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클랜드 전쟁(8)

    기고 / 시민일보 / 2007-07-09 20:0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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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인봉(변호사)
    4월 21일 본대에서 갈린 3척의 영국 함대는 아르헨티나 수비대가 지키는 남 조지아 섬을 공격했다. 그러나 남대서양은 겨울철에 들어가려는 참이라, 특별 공격대원 13명과 헬리콥터 조종사 4명은 눈보라 속에서 동사할 지경이 되었다. 헬리콥터 2대가 추락하고 17명은 빙하 위에 고립되었다. 나머지 헬리콥터가 17명 전원을 싣고 겨우 구출했다. 공격작전은 구출작전으로 끝났다.

    그 이틀 후 영국 함대가 아르헨티나 잠수함을 발견, 공격하여 손상을 입혔다. 그 기회에 특별공격대가 남 조지아 섬의 그리트비치 항으로 공격하자 아르헨티나 수비대는 맥없이 항복했다.

    “기뻐해주세요, 기뻐해주세요(Rejoice, rejoice)”, 대처는 다우닝 가 10번지 앞에서 외쳤다. 국민을 전쟁으로 몰아넣을 찬스는 지금이었다. 대처는 남 조지아 섬 탈환을 최대한 이용하려고 했다. 외교 교섭은 실패하고 전쟁은 불가피함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는 영국의 국운을 걸 가치가 있는 전쟁이 아니라는 회의론이 생겼기 때문이다.

    “여왕과 국가를 위해 죽는다면 알겠으나 대처 부인을 위해 죽는 것은 다른 문제다” 라는 해병대원의 말도 매스컴에 소개되어 있었다.

    5월 1일 대서양의 고도 영국령 어센션 섬에서 공중 급유를 받으며 6천 킬로미터의 항로를 날아온 발칸 전략 폭격기가 포클랜드 섬의 수도 포트스탠리 공항을 폭격하고, 영국 항공모함에서 날아온 시 해리어 기도 활주로를 폭격하여 본격적인 전쟁이 시작되었다.

    영국은 포클랜드 주변 2백 해리를 봉쇄 수역으로 삼아 이 수역에 들어오는 함선은 영국에 대한 적대 행위로 간주하여 격침하겠다고 선언했다. 다음날 2일 영국 원자력 잠수함 ‘콘칼라’는 아르헨티나의 순양함 ‘벨그라노’를 발견하여 어뢰를 발사했다. 어뢰 2발이 순양함을 직격하여 함은 침몰했다. 아르헨티나의 승무원 368명 사망이라는 대 참사가 되었다.

    그러나 이틀 후 영국 함대는 뜻밖에 강렬한 펀치를 맞았다. 항공모함 ‘헤르메스’의 앞에서 수비 태세를 취하고 있던 신예 구축함 ‘셰필드’가 해상을 낮게 비행해온 미사일에 주 엔진 부분을 맞아 큰불이 났다. 아르헨티나 공군이 프랑스에서 구입한 최신예 미사일 엑조세(Exocet)가 구축함에 맞았던 것이다.

    대처는 쇼크를 받았다. 전쟁이 사망자를 가져오는 것은 알고 있었으나, 그것이 현실로 되자 비로소 공포를 느낀 것이다. 그것은 어머니로서의 공포였다. ‘철의 여인’이라는 별명을 가진 그녀도 사망자 어머니의 심정을 생각하자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기분이 되었다. 다음날의 의회에서는 대처의 얼굴에서 핏기가 없고 앉은 채 손을 깍지 꼈다 풀었다 하고 있었다. 보수당 각료의 맞은 편에 앉아 있던 노동당 의원은 “지금까지의 의회에서 가장 침착하지 않은 태도였다”고 평가했다.

    아르헨티나의 순양함 ‘벨그라노’의 사망자가 많은 것에 여론도 쇼크를 받았다. 야당은 ‘벨그라노’가 봉쇄 수역 바깥에 있었다는 이유로 정부 비판을 시작했다. 추가하여 구축함 ‘셰필드’가 크게 부서지고 불에 탔다.

    여론은 포클랜드 탈환 작전에 급속도로 회의적이 되었다.

    이때가 대처가 가장 동요되었던 시기이다. 여론이 매서운 것보다 사망한 젊은이의 어머니나 아내의 심정을 생각하고 동요했다. 구축함 “셰필드”의 화재로 희생자가 나온 후 대처는 좋아하는 로열 블루 복장을 버리고 상복에 가까운 검은 색을 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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