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 코드, 관습의 역사

    기고 / 시민일보 / 2007-06-10 19:4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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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민중심당 류근찬 의원
    {ILINK:1} 2007년 6월1일 정부가 경기도 화성시 동탄에 660만평의 신도시를 건설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로써 경부고속도로변은 신도시와 택지지구의 밀집에 방점을 찍을 수 있는 규모가 되었다. 분당·동탄 신도시, 용인 죽전·동백·수지 지구 외에 앞으로도 판교·광교 등 수많은 신도시들이 담을 잇는 이른바 연담화의 극치를 이루며 빽빽하게 들어서게 될 것이다.

    이처럼 제동장치가 풀린 폭주기관차처럼 무한대로 지방을 잠식하는 수도권의 이상비대에 정말 문제가 없는가? 필자는 최근의 정부정책, 그리고 몇 년 전 헌법재판소의 신행정수도 위헌판결을 격고 보면서 대한민국에 진정한 지방의 가치를 발견하고 새롭게 창조하려는 의식이 과연 있기나 한 것인지 심각한 회의를 갖게 되었다.

    사실, 오늘날의 서울을 만든 주도적인 인물은 조선조의 정치사상가 삼봉(三峰) 정도전이다. 그는 중국의 주례(周禮), 대명율례(大明律禮)를 본떠서 조선의 헌법이랄 수 있는 조선경국전(朝鮮經國典)을 편찬했다.

    왕실이 터를 잡고 있는 중앙은 모든 부역과 세금이 집중되는 곳이고, 중앙에서 사방으로 뻗어나간 지방은 노동력을 내서 중앙을 위해 희생하는 객체나 다름없었다. 이처럼 중앙집권적 사상이 철저하게 반영된 법전도 없다.

    해방이후는 어떤가? 대한민국은 중앙에 강력한 권한을 집중시키는 행정국가로 다시 태어났다. 이승만 정권은 입법의회가 구성되기도 전에 이미 높은 통제력을 갖는 경찰조직 등 행정기구를 기반으로 남한만의 단독정권을 출범시켰다. 권력을 탄생시키는 근대적인 정당정치 없이 정권을 출범시키는 것에서부터 국가가 독특한 위치를 갖게 된 것이다.

    여기에 일본으로부터 넘겨받은 귀속재산의 80%를 미군정으로부터 인도받은 국가는 당연히 강력한 권한을 갖게 되고 자본 또한 국가의 통제하에 놓이게 됨으로써 사회 각 부문의 자율성이 자리 잡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박정희 시대에도 경제기획원을 중심으로 한 중앙이 외국자본과 국내자본을 효율적으로 조작, 통제, 관리하여 성장을 견인했고, 기술관료의 토양을 만들었다. 그러나 막스 베버의 말대로 ‘지방의 각 도시가 자유로운 공기는 마실 수 없었다.’

    중앙권력에 진입하지 않으면 후일을 도모하는 것이 어렵게 된 현실 또한 조선조 말의 이중환이 잘 설파했다. 택리지를 보면 조선조의 현실이나 지금까지 한국사회를 관통하는 원칙 즉, 어떻게든 서울에 둥지를 튼 권력의 핵심집단으로 진입하려는 지금의 정치현실이 크게 다르지 않게 보인다.

    사대부집이 가난하고 세도를 잃은 다음 삼남(三南)으로 내려간 자는 후일을 도모하기 때문에 집안을 그대로 보전하게 되나, 교외에 나간 자는 쇠잔하여져서 한두 세대를 내려 와서는 신분마저 낮아지게 되었으니 평민으로 되어버린 자가 많았다(이중환, 『택리지』 팔도총론편).

    최근의 통계자료를 보면 대한민국은 수도권공화국이란 말이 진부할 정도로 국토의 12%에 불과한 좁은 수도권에 인구는 전체의 48%, 100대 기업의 90%, 공공기관의 85%, 금융기관의 67%가 몰려있다. 우리 모두는 수도권 집중으로 인한 교통난, 지방의 과소화는 물론 교육과 의료복지시설의 상대적인 낙후현상이 가속화되고 있으나 당연한 것으로 치부되기도 한다.

    이를 당연시한 계기는 물론 2004년 10월 21일 헌법재판소의 신행정수도의 건설을 위한 특별조치법 위헌확인 결정이다. 당시헌재는 “우리 헌법상 수도에 대한 명문조항은 없으나, 조선왕조 이후 서울이 수도인 것은 확고하게 형성된 자명한 사실로, 불문헌법으로 규범화됐다”면서 “이를 폐지하려면 반드시 헌법 개정이 필요하다. 헌법 개정을 하려면 국민투표를 거쳐야 한다”는 청구인의 헌법소원 취지를 설명했다.

    이 판결로 수도권의 비대화는 제동이 걸리지 않고 더욱 공룡화됐고, 수도권 비만증을 치료하려면 현행 헌법으로는 매우 어렵게 됐다. 필자는 법학에 정통하지는 못하나 관습법은 잘못 적용된 것이라 생각한다.

    대한민국의 수도가 서울이라는 관습적 사실에 성문헌법은 규범력을 부여하고 있지 않다. 그런데도 헌법재판소가 관습헌법을 성문헌법과 같이 동등한 효력을 부여한 것이 올바른 판단이었을까?

    수도권에 대규모 도시를 건설하면서 교통난 해소를 위해 앞으로 10여 년간 33조원이 넘게 투입된다. 교통 혼잡으로 12조원을 길바닥에 버리는 것은 차지하고도 말이다.

    또한 수도권의 인구 집중도는 50%를 초과할 것이다. 문제해결을 위한 대책이 문제를 만들고, 바로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책을 새운다면 그것은 결국 실패의 역사를 되풀이하는데 지나지 않는다.

    앞으로 당분간 우리는 비뚤어진 관습헌법, 뒤틀린 서울중심주의에 손댈 수 있는 인물을 찾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아니면 서울의 경쟁력이나 관습법에 기대어 수도권의 이상 비대화를 지켜볼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아니, 정도전의 조선경국전과 이중환의 택리지를 바이블 코드로 삼고 살아야 하는 그런 시대가 다시 올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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