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셉은 10월의 총선거 패배 후 보수당 우파의 요청에 따라 당수 선거 출마를 약속했다. 그는 이 여름이래 내내 차기 당수의 자리에 조준을 맞추고 있었다. 후생사회보장장관이었던 조셉은 그 경력, 식견, 웅변, 리더십 등에서 우파의 중진이었다. 유태인이라는 핸디캡은 있었으나 영국 역사에는 19세기에 디즈레일리라는 탁월한 유태인 수상이 있었다. 조셉이 보수당을 이끌어도 조금도 이상하지 않았다.
조셉이야말로 다음 리더에 걸맞다고 판단한 대처는 그를 위해 일할 결의를 굳혔다. 조셉 자신도 입후보에 예사롭지 않은 의욕을 불태우고 있었으며, 그녀도 당연히 조셉이 일어설 것으로 정하고 있었다.
그러나 10월 말이 되어 조셉의 운명에 일대 변화가 일어났다. 그것은 조셉 스스로가 뿌린 씨앗에 의한 것이었다.
보수당 집회에서 영국인이 살아가는 방식에 대해 이야기한 그는, 지금까지 영국인이 국가에 지나치게 의존했다는 것을 지적하고 국가에서의 자유를 주장했다. 지금까지의 보수당은 보수당 본래의 자유주의에서 일탈해 있었다고 설파한 것이다. 이 사고 자체는 대처 등 보수당 우파의 논리를 그대로 나타낸 것으로 아무 문제도 없었으나, 국가에 대한 국민의 의존도를 언급한 곳에서 생각지도 않은 실수를 하고 말았다. 하층계급은 국가에 의존하지 않으면 자식도 양육할 수 없다고 지적한 그는, “바야흐로 인구의 밸런스가 위협에 노출되어 있어`, 하층계급은 가능한 한 자식을 낳지 않도록 설득함과 동시에, 그들에게 피임법을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하층계급이 너무 지나치게 늘어 국가에 의존하는 국민이 점점 더 증가해서, 국가는 피폐해지기만 하므로 국가에 의존하는 하층계급의 인구는 줄여야 한다는 논법이다.
이 연설에 매스컴은 일제히 덤벼들었다. “인종차별주의자` “우성 민족주의자` 등의 레테르가 즉각 붙었다. 그의 연설은 세계의 민족을 우성과 열성으로 나누고 유태인을 박해한 나치의 사상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이다.
조셉을 히스 타도의 희망의 별로 생각하던 우파도 이 너무나 강렬한 차별 발언에 쇼크를 받았다. 이 정도로 하층계급=노동자계급에 편견을 가진 인물이 국가를 지도할 수 있을 것인가-조셉의 리더로서의 적격성에 커다란 의문부호가 붙었다.
그의 가정 내의 트러블도 문제가 되었다. 미국 정도는 아니지만 영국에서도 정치가의 가정에는 건전함이 요구된다. 부부와 자식이 일체가 되어 선거운동에 나서는 것이 당연하다고 보아 선거에 승리하려면 가정의 원만이 조건이었다. 그러나 조셉은 헬렌 부인과의 관계가 악화되어 있었다. 사실 4년 후에는 이혼해버릴 정도의 위험 상태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딸 셋 중 하나는 정신병을 앓고 있었다. 그는 아버지으로서 항상 이 딸을 걱정해야 했다.
차별 발언으로 정치 지도자로서의 적격성이 의심 받은 데다 가정의 무거운 압력도 추가되어, 11월 21일 조셉은 마침내 당수 선거 입후보를 단념했다. 그날 오후 조셉은 가장 신뢰하던 친구인 마가렛 대처와 만나 입후보 단념 결정을 전달했다.
그때 대처는 인생에서 최대의 결정적 순간이 왔다는 것을 자각했다. 이것은 하나의 찬스이다, 이 기회를 놓치면 여성이 리더가 될 기회는 영구히 잃게 된다. 지금이야말로 진정한 보수주의를 실현할 찬스인 것이다. 대처는 ‘인류를 위한 별의 시간’이 지금 자신에게 찾아온 것을 알았다. 자신과 가족과 보수당과 영국의 장래가 자신의 손 위에 놓였다는 것을 자각한 것이다. 이것이 그녀 인생에서의 두 번째 결단의 시기였다.
