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 모두 국민에게 사랑 받는 타입의 지도자는 아니었다. 처칠이나 맥밀런처럼 그 인품에 반할 수 있는 정치가는 아니었다. 두 사람은 모두 국민으로부터 사랑은 받지 못했으나 존경은 받았다. 그들의 성격을 좋아한 사람들은 적었으나, 정치적 실력을 높이 평가한 사람들은 많았다. 영국 재건에는 사랑보다 실력이 필요한 시대였던 것이다. 히스와 대처가 닮은 점은 역으로 두 사람을 결정적으로 대립하게 만들었다. 두 사람이 가진 공격성은 두 사람이 대립했을 때 타협을 허락하지 않고 서로 철저하게 비판으로 일관했던 것이다.
하지만 히스가 보수당 당수가 되어 정권을 잡기까지 ‘그림자 수상’이었던 5년간 대처는 히스에게서 정치가로서 많은 교육을 받았다. 히스는 대처에게 ‘그림자 내각’에서 다양한 부문을 담당케 했다. 1965년에 주택토지장관, 연금장관, 1966년에 재무장관을 담당시키고, 1967년에 연료전력장관에, 1968년에는 교육장관에 임명했다. 그리고 그 해 그림자 내각의 운수장관을 시킨 다음 다시 교육장관으로 일을 맡겼다.
‘그림자 내각’이란 야당 제1당이 진짜 내각에 대항하여 만든 내각으로 ‘그림자 각료’는 담당부문의 당 정책에 책임을 지고 당을 대표하여 발언한다. 따라서 가령 ‘그림자 국방장관’은 ‘국방 대변인’이라고도 부른다. ‘그림자 내각’에는 권한이 없기 때문에 ‘그림자’라는 이름이 붙여져 그늘에서 사는 사람처럼 취급되었으나 실제로는 공적 지위인 것이다. 그림자 내각의 장, 즉 그림자 수상인 야당 제1당 당수의 지위는 공적으로도 보증되고 국가에서 급료도 나온다. 다음 선거에서 여당이 될 가능성이 극히 높으므로, 야당은 ‘국왕(여왕) 폐하의 반대 당’이라 불리며, 공적 지위가 인정되었던 것이다.
그런 만큼 ‘그림자 내각’이 내세우는 정책은 현실주의적이고 실제 정권을 잡았을 때 실현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그림자 내각’은 다음 선거에 이긴 경우에 대비하여 항상 담당 부처의 움직임이나 정책을 검토해두어야 했다. 또 ‘실제 내각’의 정책에 엄격한 비판을 가할 준비도 필요했다. ‘그림자 내각’의 일원이라는 것은 직접 책임이야 없지만 정치와 행정을 알기 위해 최적의 장이었다. 대처로서는 5년 동안에 이처럼 많은 행정부의 활동을 실지로 해 보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고 그 식견을 넓히는 데 크게 도움이 되었다. 이 점에서 그녀는 히스에게 감사해야 할 것이다. ‘그림자 내각’의 여러 자리를 맡으면서 대처는 몇 번씩이나 보수당 내에서 칭찬을 받았다.
예를 들면 노동당 정부가 ‘선택적 고용세(SET)’를 제안해왔을 때가 그랬다. 그림자 내각의 내부차관으로서 대처는 당시 내무장관 제임스 캘러헌과 대결하게 되었다.
정부를 공격하는 연설 전에 대처는 철저한 준비 작업을 했다. 1964년 이래의 여야 예산과 재정 법안에 관한 토론을 모조리 독파한 다음, 이번 세법 안을 어떻게 비판할지 전략을 짰다. 법안 비판에 나선 대처는 캘러헌 장관을 앞에 두고 법안의 기본적 결점을 열거함과 동시에, 이 법안으로 일하는 여성에 대한 과세가 매우 무거워진다고 구체적으로 지적하고, ‘장관을 위해서도 내무부에 여성이 필요할 겁니다’라고 비꼬았다. 그림자 내무장관 이안 맥레오드(Ian MacLeod)는 대처의 연설에 굉장히 감명을 받아 ‘그녀는 예사 사람과 조금 달라. 뛰어나게 우수한 A클래스 두뇌야’라며, 동료에게 ‘그녀는 각료 클래스야’라고 속삭였다. 맥레오드 아래 1년 동안 있은 후 대처는 추천을 받아 그림자 연료전력장관이 되었다.
