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휴일에 혼자서 근교의 산을 찾았다. 평소 같이 어울려 다니던 친구들이 모두 다른 일로 바빠서 하는 수 없이 혼자서 등산을 하게 된 것이다. 한적한 코스라 다른 등산객을 만나기도 쉽지 않은데 정상 가까이에 가니 어디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기도원에서 나는 괴상한 소리에 깜짝 놀라 가까이 가보니 웬 남자 한 명과 여자 셋이 울부짖고 있었다. ‘하나님 아버지’ 소리가 간간이 들리는 것으로 보아 기도를 하는 것 같았다.
뒤늦게 이것이 바로 방언 기도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등산로 입구에서 본 기도원이라는 표지판이 떠올랐다. 아마 기도원에 왔던 열성신도들이 산상기도를 하러 온 것이려니 짐작이 가면서 놀란 가슴은 좀 진정되었으나 왠지 불쾌하고 씁쓸한 뒷맛은 가시지 않는다. 그러면서 몇 해 전 해인사 앞 매화산에서 등산을 하던 중, 확성기를 등에 메고 다니며 온 산이 떠나가게 ‘하나님 아버지’를 외쳐대던 열성 신자의 모습도 되살아난다.
대문에 붙어 있는 ‘00성당’이라는 팻말을 무시하고 초인종을 눌러 하나님을 믿으라고 막무가내로 강요하는 전도부인들. 아이들은 내팽개치고 교회 모임에만 쫓아다니던 아주머니. 온통 외제품으로 가득 찬 어떤 목사의 집. 대체로 이런 것들이 천주교 신자인 아내의 끈질긴 호소에도 불구하고 나를 교회나 성당으로부터 점점 멀어지게 만든다.
사실 상대방을 존중하지 않는 공격적인 전도나 기도는 진정한 기독교의 정신에도 어긋나는 것이다. 예수님은, 기도는 골방에 숨어서 하고, 더욱이 금식할 때는 남에게 티를 내지 말라고 가르쳤다. 내가 존경하고 아내가 ‘성자’라고 부르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자 ‘몽실 언니’의 저자인 권정생 선생은 생전에 한국 교회의 폐단을 날카롭게 비판하면서 일부 교회의 해외전도를 못마땅해 하셨다.
“요즘 한국의 교회에서는 아시아와 아프리카 등지로 선교사를 파송하고 있다. 그것이 나쁜 것은 아니다. 다만 나의 나라, 나의 민족이 이 지경인데 먼 나라까지 선교사업을 한다는 건 아무래도 허영에 불과하다”고 그는 나무란다. 권 선생의 관점에서 보면 고통 받는 농민과 비정규직 노동자, 굶주리는 북한 동포들은 외면하고, 위험지역이라고 가지 말라는 아프가니스탄까지 가서 선교·봉사활동을 하는 것은 분명 “제 코가 석자나 빠졌는데 남의 코를 거둬주려는 주제넘은 짓”이다.
그는 교회도 쉰 명에서 백명 정도가 모여 앉아 세상 얘기를 나누며 예배를 드리는 동네 사랑방으로 바꾸자고 제안한다. 그리고 “가끔씩은 가까운 절간의 스님을 모셔다가 부처님 말씀도 듣고, 점쟁이 할머니도 모셔 와서 궁금한 것도 물어보고, 마을 훈장님 같은 분께 공자님 맹자님 말씀도 듣는” 그런 교회를 갖고 싶다고 말한다. 정말 그런 토착화된 교회, 한국적인 기독교, 우리들 모두의 하느님은 없는가.
기도원에서 나는 괴상한 소리에 깜짝 놀라 가까이 가보니 웬 남자 한 명과 여자 셋이 울부짖고 있었다. ‘하나님 아버지’ 소리가 간간이 들리는 것으로 보아 기도를 하는 것 같았다.
뒤늦게 이것이 바로 방언 기도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등산로 입구에서 본 기도원이라는 표지판이 떠올랐다. 아마 기도원에 왔던 열성신도들이 산상기도를 하러 온 것이려니 짐작이 가면서 놀란 가슴은 좀 진정되었으나 왠지 불쾌하고 씁쓸한 뒷맛은 가시지 않는다. 그러면서 몇 해 전 해인사 앞 매화산에서 등산을 하던 중, 확성기를 등에 메고 다니며 온 산이 떠나가게 ‘하나님 아버지’를 외쳐대던 열성 신자의 모습도 되살아난다.
대문에 붙어 있는 ‘00성당’이라는 팻말을 무시하고 초인종을 눌러 하나님을 믿으라고 막무가내로 강요하는 전도부인들. 아이들은 내팽개치고 교회 모임에만 쫓아다니던 아주머니. 온통 외제품으로 가득 찬 어떤 목사의 집. 대체로 이런 것들이 천주교 신자인 아내의 끈질긴 호소에도 불구하고 나를 교회나 성당으로부터 점점 멀어지게 만든다.
사실 상대방을 존중하지 않는 공격적인 전도나 기도는 진정한 기독교의 정신에도 어긋나는 것이다. 예수님은, 기도는 골방에 숨어서 하고, 더욱이 금식할 때는 남에게 티를 내지 말라고 가르쳤다. 내가 존경하고 아내가 ‘성자’라고 부르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자 ‘몽실 언니’의 저자인 권정생 선생은 생전에 한국 교회의 폐단을 날카롭게 비판하면서 일부 교회의 해외전도를 못마땅해 하셨다.
“요즘 한국의 교회에서는 아시아와 아프리카 등지로 선교사를 파송하고 있다. 그것이 나쁜 것은 아니다. 다만 나의 나라, 나의 민족이 이 지경인데 먼 나라까지 선교사업을 한다는 건 아무래도 허영에 불과하다”고 그는 나무란다. 권 선생의 관점에서 보면 고통 받는 농민과 비정규직 노동자, 굶주리는 북한 동포들은 외면하고, 위험지역이라고 가지 말라는 아프가니스탄까지 가서 선교·봉사활동을 하는 것은 분명 “제 코가 석자나 빠졌는데 남의 코를 거둬주려는 주제넘은 짓”이다.
그는 교회도 쉰 명에서 백명 정도가 모여 앉아 세상 얘기를 나누며 예배를 드리는 동네 사랑방으로 바꾸자고 제안한다. 그리고 “가끔씩은 가까운 절간의 스님을 모셔다가 부처님 말씀도 듣고, 점쟁이 할머니도 모셔 와서 궁금한 것도 물어보고, 마을 훈장님 같은 분께 공자님 맹자님 말씀도 듣는” 그런 교회를 갖고 싶다고 말한다. 정말 그런 토착화된 교회, 한국적인 기독교, 우리들 모두의 하느님은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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