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국민성을 이렇다고 단정하는 것은일종의 편견에 지나지 않는다. 한 인간의 성격을 이렇다고 단정하는 것도 편견이다. 한 민족, 한 인간의 성격을 한 마디로 표현할 수는 없다.
아니 설령 아무리 많은 지면을 소비하더라도 어떤 민족, 어떤 개인을 완전히 묘사해낼 수는 없을 것이다. 그것을 알면서 굳이 대처라는 인간에게 도전해본 것이 이 책이다.
대처는 지금까지 지적해왔다시피, 영국의 보수 정치가로서는 지극히 특이한 존재이다. 여성이면서 수상이 되었다는 것, 교육장관이라는 비교적 가벼운 포스트를 경험했을 뿐으로 일국의 지도자가 될 수 있었다는 것, 폭 넓은 취미도 없이 오직 일뿐이라는 것, 영국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컨센서스(합의)나 타협을 싫어하고 신념이라는 이질적인 개념을 밀어붙인 것……지금까지 생각할 수 있는 어떤 보수 정치가의 이미지와도 전혀 달랐다.
그 두드러진 차이야말로 대처라는 정치가를 문제로 삼고 싶다고 생각하기 시작한 하나의 동기였다. 그러나 좀더
개인적인 동기를 말한다면, 대처 수상 자신이 나를 기억해주었다는 점이었다.
필자가 런던 특파원을 끝내고 귀국한 후 대처 수상이 일본을 방문했다. 일본 프레스센터의 기자 회견에서 나는 제일 앞 줄에 진을 치고 질문하려고 열심히 손을 들었으나, 사회자는 도무지 지명해주지 않았다. 그게 눈에 띄었던지 대처 수상은 사회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저기 손을 들고 있는 기자는 런던에 있은 적이 있는 기자니까 질문하게 해주세요.”
바로 가까이 있었기 때문에 말은 확실히 들렸다. 잊어버리지 않았다는 걸 알고 한 순간 가슴이 뭉클했다.
영국의 기자 회견에서는 일본과 달리 수상 자신이 손을 든 기자를 지명하여 질문을 받는다. 영국의 주요 신문이나 텔레비전의 기자는 수상과 낯이 익으니까 손을 들기만 하면 반드시 지명해준다.
그러나 외국인인 일본인 기자 따위는 아무리손을 들어도 좀처럼 지명 받을 수 없다.
1979년 5월4일 보수당 당 본부에서 수상 당선 직후에 기자 회견이 실시되었다.
흥분으로 얼굴이 붉어진 새 수상은 회견장 뒤쪽에서 손을 드는 일본인 기자를 전혀 보려고 하지 않았다. 그때 나는 지금부터 지명 받을 때까지 손을 계속 들고 있겠다고 맹세했다.
이래 기자 회견 때마다 계속 손을 들고 있었다. 그리고 1년 후 처음으로 지명을 받았다. 끈질기게 계속 손을 들고 있는 일본인 기자를 마침내 인정한 것이다. 그 이후로는 손을 들면 언제나 질문을 받아주게 되었다.
“영국인과는 좀처럼 친구가 될 수 없다. 적어도 1년은 걸린다. 그러나 일단 마음을 허락하면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다.”는 영국을 잘 아는 일본인의 말이 기억나기도 한 적이 있다.
대처 전을 쓰겠다고 결심한 개인적동기는 하나 더 있다.
외국인 특파원의 한 명으로 부부가 다우닝 가 10번지에 초대 받았을 때의 일이다.
대처 수상은 필자의 아내에게 “나는 늘 당신 남편의 어려운 질문에 난처해하고 있어요.”하고 웃으면서 말을 걸어왔다.
물론 일종의 외교적인 말이지만 기자 회견 때마다 손을 드는 일본인 기자를 기억했다는 얘기일 것이다.
아니 설령 아무리 많은 지면을 소비하더라도 어떤 민족, 어떤 개인을 완전히 묘사해낼 수는 없을 것이다. 그것을 알면서 굳이 대처라는 인간에게 도전해본 것이 이 책이다.
대처는 지금까지 지적해왔다시피, 영국의 보수 정치가로서는 지극히 특이한 존재이다. 여성이면서 수상이 되었다는 것, 교육장관이라는 비교적 가벼운 포스트를 경험했을 뿐으로 일국의 지도자가 될 수 있었다는 것, 폭 넓은 취미도 없이 오직 일뿐이라는 것, 영국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컨센서스(합의)나 타협을 싫어하고 신념이라는 이질적인 개념을 밀어붙인 것……지금까지 생각할 수 있는 어떤 보수 정치가의 이미지와도 전혀 달랐다.
그 두드러진 차이야말로 대처라는 정치가를 문제로 삼고 싶다고 생각하기 시작한 하나의 동기였다. 그러나 좀더
개인적인 동기를 말한다면, 대처 수상 자신이 나를 기억해주었다는 점이었다.
필자가 런던 특파원을 끝내고 귀국한 후 대처 수상이 일본을 방문했다. 일본 프레스센터의 기자 회견에서 나는 제일 앞 줄에 진을 치고 질문하려고 열심히 손을 들었으나, 사회자는 도무지 지명해주지 않았다. 그게 눈에 띄었던지 대처 수상은 사회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저기 손을 들고 있는 기자는 런던에 있은 적이 있는 기자니까 질문하게 해주세요.”
바로 가까이 있었기 때문에 말은 확실히 들렸다. 잊어버리지 않았다는 걸 알고 한 순간 가슴이 뭉클했다.
영국의 기자 회견에서는 일본과 달리 수상 자신이 손을 든 기자를 지명하여 질문을 받는다. 영국의 주요 신문이나 텔레비전의 기자는 수상과 낯이 익으니까 손을 들기만 하면 반드시 지명해준다.
그러나 외국인인 일본인 기자 따위는 아무리손을 들어도 좀처럼 지명 받을 수 없다.
1979년 5월4일 보수당 당 본부에서 수상 당선 직후에 기자 회견이 실시되었다.
흥분으로 얼굴이 붉어진 새 수상은 회견장 뒤쪽에서 손을 드는 일본인 기자를 전혀 보려고 하지 않았다. 그때 나는 지금부터 지명 받을 때까지 손을 계속 들고 있겠다고 맹세했다.
이래 기자 회견 때마다 계속 손을 들고 있었다. 그리고 1년 후 처음으로 지명을 받았다. 끈질기게 계속 손을 들고 있는 일본인 기자를 마침내 인정한 것이다. 그 이후로는 손을 들면 언제나 질문을 받아주게 되었다.
“영국인과는 좀처럼 친구가 될 수 없다. 적어도 1년은 걸린다. 그러나 일단 마음을 허락하면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다.”는 영국을 잘 아는 일본인의 말이 기억나기도 한 적이 있다.
대처 전을 쓰겠다고 결심한 개인적동기는 하나 더 있다.
외국인 특파원의 한 명으로 부부가 다우닝 가 10번지에 초대 받았을 때의 일이다.
대처 수상은 필자의 아내에게 “나는 늘 당신 남편의 어려운 질문에 난처해하고 있어요.”하고 웃으면서 말을 걸어왔다.
물론 일종의 외교적인 말이지만 기자 회견 때마다 손을 드는 일본인 기자를 기억했다는 얘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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