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십 (4)

    기고 / 시민일보 / 2007-07-25 21: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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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인봉譯(변호사)
    그의 죽음이 다가옴에 따라 북 아일랜드의 긴장은 높아졌다. 사망 뉴스가 나간 날 벨파스트, 런던 데리 등 가톨릭이 많은 지구에서 폭동이 일어났다. IRA 멤버를 중심으로 군중이 경관대에게 투석하거나 화염 병을 던지거나 했다.

    그러나 대처 정권은 이를 힘으로 억눌러 대응했다. 경관대는 이 폭동에서 ‘고무 탄(rubber bullet)’을 사용했다. 고무 탄은 총탄 끝의 뾰족한 부분을딱딱한 고무로 대신한 것이다. 사람에 맞아도 몸을 관통하지 않고 중상을 입힐 뿐으로 폭동 진압에 효과적이다. 맞은 곳이 악화되면 죽지만 사망률이 낮고 위력이 있기 때문에 영국군이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필자는 이때 벨파스트에서 화염 병과 돌을 던지던 젊은이들에게서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IRA의 멤버나 동조자들이 많아 ‘IRA 거리’라 부르는 폴즈 거리에 면한 건물의 그늘이었다. 거기에 갑자기 장갑차에서 내린 영국군 병사가이쪽을 향해 고무 탄을 쏘아왔다. 무심코 지면에 엎드렸는데 고무 탄이란 성가시고 두렵다. 건물 벽에 부딪쳐서 튀어나오기 때문이다. 앞에서 탄알이 날아왔다 싶자갑자기 옆에서 날아온다. 뒤에서도 날아온다. 젊은이들이 저항을 그만두자 겨우 고무 탄 습격이 끝났다.

    영국군이 고무 탄을 사용해서까지 폭동을 제압하려 한 것은 대처의 ‘법과 질서’ 관 때문이다. 대처는 정치적 지위를 요구하다 사망한 선즈 의원은 ‘법과 질서’를 파괴한 범죄자며 정치범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설령 단식 투쟁으로 죽더라도 범죄에는 어디까지나 법으로 대처하겠다는 입장으로 일관한 것이다.

    “범죄는 범죄이며 범죄인 것입니다”란 그때 그녀가 다시 한 말이었다.

    대처의 리더십을 보면 그 신념이 강한 면만 눈에 띄지만, 실제로는 모든 일에 신념을 가지고 있었던 건 아니다. 그녀 속에 신념이 생기는 것은 지성과 감정이 일치했을 때로한정되고 있다. 그녀의 정책 결정 과정을 자세히 보면 지성과 감정 사이에 동요가 있는 것을 알게 된다. 그 둘이 서로 충돌하여 상충할 때의 그녀는 신념의 정치가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가령 제1기에 대응한 로디지아 독립문제 때가 그랬다. 이때 로디지아는 선거에 의해 스미스 백인 수상이 흑인인 무조레와(Muzorewa) 주교에게 수상 자리를 양도하여, 무조레와 주교를 수반으로 하는 흑인·백인 연합이 탄생했다. 그러나 이 선거가 ‘자유롭고도 공정했는지를’ 둘러싼 논의가 일어나 무가베 씨가 이끄는 애국전선은 선거를 위선, 사기라고 단정하고 무력에 의한 저항운동을 계속하고 있었다.

    영국 국내는 로디지아의 완전 독립이 불가피하다는 분위기로 기울어져 있었으나, 대처는 여전히 백인 지지로 심정적으로는 흑백 협력을 주창한 무조레와 정권을 편들고 있었다. 로디지아 독립을 위해서는 애국전선도 추가된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가 필요했다. 영국연방에 속한 아프리카 제국은 이 자유 공정선거를 강력히 주장하고 있었다.

    잠비아의 수도 루사카(Lusaka)에서의 영국연방회의에 참석하는 대처는 적지로 향하는 심정이었을 것이다. 이 여행을 위해 커다란 선글라스 2개를 준비했다. 그녀는 동행한 캐링턴 외무장관에게 이렇게 설명했다.
    “그들(회의 참가자나 그것을 둘러싼 데모 대 등)이 산(酸)과 같은 것을 던지는 경우에 대비해서요.”
    잠비아에서 그녀에 대한 적대 행위가 있을 것을 걱정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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