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 선죽동에는 선죽교가 있다. 평범한 돌다리인 선죽교가 유명한 이유는 고려의 충신 정몽주가 이방원이 보낸 테러리스트 조영규에 의해 철퇴로 살해된 곳이기 때문이다.
정몽주가 죽은 후 대나무가 솟아 선죽교라 했고 지워지지 않는 그의 혈흔은 지금도 충절의 상징으로 추앙된다.
이방원은 정몽주의 혈흔이 몹시 눈에 거슬렸을 것이다. 그의 충절이 빛날수록 자신의 테러는 비난의 대상이다. 그러나 정몽주는 없앨 수 있어도 국민의 마음을 죽일 수는 없다. 선죽교를 없애버릴 생각도 했겠지. 간단한 일이다. 없애면 혈흔도 사라질 테니까. 그러나 이방원은 왕위에 오른 후 정몽주에게 시호를 내리고 충신의 표상으로 삼았다.
왜 그랬을까. 이방원은 현명했다. 선죽교를 없애도 백성의 가슴속 혈흔은 지울 수 없다는 사실은 잘 알았기 때문이다.
[조선왕조실록]은 보존상태의 이상 유무를 확인하는 이외에는 누구의 열람도 허용되지 않았다. 절대 권력자인 왕은 실록의 내용을 얼마나 알고 싶었을까. 왕실의 공과가 고스란히 기록된 실록을 왕이 볼 수 없도록 한 것은 절대 권력자가 사실을 왜곡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역사 왜곡을 방지하기 위한 철저한 예방이었다.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칡이 얽어진들 그 어떠리.
우리도 이같이 얽어져 백년까지 누리리라.’
정몽주를 회유하기 위한 이방원의 [하여가]는 한마디로 적당히 살자는 유혹이다. 이 땅의 정치인들에게 ‘하여가’를 들려주면 어떤 반응이 나올까. 당연하다고 할 것이다. 그들은 당선을 위해 [하여가]처럼 살기 때문이다.
요즘 뉴타운 ‘헛공약’으로 사기꾼 취급을 받고 있는 당선자들은 이 시를 정말 좋아할 것이다. 언제는 ‘헛공약’ 하지 안 했더냐. 죽기 살기 선거판에서 거짓 공약 좀 했기로 뭘 그걸 따지며 그것으로 당선 됐기로 어떻다는 것이냐. 여야 가릴 것 없이 도토리 키재기인 정치판에서 이번 뉴타운으로 주목을 받는 정몽준이나 신지호나 오세훈도 억울할 것이다. ‘헛공약’ 하지 않은 후보 있으면 손들고 나와 보라고 큰소리 칠 것이다. 자신의 거짓말은 제쳐두고 뉴타운 공약을 선경지명이라고 한다든지 뉴타운 안 하면 직무유기라고 큰 소리 치는 정몽준은 참 대단한 인물이다.
“남자는 배짱 여자는 절개”라는 약장수의 만담도 있지만 정치가 이 수준으로 타락하면 국민은 정치인들을 어떤 급수로 분류를 해야 될지 심각히 고민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걱정할 것 없다. 역사는 공정하다. 역사는 사실을 기록한다.
진실은 정몽주의 혈흔처럼 지워버릴 수가 없는 것이다.
요즘 뉴타운과 함께 정치적 초관심사가 된 것이 혁신도시와 균형발전 비판이다. 감사원이라는 곳에서 정리되지도 않은 문건이 조중동에 흘러가 대서특필됐다. 기다렸다는 듯 정부는 백지론 뉘앙스의 논평을 했다.
왜 강북에 출마한 입후보자들이 여야 가릴 것 없이 한 입처럼 뉴타운을 들먹였는가. 강남에 비해서 강북이 형편없이 낙후됐다는 것이 아닌가. 뉴타운을 만들어서 강남처럼 발전시키겠다는 것이 아닌가.
역사가 한순간에 이루어지지 않듯이 국가의 발전도 순간에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정권이 바뀌면서 국민은 혼란스럽다. 강북의 부동산이 요동친다. 남북관계가 안개 속이다. 교육자율화라는 이름으로 공교육이 무너진다.
참여정부는 분명히 한나라당 정권이 아니었다. 그러나 대한민국 정권임에는 틀림없다.
참여정부의 흔적은 무조건 지우려 한다는 것은 우려겠지만 오해의 소지는 분명히 있다. 왜냐면 대안도 없이 갈팡질팡 하기 때문이다. 국민적 저항에 직면한 혁신도시 계획과 균형발전 정책은 말 한마디로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정몽주의 혈흔을 없앴으면 하는 생각을 한 번 쯤 해 보았을 이방원이 왜 선죽교의 혈흔을 지우지 않고 역사에 남도록 했을까. 정부나 국민이나 모두가 마음에 담아 둘 역사의 교훈이다.
