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로의 길 (3)

    기고 / 시민일보 / 2007-05-15 16:3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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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인봉(변호사) 譯
    제1당이 된 윌슨 당수의 노동당이 정권에 복귀했다.

    그러나 정치에 능란한 윌슨은 국민이 소수 여당에 불안감을 안고 있다고 보아, 그 해 10월 다시 총선거로 치고 나갔다.

    결과는 또다시 노동당의 승리였다. 이것으로 노동당은 과반수를 차지하여 그 후 5년간에 걸친 안정적인 정권이 보증되었다.

    보수당 내각이 74년 2월의 총선거에서 패배한 후 보수당 내에 지도부에 대한 비판적 무드가 조성되었다.

    비판파는 2파가 있었다. 하나는 히스 당수의 정책을 지지하면서도 그 강제 수행 방식, 선거 전술의 졸렬함에 불만을 가진 자들로 히스 당수의 측근들이 이 그룹이었다. 당의 대세가 이 입장이었다고 해도 된다.

    이 해 9월 일반 당원의 의견을 대표하는 당내 기관 ‘1922년 위원회’가 히스 당수를 초대하여 회합을 가졌다. 윌슨 수상이 의회를 해산하고 총선거로 치고 나온다는 관측이 잦은 무렵이었다.

    듀칸 위원장은 히스를 앞에 두고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당을 지도할 뿐만 아니라 당에 명령하는 것입니다. 당은 확고한 신념과 목적을 가지고 싸우는 군대입니다. 우리는 당에 대해 완전히 충성을 다하고 단결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대의에 대한 당신의 헌신, 그 중에서도 성실함을 의심하는 자는 없습니다. 만일 당신이 공격에 나선다면 결코 뒤를 돌아볼 필요는 없습니다. 당신이 다음 선거에서 싸우고자 하는 테마에 대해 이렇게나 명확하고도 힘 있게 설명해주신 점에 감사 드립니다. 이번 회합에서 상기되는 것은 우리가 당신을 완전히 의지할 수 있고 당신도 우리를 신뢰할 수 있다는 것을 서로 알 수 있었다는 점입니다.”

    두 번째 선거가 예상되는 가운데 일반 당원의 대부분은 히스를 지지했다. 그 대표인 ‘1922년 위원회’가 3개월 후 히스의 적으로 돌아설 줄 누가 예상할 수 있을까?

    한편 히스 당수의 전술뿐만 아니라 그의 정책 그 자체를 비판하는 그룹도 있었다.

    “정부가 노사 분쟁에 개입한 게 애초에 잘못이 아닌가?” “정부가 기업 정비를 도와주는 것은 자유주의 경제로 보아 마이너스가 아닌가?” “자유 경쟁에서 경쟁력이 있는 기업이야말로 살아남아야 되는 게 아닌가?” “정부 스스로 노조와 대결하여 혼란을 자초했으면서, ‘누가 국가를 통치하는가?’라고 호소한 건 실패였다.”

    이런 히스 비판을 가슴에 품은 일파는 보수당 우파인 써 키스 조셉(전 후생사회보장장관), 마가렛 대처 등 극소수에 불과했다.

    그들은 소수파였기 때문에 그러한 불만을 표면화하기 위해서는 10월의 총선거에서 보수당이 재차 패배할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하지만 늘 성급한 건 저널리즘이다. 2월 선거의 패배 후 당내에서 지도자 교체에 대한 목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는 데도, 저널리즘에 의한 히스의 후계자 찾기가 시작되었다.

    가장 먼저 거론된 이름이 히스 직계의 거물 윌리엄 화이트로였다. 이어서 우파의 키스 조셉이다.

    그러나 ‘스펙테이터’ 지가 갑자기 대처를 거명했다. 그 기사의 필자인 코스그레이브 편집장은 대처와 종종 점심 식사를 같이 해서, 이전부터 대처의 지도자로서의 기량에 존경의 염을 품고 있었다.

    대처를 보수당 지도자로 꼽은 것은 일종의 도박이었으나, 그는 여성 리더의 가능성을 시사하고 싶었다.

    놀란 것은 대처 본인이었다.

    ※본란에 연재되는 내용은 구로이와(黑岩徹) 원작을 정인봉 변호사가 번역한 글입니다.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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