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클랜드 침공에는 150%의 초 인플레나 인권 억압에 대한 국민의 불만을 바깥으로 향하게 할 목적이 있었다고는 해도, 아르헨티나 국민의 열광적 지지를 받은 것은 포클랜드를 둘러싼 영국과의 다툼의 역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영국은 아르헨티나의 이 역사관을 오해하고, 아르헨티나가 침공할 위험이 있다는 정보를 ‘여느 때와 같은 위협’으로 듣고 흘려버렸다. 영국 정보기관이나 영국대사관을 ‘늑대 소년’으로 취급하여 아르헨티나 군부의 의도를 오산한 것이었다.
국가와 국가의 분쟁이나 전쟁은 오해·오산이 거듭되어 확대되어 간다. ‘국가의 위신’이라는 요괴가 쓸데없이 사태를 어렵게 만든다.
포클랜드의 수도 포트스탠리를 점령한 아르헨티나 군 부사령관 부셀 제독은 영국 총독부에서 영국의 헌트 총독과 대면했다. 항목을 명령하기 위해서이다. 이때 헌트는 부셀 제독이 내민 손을 거절하고 “영국의 영토를 침공하는 어떤 자와도 악수는 하지 않겠다”고 외쳤다.
교섭 결과 항복한 총독과 영국 해병대원은 우루과이 공로(空路)로 보내게 되었다. 그때 총독은 “공항까지 총독의 정장으로 가겠다”고 주장하여 아르헨티나 제독도 이를 인정했다. 총독은 높게 뻗은 깃털 장식이 붙은 원추형 모자, 나사 군복 스타일로 자동차에 올랐다. 자동차는 런던 시내를 주행하는 택시 전용인 오스틴이었다. 깃털 장식 모자가 들어갈 만큼 천장이 높은 자동차는 이 택시 전용 차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자동차에는 유니언 잭(영국 국기)이 펄럭이고 있었다.
이 모습이 영국에 전달되자 총독은 영국의 명예를 지켰다고 칭찬을 받았다. 국가의 위신이나 명예란 이런 정도의 일로 문제가 되어 피를 흘리는 것이다.
대처는 상처 입은 국가의 위신 회복에 부심했다. 외교 교섭에는 응하지만, 영국 주권을 회복하려면 무력도 행사하겠다는 태도를 견지했다.
헤이그 미 국무장관이 국가의 위신에 대한 대처의 생각을 잘못 읽은 것이 비극이었다. 헤이그는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날아가서 런던-워싱턴 사이를 두 번 왕복하여 두 나라 사이의 조정을 도모했다.
헤이그가 다우닝 가 10번지에 출입하는 것을 필자는 영국인 기자들과 함께 몇 시간이나 선 채로 기다리고 있었다. 첫 번째 헤이그는 자신만만하게 10번지로 사라졌다. 6시간 후에 나왔을 때 약간 피로를 보였으나 영국에 보여준 조정 안에 자신을 가지고 있었는지, 웃는 얼굴로 기자단에 손을 흔들었다.
두 번째로 찾아왔을 때는 전혀 웃는 얼굴을 보이지 않았다. 정오 전 수상 관저에 들어간 채 나올 기색이 없었다. 4월이라고는 해도 런던 거리는 매우 추웠다. 관저 가까이에는 화장실도 식당도 없다. 헤이그가 언제 나올지도 모르고 추위 속에서 빈속으로 화장실에도 못 가고 참고 서있을 수밖에 없었다. 겨우 나온 건 오후 11시가 지나서였다. 지쳐 늘어진 표정으로 얼굴에 웃음기는 없었다.
대처는 어떤 형태가 되든 주권 회복만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갈티에리는 고유의 영토를 피를 흘려 되찾은 이상 영유권만은 인정 받아야 한다고 양보하지 않았다. 헤이그는 두 주장에 결국 다리를 놓을 수 없었다. 헤이그는 이 조정에 성공해서 화이트하우스에서의 영향력을 단번에 높이고자 했던 점이 있다.
영국은 아르헨티나의 이 역사관을 오해하고, 아르헨티나가 침공할 위험이 있다는 정보를 ‘여느 때와 같은 위협’으로 듣고 흘려버렸다. 영국 정보기관이나 영국대사관을 ‘늑대 소년’으로 취급하여 아르헨티나 군부의 의도를 오산한 것이었다.
국가와 국가의 분쟁이나 전쟁은 오해·오산이 거듭되어 확대되어 간다. ‘국가의 위신’이라는 요괴가 쓸데없이 사태를 어렵게 만든다.
포클랜드의 수도 포트스탠리를 점령한 아르헨티나 군 부사령관 부셀 제독은 영국 총독부에서 영국의 헌트 총독과 대면했다. 항목을 명령하기 위해서이다. 이때 헌트는 부셀 제독이 내민 손을 거절하고 “영국의 영토를 침공하는 어떤 자와도 악수는 하지 않겠다”고 외쳤다.
교섭 결과 항복한 총독과 영국 해병대원은 우루과이 공로(空路)로 보내게 되었다. 그때 총독은 “공항까지 총독의 정장으로 가겠다”고 주장하여 아르헨티나 제독도 이를 인정했다. 총독은 높게 뻗은 깃털 장식이 붙은 원추형 모자, 나사 군복 스타일로 자동차에 올랐다. 자동차는 런던 시내를 주행하는 택시 전용인 오스틴이었다. 깃털 장식 모자가 들어갈 만큼 천장이 높은 자동차는 이 택시 전용 차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자동차에는 유니언 잭(영국 국기)이 펄럭이고 있었다.
이 모습이 영국에 전달되자 총독은 영국의 명예를 지켰다고 칭찬을 받았다. 국가의 위신이나 명예란 이런 정도의 일로 문제가 되어 피를 흘리는 것이다.
대처는 상처 입은 국가의 위신 회복에 부심했다. 외교 교섭에는 응하지만, 영국 주권을 회복하려면 무력도 행사하겠다는 태도를 견지했다.
헤이그 미 국무장관이 국가의 위신에 대한 대처의 생각을 잘못 읽은 것이 비극이었다. 헤이그는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날아가서 런던-워싱턴 사이를 두 번 왕복하여 두 나라 사이의 조정을 도모했다.
헤이그가 다우닝 가 10번지에 출입하는 것을 필자는 영국인 기자들과 함께 몇 시간이나 선 채로 기다리고 있었다. 첫 번째 헤이그는 자신만만하게 10번지로 사라졌다. 6시간 후에 나왔을 때 약간 피로를 보였으나 영국에 보여준 조정 안에 자신을 가지고 있었는지, 웃는 얼굴로 기자단에 손을 흔들었다.
두 번째로 찾아왔을 때는 전혀 웃는 얼굴을 보이지 않았다. 정오 전 수상 관저에 들어간 채 나올 기색이 없었다. 4월이라고는 해도 런던 거리는 매우 추웠다. 관저 가까이에는 화장실도 식당도 없다. 헤이그가 언제 나올지도 모르고 추위 속에서 빈속으로 화장실에도 못 가고 참고 서있을 수밖에 없었다. 겨우 나온 건 오후 11시가 지나서였다. 지쳐 늘어진 표정으로 얼굴에 웃음기는 없었다.
대처는 어떤 형태가 되든 주권 회복만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갈티에리는 고유의 영토를 피를 흘려 되찾은 이상 영유권만은 인정 받아야 한다고 양보하지 않았다. 헤이그는 두 주장에 결국 다리를 놓을 수 없었다. 헤이그는 이 조정에 성공해서 화이트하우스에서의 영향력을 단번에 높이고자 했던 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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