※본란에 연재되는 내용은 구로이와(黑岩徹) 원작을 정인봉 변호사가 번역한 글입니다.
조셉이야말로 다음 리더에 걸맞다고 판단한 대처는 그를 위해 일할 결의를 굳혔다. 조셉 자신도 입후보에 예사롭지 않은 의욕을 불태우고 있었으며, 그녀도 당연히 조셉이 일어설 것으로 정하고 있었다.
그러나 10월 말이 되어 조셉의 운명에 일대 변화가 일어났다. 그것은 조셉 스스로가 뿌린 씨앗에 의한 것이었다.
보수당 집회에서 영국인이 살아가는 방식에 대해 이야기한 그는, 지금까지 영국인이 국가에 지나치게 의존했다는 것을 지적하고 국가에서의 자유를 주장했다. 지금까지의 보수당은 보수당 본래의 자유주의에서 일탈해 있었다고 설파한 것이다. 이 사고 자체는 대처 등 보수당 우파의 논리를 그대로 나타낸 것으로 아무 문제도 없었으나, 국가에 대한 국민의 의존도를 언급한 곳에서 생각지도 않은 실수를 하고 말았다. 하층계급은 국가에 의존하지 않으면 자식도 양육할 수 없다고 지적한 그는, “바야흐로 인구의 밸런스가 위협에 노출되어 있어`, 하층계급은 가능한 한 자식을 낳지 않도록 설득함과 동시에, 그들에게 피임법을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하층계급이 너무 지나치게 늘어 국가에 의존하는 국민이 점점 더 증가해서, 국가는 피폐해지기만 하므로 국가에 의존하는 하층계급의 인구는 줄여야 한다는 논법이다.
이 연설에 매스컴은 일제히 덤벼들었다. “인종차별주의자` “우성 민족주의자` 등의 레테르가 즉각 붙었다. 그의 연설은 세계의 민족을 우성과 열성으로 나누고 유태인을 박해한 나치의 사상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이다.
조셉을 히스 타도의 희망의 별로 생각하던 우파도 이 너무나 강렬한 차별 발언에 쇼크를 받았다. 이 정도로 하층계급=노동자계급에 편견을 가진 인물이 국가를 지도할 수 있을 것인가-조셉의 리더로서의 적격성에 커다란 의문부호가 붙었다.
그의 가정 내의 트러블도 문제가 되었다. 미국 정도는 아니지만 영국에서도 정치가의 가정에는 건전함이 요구된다. 부부와 자식이 일체가 되어 선거운동에 나서는 것이 당연하다고 보아 선거에 승리하려면 가정의 원만이 조건이었다. 그러나 조셉은 헬렌 부인과의 관계가 악화되어 있었다. 사실 4년 후에는 이혼해버릴 정도의 위험 상태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딸 셋 중 하나는 정신병을 앓고 있었다. 그는 아버지으로서 항상 이 딸을 걱정해야 했다.
차별 발언으로 정치 지도자로서의 적격성이 의심 받은 데다 가정의 무거운 압력도 추가되어, 11월 21일 조셉은 마침내 당수 선거 입후보를 단념했다. 그날 오후 조셉은 가장 신뢰하던 친구인 마가렛 대처와 만나 입후보 단념 결정을 전달했다.
그때 대처는 인생에서 최대의 결정적 순간이 왔다는 것을 자각했다. 이것은 하나의 찬스이다, 이 기회를 놓치면 여성이 리더가 될 기회는 영구히 잃게 된다. 지금이야말로 진정한 보수주의를 실현할 찬스인 것이다. 대처는 ‘인류를 위한 별의 시간’이 지금 자신에게 찾아온 것을 알았다. 자신과 가족과 보수당과 영국의 장래가 자신의 손 위에 놓였다는 것을 자각한 것이다. 이것이 그녀 인생에서의 두 번째 결단의 시기였다.
※본란에 연재되는 내용은 구로이와(黑岩徹) 원작을 정인봉 변호사가 번역한 글입니다.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시민일보.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