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두원 한우조합장에게

    기고 / 시민일보 / 2008-04-29 15:5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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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태 복(前 보건복지부 장관)
    지난 번 전화했을 때는 벼농사준비로 바쁘다고 했는데, 요새 근황은 어때요? 미국산 쇠고기 전면수입 결정 때는 “농촌에 앞이 보이지 않는다”는 대답을 듣고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습니다. 그 뒤에 나온 축산농가대책이라는 것이 애초에 예상했듯이 빤한 내용을 넘지 못했네요. 그런 정도밖에 고민하지 않는 것이지요. 도축세 깎아주고 수당 조금 주는 대책으로 축산농가들의 절망을 해결할 수 있다고 본 걸까요? 아니면 대책은 체면치레로 내놓고, 저들의 머리 속에는 값싼 미국산 쇠고기를 먹는 국내소비자가 더 많으니 20만명의 축산농가가 망하는 것은 문제될 것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요.

    이 조합장, 대통령의 방미 중에 쇠고기 협상을 서둘러 타결했다든지, 광우병 소가 발생해도 수입 금지를 못한다든지 하는 내용도 문제겠지요. 그러나 보다 큰 문제는 세계적인 식량전쟁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는 최근 상황에서 한국정부의 지도층들이 특단의 대책도 없이 예전과 같이 무책임한 발언을 계속하고, 하나마나한 대책만 적당히 내놓는 데 있다고 봅니다.

    앞으로 식량문제는 심각하게 대두될 겁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미 우리는 UR 이후 정부가 100여조의 천문학적인 혈세를 농촌에 쏟아부었지만, 아무 효과도 없었던 경험을 갖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간혹 한국의 농촌문제에는 해답이 없다는 주장을 펴는 사람들도 많지요. 자신들의 무능과 무책임을 농촌사회와 한국의 조건에 떠넘기는 것이지요. 하지만 우리보다 발전된 덴마크나 프랑스 등 유럽 국가들과 이번에 자국의 축산농가의 이익을 관철하기 위해 한미동맹을 내세워 압박한 미국정부도 장단기대책에 의거해 치밀하게 추진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식량이 핵폭탄이나 미사일보다 무서운 무기이기 때문입니다. 한국시장에 밀어닥칠 쇠고기를 비롯한 식량과 식품에는 각국 정부가 주는 보조금과 특별대책비가 범벅이 돼서 들어오고 있다는 것을 이 조합장은 잘 알고 있을 겁니다. 사정이 이런데도 한국의 지도층은 겉으로 드러난 쇠고기값만 비교해서 싼 고기를 수입하는 게 뭐가 문제냐고 말합니다. 자국 축산농가의 이익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미국정부가 부러울 지경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아쉬운 점은 한국의 쇠고기값이 너무 비싸다는 것입니다. 쇠고기값을 대폭적으로 내리지 않는 한, 값싼 외국산 쇠고기는 한국인을 끌어당기겠지요.
    이런 문제 때문에 이 조합장은 한우의 유통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직판점이나 인터넷 판매를 통해 30% 가격인하를 시도했고, 시중의 반응도 쾌 좋았지요? 실제 지역식당에 가서 먹어보니 고기의 질도 아주 좋았습니다. 그때 필자가 “이런 질이라면 미국산 쇠고기와도 겨뤄볼만하다”는 얘기를 했는데, 문제는 한국의 소비자들이 쉽게 접근할 수 없다는 겁니다. LA갈비집을 포함한 유통체인점까지 진출할 모양인데 한우조합처럼 자금력도 취약하고 경험도 적은 조직이 대처할 수 있을까 걱정됩니다.

    더 큰 문제는 유통마진을 줄여도 마리당 생산비, 즉 사료값과 땅값이 너무 비싸다는 고질적인 문제와 한우의 품질문제가 여전히 남아 있지요. 이 문제도 길이 없는게 아닌데, 여태까지 헛돌고 있습니다. 구조적이며 체계적인 접근을 고민할 때마다 한국의 농협, 축협은 도대체 무엇을 하는 조직인지 알 수 없어요. 문제는 또 있지요. 농촌인구가 해마다 감소하고 고령화가 계속되면 실제 농업노동에 종사하는 숫자가 150만명 이하로 조만간 떨어질 것인데, 이에 대한 대책도 시급합니다. 쌀, 보리, 밀, 콩, 배추, 고추, 마늘 같은 주요작물과 소, 돼지, 닭, 오리 등의 가축, 작약, 당귀, 인삼, 차 등의 특산품의 생산량과 생산인구, 고품질 확보를 위한 다양한 대책 등 숱한 과제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건만 정부당국은 어쩌자는 것인지….

    이 조합장, 시원한 희망을 얘기하지 못하고, 갑갑한 얘기만 늘어놓네요. 그래도 한국의 농촌은 이 조합장 같은 인물들이 있기에 내일도 존재합니다. 건투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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