지장보살 등을 모셨는데 요즘 신문을 보면 삼존불이 아닌 삼불 얘기만 나온다. 같은 ‘불’자를 쓰긴 하지만 하나는 부처님을 가리켜 사해대중을 포용하는 넉넉함이 느껴지지만 다른 하나는 ‘아니 불’자로 모든 것을 부정하는 의미로 쓰이고 있다.

    세 가지가 모두 안 된다는 뜻을 가지고 있기에 듣는 이에게는 유쾌하지 못한 측면이 있다. 부정적인 것보다는 긍정적으로 사는 것이 건강에도 좋다고 하니까 불(不)보다는 가(可)쪽으로 노력하는 것이 어떨까 생각해 보게 된다.

    삼불정책이란 교육인적자원부의 고루한 교육정책의 핵심이다. 교육이란 언제나 긍정적이고 합리적인 것을 가르치는 것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엉뚱할 수밖에 없는 부정적이고 불합리한 정책이 오랜 세월 지속되고 있어 이제는 그것이 ‘진짜 교육’인 것처럼 느껴질 지경이다. 나쁜 것도 오래되면 자연스럽게 세뇌되는 원리 때문이다.
    삼불이라는 말 속에는 기여 입학제라는 것도 있다.

    미국에서 시행되고 있다는 이 제도는 우리 국민들의 정서에는 맞지 않는다. 학교에서 요구하는 기부금을 내면 입학시켜준다는 제도인데 실력이야 있건 없건 간에 따질 것도 없이 돈이면 만사 오케이라는 뜻이 된다. 물론 정원 외의 일정 비율을 따로 정해서 입학을 시키고 그 돈을 가난한 학생들의 장학금과 학교 시설을 현대화하는데 사용하기로 한다는 취지다.

    언뜻 들으면 아무에게도 폐를 끼치는 일이 아니다. 더구나 학교시설이 개선되고 돈이 없어 학업중단이 예상되는 학생에게는 복음이 될 수도 있는 일이다.
    그러나 공정한 경쟁을 토대로 해야 할 학교가 돈 거래로 왔다 갔다 해서야 되겠느냐 하는 원초적 정서에 배치된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현실 면에서 이는 유예하는 것이 마땅하다.

    또 하나는 고교 등급제다. 1등급 학교가 있고 2등급 학교도 있다.
    과거에는 학교차가 뚜렷했다. 명문고교는 분명히 존재했다. 경기고교는 부동의 전국 1위의 위상을 넘겨줘본 일이 없을 정도다.
    각 지방마다 한 둘의 명문이 있어서 지금도 그 서열을 자랑하는 이들이 있다. 이 명문 출신들이 들어가고자 하는 대학은 서울대학교다. 서울대에 몇 명의 학생을 입학시켰느냐 하는 것이 고교 등급을 결정하는 바로미터다.

    이를 폐지하기 위해서 교육부가 한 것이 평준화 정책이다. 고교 입학시험을 없애고 모든 학생을 컴퓨터 추첨으로 입학할 학교를 배정하는 방식인데 참으로 비교육적인 방책을 시행한지 벌써 30년이 훨씬 넘었다. 명분은 그럴 듯 했다. 고교입시를 위한 치열한 경쟁을 없애 학부모의 짐을 덜어준다는 것이었다.

    그로서 입시지옥은 일단 사라졌다. 중학교 때 놀아먹어도 누가 시비할 사람이 없다. 선생님들도 편하다. 학부모들은 자식들이 머리 싸매고 공부하는 꼴을 안쓰러운 마음으로 바라보는 일이 없어졌으니 우선은 곶감이 달다.
    어떻게 보면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격이 되었는지는 몰라도 결국 대학 입학 때 덤터기를 쓰게 된다.

    대학입학 예비고사다, 수학능력시험이다 하는 이름으로 그럴듯하게 포장된 전국을 일원으로 한 대입 예비 관문을 우선 통과해야 한다. 높은 점수를 받은 순서로 대학 서열에 따라 입학이 결정되는데 눈치만 잘 보면 마지막 순간에 대박을 터뜨리는 수도 있다. 미리 겁에 질려 명문대 지원이 의외로 적을 때가 있는데 이 때 복병처럼 숨어있던 도박꾼(?)이 날쌔게 배팅을 한다. 그렇게 해서 서울법대를 적은 점수로 들어간 사람이 실제로 있다.

    고교 등급제를 타파한 입시정책이 결국 ‘재수보기’로 전락한 셈이다. 이처럼 기여 입학제는 물론 고교 등급제까지 인정하지 않으면서 그것들을 밑받침하는 방편으로 대학 고유의 신입생 선발권까지 앗아갔다.

    교육에 대한 기본은 실제로 학생들을 상대하고 있는 교수(교사)들에게 주어져 있는 게 상식이다. 어떤 식으로 가르칠 것인지 정하는 일도 그들에게 맡겨져야 한다. 학생들의 실력을 정확히 알고 어떤 내용으로 무엇을 가르칠 것인지 알고 있는 사람이 교수들 말고 누가 있겠는가.

    따라서 신입생을 선발하는 권한은 개별 학교가 가지는 것이 가장 교육적이고 정상적이다. 학생들도 자부심이 컸다. 그런데 평준화에 따른 입시 일원화는 결국 대학의 질을 떨어뜨리는데 이바지했을 뿐이다. 어차피 대학은 차별이 있게 마련이다. 세계를 지향하는 현대의 대학들이 학생 선발권도 갖고 있지 못하다는 것은 세계의 웃음꺼리다. 삼불(三不)에서 일가(一可)라도 되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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