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부의 구조조정, 유감(有感)

    기고 / 시민일보 / 2008-05-08 18:29:05
    • 카카오톡 보내기
    이 경 재 (무소속 국회의원)
    로마에서 콘스탄티노플로 수도를 옮긴 4세기 로마황궁은 동양적인 호사로 가득 찼다.

    30세의 젊은 나이로 황제에 오른 율리아누스가 머리를 자르기 위해 이발사를 부르자 사치스런 귀족 옷을 입은 20여명이 몰려왔다.

    이발사와 그 조수들이었다.

    이들의 연봉과 지원비가 천문학적이었다고 한다.

    황제는 이발사와 조수한 사람을 빼고 모두 황궁에서 쫓아냈다.

    필요 이상으로 비대해진 그리고 권력화한 황궁의 관료조직을 쓸어낸 것이다.

    그는 이른바 ‘작은 정부’ 실천자의 예가 되었다.

    새 정부의 ‘작은 정부’를 향한 구조조정이 한창이다.

    먼저 청와대가 모범을 보이고 나섰다.

    기능직 공무원 60여명에 대기발령을 내렸다. 대부분 청소, 식당, 정원관리 업무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다.

    주무부처가 가만히 있을 수 없는 노릇, 올해 안에 공무원을 최대 1만명선 10% 감축하라고 지자체에 하달했다.

    이대로라면 환경미화원 등 무기계약직 근로자 2000여명도 옷을 벗게 된다고 한다.

    새 정부의 정책기조는 ‘줄푸세’ 즉, 세금과 정부규모는 줄이고, 규제는 풀고, 법과 원칙을 세우자는 시장경제와
    법치주의 이념에 기초하고 있다.

    내가 꿈꾸는 세상이기도 하다.

    그러나 청와대와 행안부의 조치는 영 뒷맛이 개운치 않으니, 왜 그럴까?

    정부가 수량적 구조조정에만 집착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천편일률적으로 ‘기관별 인원 몇 % 감축’식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 같다.

    실적 쌓기에는 용이할지 몰라도 행정서비스의 질 저하와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발생시킬 수 있다.

    직무분석을 통한 인력 재배치 등 기능과 조직측면의 구조조정이 우선 돼야 한다.

    감원의 폭과 대상은 그 과정에서 도출되는 게 순서다.

    특히 구조조정 대상이 기능직, 하위직, 계약직에 집중되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철밥통에도 ‘레벨’이 있을텐데, 고작 환경미화원들 철밥통 깼다고 박수칠 국민들이 몇이나 될까?

    그렇잖아도 비정규직 문제로 온 나라가 몸살을 앓고 있다.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여야 할 정부가 오히려 악습을 선도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더욱이 이 정부의 가장 큰 화두는 일자리 창출이다.

    그러나 공무원 감축이 일자리 창출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 아무런 설명이 없는 것 같다.

    얼마의 세금을 절약할 수 있다는 ‘뺄셈’만 있을 뿐, 민간 고용에 파급될 효과나 대량실직에 따른 사회적 비용 증가에 대한 ‘연립방정식’은 구경한 적이 없다.

    민간의 고용여력이 충분하지 않은 지금, 그나마 있는 일자리를 빼앗아 사회 부담을 키우는 결과를 초래하지는 않을까?

    행안부의 지침이 있자마자 부산시 등 몇몇 지자체는 신규채용을 억제하고 감원 규모를 충족하겠다고 밝혔다.

    선망의 대상인 증권 유관기관들은 정부가 구조조정을 단행하는 상황에서 신입사원 채용이 부담스럽다는 이유로 신규채용에 회의적이라고 한다.

    자칫 민간 기업들이 일자리 창출 대신 구조조정에 골몰하지 않을까 걱정이다.

    율리아누스 황제가 황궁을 구조조정한 참뜻은 돈 먹는 하마처럼 낭비적이며 권력화한 관료기구를 타파하자는 것이다.

    새 정부의 ‘작은 정부’도 기득권 유지를 위해 규제를 남발하여 경제활동을 위축시킨 관료기구를 타파하는데 초점을 둬야한다.

    신(神)이 내렸다는 공적 기관에 과감히 손을 대야지 쥐꼬리만한 월급으로 근근히 살아가는 환경미화원등 비정규직부터 손을 댄 청와대의 모습에 실망을 금치 못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시민일보.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시민일보 시민일보

    기자의 인기기사

    뉴스댓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