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는 4. 26.자 ‘한나라당 ‘복당 치고받기’ 지겹다’라는 제목의 사설을 통해, 박근혜 前 한나라당 대표가 25일, “내가 이번 7월 전당대회에 나가지 않을 테니 전부 복당시켜 달라”고 요구한 내용을 두고 “이렇게 친박 세력의 복당을 요구하는 것 자체가 계파 수장(首長)의 모습 그대로다”라며 비판했다. 그러면서 “(친이 진영이) 사적 감정 때문에 친박 세력의 복당을 막는다는 박 전 대표의 주장은 맞는 말”이라고 공감하면서도 “맞는 말이지만 국민 보기에 감정은 양쪽이 다 갖고 있는 듯하다.”라며 양측을 싸잡아 비판했다.
동아일보도 같은 날 ‘朴 전 대표, 親朴 감동시키듯 ‘국민감동 정치’를’이란 제하의 사설에서 “한나라당의 공천에 문제가 있었고, 그로 인해 피해를 본 사람들도 있었던 게 사실이다”라며 당의 공천 잘못을 비판하면서도 “경위야 어떻든 당 대표까지 지낸 사람의 이런 처신에 친박 인사들처럼 많은 국민도 감동할 것 같지는 않다”고 비판한다.
정말 이런 식의 양비론이 온당한가. 잘못한 사람이 있는데 ‘두 사람 다 나쁘다’고 얘기한다면, 잘못을 저지른 사람보다 잘못을 지적한 사람까지 나무라는 꼴이다.
토론 문화가 발달한 프랑스 사회에서 특히 양비론이 들어설 틈이 없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지난 2004년, 탄핵 후폭풍으로 인해 열린우리당이 200석 이상을 차지할 것이란 얘기가 공공연하게 나돌았다.
2004년 3월 중순, 17대 총선을 앞둔 시점에서 본인이 대구 대표로 공천장을 받을 공천자대회 당시만 하더라도, 탄핵안 가결 후폭풍으로 인해 중앙당사는 한마디로 초상집 분위기였다. “50석, 많아야 70석이나 얻을 수 있겠나?”, “이러다 당이 부서지는 것 아니냐?”며 너도나도 침울한 탄식을 쏟아냈다.
그런 절망적 상황에서 한나라당과 박근혜 대표는 화려한 당사를 버리고 천막당사에서 風餐露宿하면서 당을 개혁해 마침내 121석을 확보했다. 노무현 정부는 결국 박근혜 대표로 인해 200석 확보에 실패하고 ‘152석 밖에’ 얻지 못한 셈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과거 탄핵 후폭풍 때와 마찬가지로, 17대 대통령 선거가 끝난 직후만 해도 한나라당에 200석을 줄 것 같은 국민여론이 있었다.
그러나 결국 ‘153석 밖에’ 얻지 못했다. 이명박 정부 인수위의 몇 가지 실수를 포함해 ‘강부자ㆍ고소영 내각’이라고 비아냥을 받은 정부와 내각의 인사문제, 그리고 당의 원칙없는 공천 때문이다.
따라서 정론직필을 내세우는 언론이라면, ‘국민의 뜻을 반영하라’는 당연한 복당 요구를 비난할 것이 아니라, 민심을 바로 읽지 못해 사실상 확보되어 있던 기반의 상당 부분을 상실한, 정부와 한나라당의 무원칙적 공천 문제를 정확하게 비판하는 것이 먼저여야 한다. 한나라당이 여당의 역할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정부 정책에 대한 무비판적 수용이 아니라, 건강한 견제와 감시가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활발한 토론과 대화가 필요하다.
그러나 근래 한나라당의 모습에서 생산적 토론과 활력의 부족을 느낀다. 당정간이나 당내에서 건강한 소통의 기능이 축소된 탓은 아닐까. 한반도대운하 문제, 미국산 쇠고기 수입문제, 잡음이 끊이질 않는 청와대와 내각의 인사문제, 그리고 친박인사들의 복당문제 등 각종 현안에 대해 黨은 눈치 보기로 일관하고 있다는 인상이다.
