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클랜드 전쟁 (3)

    기고 / 시민일보 / 2007-07-02 21:07:18
    • 카카오톡 보내기
    정인봉(변호사) 譯
    31일 저녁 노트 국방장관은 대처에게 아르헨티나가 포클랜드에 침공하고자 하는 명백한 증거가 올라왔다고 보고했다. 아르헨티나의 항공모함이 포클랜드를 향해 진로를 바꾸고, 잠수함도 포클랜드의 수도 포트스탠리(Port Stanley) 부근에서 상륙 지점을 정찰하고 있다고 했다.

    수상 관저에 국방장관, 외무부의 간부가 모였다. 대처가 가장 신뢰하던 캐링턴이 텔아비브로 간 것은 큰 타격이었다. 게다가 르윈(Lewin) 참모총장도 뉴질랜드 방문 중으로 부재였다.

    논의는 영국에게 비관적인 방향으로 향하고 있었다. 외무부는 외교적으로 침공을 중지할 수단은 이미 있을 것 같지 않다고 했다. 국방부도 1만3000km나 떨어진 남대서양에 대한 작전은 상당히 어렵다고 보고했다.

    그러나 대처의 마음은 결정되어 있었다. 영국의 긍지가 상처 입은 이상 싸워야 하는 것이다.

    긍지가 상처 입었을 때의 대처의 분노에는 정평이 있다. 오스트레일리아의 텔레비전 리포터가 대처를 인터뷰했을 때의 일이다. 통화주의를 고집하여 온갖 비판에도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은 대처에 대해 리포터가 “당신에 대해 돼지 머리(pig’s head)라 하는 사람이 있는데 어떻게 생각합니까?” 라고 물었다. ‘돼지 머리’란 벽창호 돌대가리를 말한다.

    “대체 누가 그런 말을 했나요?”

    리포터는 약간 기가 죽으며 “거리에서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과 종종 만났다”고 대답했다. 대처는 언성을 높여 이렇게 말했다.

    “그렇게 말한 사람의 이름을 말해주세요. 언제 어디서 누가 말했는지 대답해주세요. 그렇지 않으면 앞으로 당신 질문에는 대답할 수 없습니다.”

    결국 인터뷰는 싸우고 헤어지는 식으로 끝났다.

    돼지 머리란 상당히 모욕적인 표현이다. 대처가 화를 내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러나 대처의 태도도 너무 어른스럽지 않았다. 여하튼 그녀는 수상으로서의 위신에 상처를 받았다고 느낄 때 비정상적일 정도로 반응을 나타냈다.

    포클랜드 제도에 아르헨티나가 침공을 시작했다고 들은 대처는 안색이 변했다.

    기울어져간다고는 해도 미소 다음의 해군력을 가진 영국에 대해 아르헨티나는 무모하게도 무력으로 도전해온 것이다. 기습이라 할 수 있는 무력 행사에 영국의 긍지는 크게 상처를 입었다. ‘돼지 머리’ 사건은 개인적 인격에 대한 모멸이었으나, 포클랜드 침공은 순수하게 국가의 위신에 대한 도전이었다. 그 때문에 대처는 분노 속에서도 현실적 계산을 할 수 있는 여유를 가졌다.

    아르헨티나 침공 임박이라는 소식을 받고 열린 회의에서 대처가 가장 알고 싶었던 것은 아르헨티나 군을 반격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외무부, 국방부의 간부들은 1만3000km나 떨어진 포클랜드에 대 함대를 보내 아르헨티나 군과 전면 충돌할 만큼의 군사력은 영국에 없다는 비관론에 기울어져 있었다. 하지만 꼭 한 사람 대처의 기대에 부응하는 사내가 있었다. 부재 중인 르윈 참모장의 신임을 얻고 있던 해군작전본부장 써 헨리 리치이다. 그는 4월5일까지 기동함대를 출항시키는 것이 가능하며, 포클랜드가 아르헨티나의 손에 함락되어도 탈환할 수 있다는 전망을 이야기했다. 대처가 듣고 싶었던 것은 탈환 가능 여부 바로 이 한 가지였다.

    남은 외교적 해결 루트를 찾기 위해 대처는 레이건 미국 대통령에게 전보를 보냈다. 아르헨티나의 무력 침공을 진압하기 위해 미국의 영향력을 행사하고자 한 것이다.

    ※본란에 연재되는 내용은 구로이와(黑岩徹) 원작을 정인봉 변호사가 번역한 글입니다.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시민일보.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시민일보 시민일보

    기자의 인기기사

    뉴스댓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