※본란에 연재되는 내용은 구로이와(黑岩徹) 원작을 정인봉 변호사가 번역한 글입니다.
하지만 히스가 보수당 당수가 되어 정권을 잡기까지 ‘그림자 수상’이었던 5년간 대처는 히스에게서 정치가로서 많은 교육을 받았다. 히스는 대처에게 ‘그림자 내각’에서 다양한 부문을 담당케 했다. 1965년에 주택토지장관, 연금장관, 1966년에 재무장관을 담당시키고, 1967년에 연료전력장관에, 1968년에는 교육장관에 임명했다. 그리고 그 해 그림자 내각의 운수장관을 시킨 다음 다시 교육장관으로 일을 맡겼다.
‘그림자 내각’이란 야당 제1당이 진짜 내각에 대항하여 만든 내각으로 ‘그림자 각료’는 담당부문의 당 정책에 책임을 지고 당을 대표하여 발언한다. 따라서 가령 ‘그림자 국방장관’은 ‘국방 대변인’이라고도 부른다. ‘그림자 내각’에는 권한이 없기 때문에 ‘그림자’라는 이름이 붙여져 그늘에서 사는 사람처럼 취급되었으나 실제로는 공적 지위인 것이다. 그림자 내각의 장, 즉 그림자 수상인 야당 제1당 당수의 지위는 공적으로도 보증되고 국가에서 급료도 나온다. 다음 선거에서 여당이 될 가능성이 극히 높으므로, 야당은 ‘국왕(여왕) 폐하의 반대 당’이라 불리며, 공적 지위가 인정되었던 것이다.
그런 만큼 ‘그림자 내각’이 내세우는 정책은 현실주의적이고 실제 정권을 잡았을 때 실현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그림자 내각’은 다음 선거에 이긴 경우에 대비하여 항상 담당 부처의 움직임이나 정책을 검토해두어야 했다. 또 ‘실제 내각’의 정책에 엄격한 비판을 가할 준비도 필요했다. ‘그림자 내각’의 일원이라는 것은 직접 책임이야 없지만 정치와 행정을 알기 위해 최적의 장이었다. 대처로서는 5년 동안에 이처럼 많은 행정부의 활동을 실지로 해 보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고 그 식견을 넓히는 데 크게 도움이 되었다. 이 점에서 그녀는 히스에게 감사해야 할 것이다. ‘그림자 내각’의 여러 자리를 맡으면서 대처는 몇 번씩이나 보수당 내에서 칭찬을 받았다.
예를 들면 노동당 정부가 ‘선택적 고용세(SET)’를 제안해왔을 때가 그랬다. 그림자 내각의 내부차관으로서 대처는 당시 내무장관 제임스 캘러헌과 대결하게 되었다.
정부를 공격하는 연설 전에 대처는 철저한 준비 작업을 했다. 1964년 이래의 여야 예산과 재정 법안에 관한 토론을 모조리 독파한 다음, 이번 세법 안을 어떻게 비판할지 전략을 짰다. 법안 비판에 나선 대처는 캘러헌 장관을 앞에 두고 법안의 기본적 결점을 열거함과 동시에, 이 법안으로 일하는 여성에 대한 과세가 매우 무거워진다고 구체적으로 지적하고, ‘장관을 위해서도 내무부에 여성이 필요할 겁니다’라고 비꼬았다. 그림자 내무장관 이안 맥레오드(Ian MacLeod)는 대처의 연설에 굉장히 감명을 받아 ‘그녀는 예사 사람과 조금 달라. 뛰어나게 우수한 A클래스 두뇌야’라며, 동료에게 ‘그녀는 각료 클래스야’라고 속삭였다. 맥레오드 아래 1년 동안 있은 후 대처는 추천을 받아 그림자 연료전력장관이 되었다.
※본란에 연재되는 내용은 구로이와(黑岩徹) 원작을 정인봉 변호사가 번역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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