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말 자욱한 해방구 광화문 네거리

    기고 / 시민일보 / 2008-06-03 18:3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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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재근 (문화평론가)
    이순신 장군 동상이 내려다보고 있었다. 전경버스가 이순신 장군 동상과 국민 사이를 차단했다. 이순신 장군을 볼모로 삼은 것이다. 동상 앞에 닭장차로 성을 쌓아 국민의 목소리를 가로막았다. 예로부터 성은 외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쌓는 것인데 경찰은 국민을 외적으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매콤한 소화기 분말이 버스 사이로 끊임없이 쏟아져 나왔다. 앞에 서있던 사람들은 곧 머리가 하얗게 됐다. 마치 화산재를 뒤집어쓴 사람처럼. 약 5미터 정도만 또렷이 구분됐다. 흡사 환타지 영화 속의 한 장면 같았다. 침에서 시큼한 맛이 났다.

    물대포에 대비했던 것으로 보이는 두터운 비닐천이 시민군에 의해 거대한 부채로 화했다. 약 이십여 명이 달라붙어 하나 둘 하나 둘 하면서 부채질을 했다. 소화기 분말은 밤하늘로 날아올라 거대한 구름이 되었다. 서서히 움직이는 거대한 구름 아래 뿌연 분말에 휩싸인 대치현장.

    누군가 '장갑이 필요합니다‘라고 외쳤다. 사람들은 맨손으로 그 큰 비닐천을 붙잡고 쉼없이 부채질을 하고 있었다. 젊은 여자들도 있었다. 아마 손톱이 상했으리라. 한 삼십분이나 흘렀을까. 누군가 ’여기 장갑 가져 왔습니다’하면서 나타났다. 그것을 전해주고 다시 ‘장갑 마스크 있으신 분!’하면서 군중 속으로 사라졌다.

    누군가 물 두 박스를 양 손에 하나씩 들고 나타나 ‘물 드실 분!’하고 외친다. 한 병씩 집어든다. 새벽이 되자 김밥을 들고 나타나 ‘밥 드세요!’하는 분들이 있다. 사람들이 애국가를 부른다. 책에서 읽었던 80년 오월 광주 해방공간에서 벌어졌다던 풍경이다. 우애와 연대, 자발적 희생, 우리 역사에서 드물었던 시민공동체의 재림이다.

    한 그룹이 거리행진을 하자고 한다. 다른 이들은 왜 사람들을 갈라놓으려 하냐고 따진다. 티격태격하다가 갈 사람은 가고 남을 사람은 남았다. 전체에게 들릴 만한 마이크 설비 하나 없는 집회. 곳곳에서 대립과 화합이 이루어진다.

    문제가 발생하면 누군가가 목청껏 외친다. ‘길을 확보해 주세요’, ‘저쪽에 전경이 오고 있어요’, ‘의료진이 필요해요’. 지휘 아닌 지휘는 그렇게 이루어졌다.

    소방차에 물지원이 요청됐다며 곧 물대포가 사용될 거라고 누군가 말한다. 물대포는 사용되지 않았다. 물 맞을 각오를 하고 어린 여학생들까지 우비를 입고 나타났다. 새벽녘에 만난 분이 자신들 그룹이 소방차를 적발해 물지원을 막았다고 말해준다.

    누군가 물병을 던진다. 그럼 다른 사람들이 던지지 말라고 외친다. 이쪽에서 던지면 전경 쪽에서 반드시 되던진다. 전경은 보호용구를 착용하고 있는데 반해 이쪽은 무방비다. 상호간에 던지면 시민만 손해다. 누군가 폭력을 쓰려하면 다른 사람들이 비폭력을 외친다. 그렇게 규율은 유지된다.

    6월 1일 밤 광화문 네거리의 풍경이었다. 이명박 정부에 분노하는 국민의 시위가 이어졌다. 발단은 쇠고기지만 총체적 분노다. 국민을 우습게 아는 정부에 분노하지 않는다면 이미 공화국의 시민이 아니다. 시민의 분노를 가로막은 건 전경의 성채였다. 분노에 대화와 사죄로 화답하지 않고 성채를 쌓아 권력보위에만 급급한 정부. 민주공화국엔 어울리지 않는 권력이다.

    시민은 공화국의 자유인을 뜻한다. 시민에겐 주권과 참정권이 있다. 대통령이나 나나 시민인 이상 모두 N분의 1에 해당하는 주권을 나눠 갖는다. 주권을 혼자 독차지했던 이가 ‘왕’이었다. 이명박 대통령을 보면 꼭 ‘왕’같아 보일 때가 가끔 있다.

    왕은 아니라도 최소한 회사 사장과는 대단히 유사한 행태를 보인다. 왕은 하늘에 대해 책임지고 사장은 수익률로 책임진다. 이명박 대통령은 ‘경제성장률’로 모든 걸 책임지겠다는 태세다. 이것이 독선적인 리더십을 낳는다. 대통령이나 나나 똑같은 N분의 1임을 알아버린 공화국의 시민이 받아들이기 힘든 행태다.

    이렇게 서로 코드가 다른 두 개의 주체를 가른 것이 전경의 닭장차 성벽이었다. 닭장차를 사이에 두고 전혀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한쪽은 명령과 상명하복, 제복의 권력이, 다른 한쪽은 수평적이고 소통적인 개성의 권력이 작동한다. 광화문 네거리에서 두 개의 세계는 충돌했다. 이명박의 세계는 소화기 분말을 쏘아댔다. 그 분말은 시위대를 오염시키고 하늘로 흩어졌다. 음산한 그림자를 땅에 드리우며.

    한 스무살이나 됐을까? 태극기를 들고 나왔던 여자들이 전경에게 물병을 줬다. 전경은 웃으면서 받았다. 기억에 남는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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