우리는 4년 전에 노무현 정부의 청와대 만찬을 기억한다. 당시 당선자들이 노무현 대통령과 함께 운동권 노래를 부르고 소위 좌파 맹동주의자들의 망동으로 시작해서 끝내 국회와 정부의 소통을 회복하지 못하고, 견제와 균형을 지켜내지 못하고, 정권의 실패로 끝났다. 이와 마찬가지로 소위 지금의 ‘우파 기회주의자’들이 계속해서 방관과 순종으로 일관한다면,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도, 노무현 정부와 열린우리당과 마찬가지의 길을 걷지 않는다고 어느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한나라당과 정부가 지난 4. 9. 총선에서 드러난 민심을 제대로 읽고, 그것을 충실히 국정과 黨務에 반영함으로써, 그야말로 국민을 ‘섬기는’ 정부 여당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대통령도 성공한 정부를 만들 수 있고, 한나라당도 성공한 여당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동아일보도 같은 날 ‘朴 전 대표, 親朴 감동시키듯 ‘국민감동 정치’를’이란 제하의 사설에서 “한나라당의 공천에 문제가 있었고, 그로 인해 피해를 본 사람들도 있었던 게 사실이다”라며 당의 공천 잘못을 비판하면서도 “경위야 어떻든 당 대표까지 지낸 사람의 이런 처신에 친박 인사들처럼 많은 국민도 감동할 것 같지는 않다”고 비판한다.
정말 이런 식의 양비론이 온당한가. 잘못한 사람이 있는데 ‘두 사람 다 나쁘다’고 얘기한다면, 잘못을 저지른 사람보다 잘못을 지적한 사람까지 나무라는 꼴이다.
토론 문화가 발달한 프랑스 사회에서 특히 양비론이 들어설 틈이 없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지난 2004년, 탄핵 후폭풍으로 인해 열린우리당이 200석 이상을 차지할 것이란 얘기가 공공연하게 나돌았다.
2004년 3월 중순, 17대 총선을 앞둔 시점에서 본인이 대구 대표로 공천장을 받을 공천자대회 당시만 하더라도, 탄핵안 가결 후폭풍으로 인해 중앙당사는 한마디로 초상집 분위기였다. “50석, 많아야 70석이나 얻을 수 있겠나?”, “이러다 당이 부서지는 것 아니냐?”며 너도나도 침울한 탄식을 쏟아냈다.
그런 절망적 상황에서 한나라당과 박근혜 대표는 화려한 당사를 버리고 천막당사에서 風餐露宿하면서 당을 개혁해 마침내 121석을 확보했다. 노무현 정부는 결국 박근혜 대표로 인해 200석 확보에 실패하고 ‘152석 밖에’ 얻지 못한 셈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과거 탄핵 후폭풍 때와 마찬가지로, 17대 대통령 선거가 끝난 직후만 해도 한나라당에 200석을 줄 것 같은 국민여론이 있었다.
그러나 결국 ‘153석 밖에’ 얻지 못했다. 이명박 정부 인수위의 몇 가지 실수를 포함해 ‘강부자ㆍ고소영 내각’이라고 비아냥을 받은 정부와 내각의 인사문제, 그리고 당의 원칙없는 공천 때문이다.
따라서 정론직필을 내세우는 언론이라면, ‘국민의 뜻을 반영하라’는 당연한 복당 요구를 비난할 것이 아니라, 민심을 바로 읽지 못해 사실상 확보되어 있던 기반의 상당 부분을 상실한, 정부와 한나라당의 무원칙적 공천 문제를 정확하게 비판하는 것이 먼저여야 한다. 한나라당이 여당의 역할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정부 정책에 대한 무비판적 수용이 아니라, 건강한 견제와 감시가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활발한 토론과 대화가 필요하다.
그러나 근래 한나라당의 모습에서 생산적 토론과 활력의 부족을 느낀다. 당정간이나 당내에서 건강한 소통의 기능이 축소된 탓은 아닐까. 한반도대운하 문제, 미국산 쇠고기 수입문제, 잡음이 끊이질 않는 청와대와 내각의 인사문제, 그리고 친박인사들의 복당문제 등 각종 현안에 대해 黨은 눈치 보기로 일관하고 있다는 인상이다.
우리는 4년 전에 노무현 정부의 청와대 만찬을 기억한다. 당시 당선자들이 노무현 대통령과 함께 운동권 노래를 부르고 소위 좌파 맹동주의자들의 망동으로 시작해서 끝내 국회와 정부의 소통을 회복하지 못하고, 견제와 균형을 지켜내지 못하고, 정권의 실패로 끝났다. 이와 마찬가지로 소위 지금의 ‘우파 기회주의자’들이 계속해서 방관과 순종으로 일관한다면,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도, 노무현 정부와 열린우리당과 마찬가지의 길을 걷지 않는다고 어느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한나라당과 정부가 지난 4. 9. 총선에서 드러난 민심을 제대로 읽고, 그것을 충실히 국정과 黨務에 반영함으로써, 그야말로 국민을 ‘섬기는’ 정부 여당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대통령도 성공한 정부를 만들 수 있고, 한나라당도 성공한 여당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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