정몽주가 죽은 후 대나무가 솟아 선죽교라 했고 지워지지 않는 그의 혈흔은 지금도 충절의 상징으로 추앙된다.
이방원은 정몽주의 혈흔이 몹시 눈에 거슬렸을 것이다. 그의 충절이 빛날수록 자신의 테러는 비난의 대상이다. 그러나 정몽주는 없앨 수 있어도 국민의 마음을 죽일 수는 없다. 선죽교를 없애버릴 생각도 했겠지. 간단한 일이다. 없애면 혈흔도 사라질 테니까. 그러나 이방원은 왕위에 오른 후 정몽주에게 시호를 내리고 충신의 표상으로 삼았다.
왜 그랬을까. 이방원은 현명했다. 선죽교를 없애도 백성의 가슴속 혈흔은 지울 수 없다는 사실은 잘 알았기 때문이다.
[조선왕조실록]은 보존상태의 이상 유무를 확인하는 이외에는 누구의 열람도 허용되지 않았다. 절대 권력자인 왕은 실록의 내용을 얼마나 알고 싶었을까. 왕실의 공과가 고스란히 기록된 실록을 왕이 볼 수 없도록 한 것은 절대 권력자가 사실을 왜곡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역사 왜곡을 방지하기 위한 철저한 예방이었다.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칡이 얽어진들 그 어떠리.
우리도 이같이 얽어져 백년까지 누리리라.’
정몽주를 회유하기 위한 이방원의 [하여가]는 한마디로 적당히 살자는 유혹이다. 이 땅의 정치인들에게 ‘하여가’를 들려주면 어떤 반응이 나올까. 당연하다고 할 것이다. 그들은 당선을 위해 [하여가]처럼 살기 때문이다.
요즘 뉴타운 ‘헛공약’으로 사기꾼 취급을 받고 있는 당선자들은 이 시를 정말 좋아할 것이다. 언제는 ‘헛공약’ 하지 안 했더냐. 죽기 살기 선거판에서 거짓 공약 좀 했기로 뭘 그걸 따지며 그것으로 당선 됐기로 어떻다는 것이냐. 여야 가릴 것 없이 도토리 키재기인 정치판에서 이번 뉴타운으로 주목을 받는 정몽준이나 신지호나 오세훈도 억울할 것이다. ‘헛공약’ 하지 않은 후보 있으면 손들고 나와 보라고 큰소리 칠 것이다. 자신의 거짓말은 제쳐두고 뉴타운 공약을 선경지명이라고 한다든지 뉴타운 안 하면 직무유기라고 큰 소리 치는 정몽준은 참 대단한 인물이다.
“남자는 배짱 여자는 절개”라는 약장수의 만담도 있지만 정치가 이 수준으로 타락하면 국민은 정치인들을 어떤 급수로 분류를 해야 될지 심각히 고민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걱정할 것 없다. 역사는 공정하다. 역사는 사실을 기록한다.
진실은 정몽주의 혈흔처럼 지워버릴 수가 없는 것이다.
요즘 뉴타운과 함께 정치적 초관심사가 된 것이 혁신도시와 균형발전 비판이다. 감사원이라는 곳에서 정리되지도 않은 문건이 조중동에 흘러가 대서특필됐다. 기다렸다는 듯 정부는 백지론 뉘앙스의 논평을 했다.
왜 강북에 출마한 입후보자들이 여야 가릴 것 없이 한 입처럼 뉴타운을 들먹였는가. 강남에 비해서 강북이 형편없이 낙후됐다는 것이 아닌가. 뉴타운을 만들어서 강남처럼 발전시키겠다는 것이 아닌가.
역사가 한순간에 이루어지지 않듯이 국가의 발전도 순간에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정권이 바뀌면서 국민은 혼란스럽다. 강북의 부동산이 요동친다. 남북관계가 안개 속이다. 교육자율화라는 이름으로 공교육이 무너진다.
참여정부는 분명히 한나라당 정권이 아니었다. 그러나 대한민국 정권임에는 틀림없다.
참여정부의 흔적은 무조건 지우려 한다는 것은 우려겠지만 오해의 소지는 분명히 있다. 왜냐면 대안도 없이 갈팡질팡 하기 때문이다. 국민적 저항에 직면한 혁신도시 계획과 균형발전 정책은 말 한마디로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정몽주의 혈흔을 없앴으면 하는 생각을 한 번 쯤 해 보았을 이방원이 왜 선죽교의 혈흔을 지우지 않고 역사에 남도록 했을까. 정부나 국민이나 모두가 마음에 담아 둘 역사의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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