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당에서 (6)

    기고 / 시민일보 / 2007-04-19 19:3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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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인봉(변호사) 譯
    강연이나 연설 전 그녀는 흔히 하원의 도서관에 틀어박혔다. 자료를 조사하여 인용구를 찾아내고 말해야 할 내용을 음미했다. 그녀의 연설은 늘 정성 들여 준비되어 있었다. 그 자리에서 즉흥적으로 말하는 게 아니라 미리 충분히 준비한 것이었다. 천진난만하지도 않고 위트가 풍부하지도 않으며 오직 예리한 논리만 갖추고 있었으므로, 그것을 보완하는 사실이나 인용구, 숫자 등을 필요로 했던 것이다. 특히 그녀는 숫자가 가진 설득력을 잘 알고 있었다. 숫자 콤플렉스를 가진 사람이 많다는 걸 알고 있었던 그녀는 요소 요소에서 숫자를 구사했다. 숫자가 지나치게 많이 사용되면 무미 건조한 연설이 되어 버리지만, 결정적인 대목에서 몇 개의 숫자는 엄청난 위력을 발휘하게 된다. 숫자를 기억하여 그것을 능숙하게 이용할 수 있었던 것은 그녀의 정치적 능력의 하나일 것이다.

    숫자의 마력을 잘 알고 있었다는 것은 기지, 유머가 부족하다는 것을 스스로 깨닫고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영국의 정치가에게 가장 중요한 자질의 하나로 유머 센스가 꼽히는데, 대처는 자신에게 그런 자질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연설 전에 수험생처럼 도서관에 틀어박혀 준비했던 것이다. 유머로 사람을 끌어 당기는 게 아니라 논리의 날카로움에 의해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아야만 하였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해야할지, 사람이 고개를 끄덕이게 하기 위해 어떤 숫자를 사용할지 충분히 준비해만 했다. 그리고 나서는 이리 준비하지 않은 것처럼 연설 초고도 들지 않은 채 연단에 올랐다. 처녀 연설 때 ‘메모 없이 30분간 이야기했다’는 것이 얼마나 사람들에게 감명을 주었는지 절실히 느꼈던 것이다. 이 해 12월, 어머니 베아트리스 로버트가 암으로 사망했다. 죽기 몇 개월 전부터 입원과 퇴원을 거듭했는데, 마지막에는 그랜덤의 노스 퍼레이드 거리 1번지의 자택에서 영면했다. 어머니의 부음이 대처에게 도착했을 때 딸 캐롤이 큰소리로 울었다.

    캐롤은 이때 어머니가 상냥하게 “걱정하지마, 할머니는 천국에 가셨단다.”고 말한 것을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대처는 슬픈 나머지 안색은 창백해지면서도 결코 사람들에게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은 이것을 그녀가 차가운 성격이기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분명히 인간의 희로애락에 반응하지 않는 차가움이 그녀 속에는 있다. 그러나 그녀는 말하자면 한 사람의 영국 신사이기도 했다. 그녀는 어릴 적부터 “허둥대지 말라(Don’t panic)”는 말을 듣고 자라난 것이다. 영국 신사의 조건은 위기에서도 냉정함을 잃지 않는 것이다. 예컨대 신사는 이런 경우에도 당황해서는 안 된다. 친구 집이나 호텔에 숙박할 때 잘못하여 엉뚱한 방문을 열어버렸을 때, 그게 욕실 도어로 공교롭게도 부인이 샤워를 하고 있었다 하자. 신사는 사이를 두지 않고 즉각 “Excuse me, Sir” 라고 말해야 한다. 잘못하였더라도 “Excuse me, Madame”이라 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신사라면 여성의 나체를 들여다보는 상스러운 짓을 할 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 위기에서도 신사는 당황하지 않는 법이다.

    몽고메리 원수의 부관이었던 더글러스 서덜랜드 소령은 베스트셀러 “영국 신사”의 저자로 유명한데, 그는 몽고메리 원수야말로 진정한 영국 신사였다고 필자에게 이야기한 적이 있다. 유럽전선에서 원수 휘하의 영국군이 독일군의 총공격을 당했을 때의 일이다. 총탄이 원수와 부관 주위에 떨어졌다. 부관들은 크게 당황하여 참호에 뛰어들었으나, 원수만은 혼자 유유히 걸어서 참호로 향했다 한다. 맥아더 원수에게도 비슷한 이야기가 있다.

    ※본란에 연재되는 내용은 구로이와(黑岩徹) 원작을 정인봉 변호사가 번역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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