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사는 길

    기고 / 시민일보 / 2008-06-19 17:5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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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원책 변호사

    촛불시위가 서울을 휘젓는 동안 대통령은 보이지 않았다.


    컨테이너 뒤에 은신한 이 나라의 장관, 청와대 수석 중엔 대통령을 위해 총대를 멜 자는 없었다.


    정권 스스로 거리에 컨테이너를 쌓아올릴 때, 대통령의 권위는 사라졌다.


    촛불시위 현장에 낙엽처럼 흩날리는 욕설 때문이 아니다.


    방송의 왜곡된 보도나 집단히스테리 같다는 대중들의 불만과 불신 때문도 아니다.


    대통령의 추락은 비단 불만세력 뿐 아니라 전국민에 대한 추락이다.


    17%의 지지도로 나타나는 분노의 저변에는 대통령에 대한 짙은 회의가 배어 있는 것이다. 그건 빨아도 지워지지 않는 먹물 같은, 불신의 염료가 되어버렸다.


    대통령은 자신이 당선되면 이 나라의 분위기가 바뀐다고 말했다.


    신바람과 함께 투자가 일어나고 일자리가 생기며 소득이 늘 것이라는 걸 장담했다.


    그는 자신이 '현대건설'이라는 기업에서 창조했다고 믿은 '신화'를 믿었다.


    그 때 전승(戰勝)에 들떠 아무도 성과주의에 몰입된 경영자적 사고가 위험하다는 것을 말하지 않았다.


    이념과 철학이 없는 정책, 정당, 정부, 그리고 대통령이 얼마나 취약한지를 누구도 알지 못했던 것이다.


    이것이 10년 만에 되찾았다는 정권이 스스로 존엄하지 못하고 무너져내린 원인이다.


    출발선상에서 대통령이 추락함으로써 국민들은 불행해졌다.


    임기가 통째 남아 있는 대통령이 실족한 것이 어찌 대통령 혼자만의 비극이겠는가.


    지금 이 판에 그의 권위를 다시 찾아줄 인재는 없다.


    그 누가 총리 자리에 앉아 난국을 수습하더라도 대통령을 대통령답게 해 주지는 못한다.


    대통령은 초등학교 다니는 꼬맹이로부터 이 사회의 중추인 4-50대까지 희화화되었고 대통령의 말씀은 저자의 안주거리가 되었다.


    그런데도 대통령은 사태가 수습되면 다시 뛸 수 있다고 믿는 모양이다.


    다리뼈가 부러지고 무릎이 까졌는데도 4년 8개월 긴 마라톤을 완주할 수 있겠는가.


    자유민주주의를 지탱하는 권력은 시장(市場)의 권력이다.


    정치 경제 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공정한 경쟁과 기회를 통해 쟁취한 시장의 권력은 그 자체로 권위를 가진다.


    그러나 한 달이 넘게 타오르는 촛불시위 현장은 그러한 시장의 권력이 발붙일 데가 없다. 이제 그 곳에는 민중(民衆)의 힘이 분출하는 거대한 해방구가 되어, 민중의 권력이 모든 것을 지배한다.


    설령 쇠고기 재협상으로 이 촛불이 잦아든들, 아니, 역풍이 불어 촛불이 광장에서 ?겨난들 민중의 권력에 처절하게 패한 시장의 권력은 회복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부활을 꿈꾸는 이 대통령의 비극이다.


    인류가 찾은 차선(次善)의 민주제인 대의정치는 파괴되었다.


    의원 스스로 촛불을 들고 광장으로 나왔을 때 그들은 이미 국민의 대표인 의원인 것을 포기했다.


    거리에서 민중들과 함께 구호를 외치는 순간 그들은 의원이 아니라 혁명가거나 민주주의를 좀먹는 선동가 '포
    퓰리스트'에 불과하다.


    이제 이 나라는 이런 소영웅주의자들로 인해 '똑똑한 군중(Smart Mobs)'이 모든 것을 재단하는 직접민주정(直接民主政)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


    여기에는 지도자의 어떤 혜안도 필요 없고 '다수의 오류'가 위험한 것도 문제되지 않는다. 광장에 있는 것이 진실이든 허구든, 그가 왕이다.


    아마도 대통령은 총리를 바꾸고 청와대 실장을 갈고 30개월 넘는 쇠고기의 수입을 막으면 이 사태가 진정될 것으로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한 번 득세한 민중의 권력은 끝까지 갈려는 속성을 버리지 못한다.


    이제 이명박 대통령에게는 두 길이 있을 뿐이다.


    4년 8개월 남은 임기를 '레임 덕'에 비틀거리며 힘 빠진 대통령으로 보낼 것인가, 아니면 다시 대통령의 권위를 찾을 것인가.


    그가 다시 힘을 가지기 위해서는 국민들에게 신임을 묻는 절차를 거칠 수밖에 없다.


    대통령이 17%의 지지도를 겁내고 권력을 잃을 것을 염려해 국민들에게 권력을 위임받은 것을 확인하는 절차를 피한다면, 그는 남은 임기 내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처지가 된다. 그것은 대통령의 불행이자 이 나라의 비극이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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