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집회 집단소송?

    기고 / 시민일보 / 2008-09-01 19: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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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돈 (중앙대 법대 교수)
    한나라당과 정부가 불법집회로 인해 피해를 입은 사람들의 손해배상청구를 쉽게 하기 위해 집단소송 제도를 도입하기로 했다고 한다. 그런 구상은 어처구니없는 것이다. 그래서 지나가는 에피소드이겠거니 했더니, 그게 아니고 정말 입법을 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서 참여연대와 서울대 조국 교수가 반대 의견을 피력했다. 참여연대는 집단소송은 대기업 같은 거대한 조직을 상대로 소수자의 권익을 지키기 위한 제도라는 이유에서, 그리고 조 교수는 이것이 위헌이라는 이유로 반대를 표명했다.

    돌이켜보면 내가 노무현 정부와 각(角)을 세우기 시작한 것은 집단소송 도입부터였다. 노무현 정부는 들어서자마자 자본시장의 투명성을 강화하겠다면서 증권집단소송 도입을 천명했다. 증권집단소송 도입에 대해선 참여연대 소속 변호사들 뿐 아니라, 소위 우파성향을 자처하는 몇몇 변호사도 찬성했다. 당시 원내 다수당이던 한나라당 의원 중 상당수도 이에 찬성했다. 반면 이 제도의 본질을 알고 있는 전경련 등 경제단체는 경악했다. 그 때 나는 집단소송에 반대하는 칼럼을 신문에 여러 차례 기고해서 반대론에 힘을 실어 주었다. 집단소송의 폐단을 분석한 미국 책을 서평 형식으로 소개하기도 했다. 2003년 2월 3일자 조선일보(‘집단소송의 함정’), 2003년 3월 10일자 한국경제(‘미 증권집단소송의 시사점’) 등이 당시 내가 쓴 글이다. ‘코스닥 저널’과 ‘월간 상장(上場)’에도 내 글이 실렸다.

    한나라당이 경제단체의 기대를 저버리고 증권집단소송법 입법에 동의해서 결국 증권집단소송법은 국회를 통과했다. 그 후 열린우리당이 증권집단소송을 확대하고, 소비자집단소송을 새로 도입하고, 또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도입하려고 하자, 나는 이에 반대하는 글을 여러 군데에 썼다. 2004년 9월 1일자 한국경제(‘허울좋은 소비자 집단소송’), 2004년 6월 30일자 한국경제(‘징벌적 배상제의 함정’), 2004년 12월 27일자 문화일보(‘집단소송법 확대 무모하다’), 2005년 1월 25일자 한국경제(‘기업, 집단소송과 一戰 대비를’) 등이 그런 것들이다.

    내가 집단소송에 반대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현행 민사소송법에 의한 선정(選定)당사자 제도로 거의 동일한 효과를 얻을 수 있을뿐더러, 집단소송을 시행하고 있는 미국의 경우를 보더라도 집단소송은 결국 변호사의 돈벌이 수단이 되고 말기 때문이다. 미국의 집단소송은 ‘진보적 실험(progressive experiment)’이 초래한 실패한 제도로 손꼽힌다. 미국의 보수진영과 공화당은 이를 폐지하는 것을 중요한 사법개혁 아젠다로 삼고 있다. 말하자면, 많은 진보정책이 그러하듯이, 집단소송도 보기에는 그럴싸하지만 먹어보면 시기만 한 레몬(lemon) 같은 존재인 것이다. 여하튼 소액주주와 소비자를 보호한다는, ‘일견(一見) 거룩해 보이는 명분’에 대해 실명(實名)을 걸고 싸웠던 것은 소신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런 나의 노력이 어느 정도 효력을 발휘했는지 모르겠지만, 박근혜 대표가 이끌던 한나라당은 더 이상의 집단소송 확대에 동의하지 않아서 경제계가 우려했던 ‘집단소송 확대’ 사태는 발생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 거대 여당이 된 한나라당이 불법집회로 인한 피해를 효과적으로 구제하기 위한 특별한 집단소송제도를 도입하겠다고 한다. 다시는 ‘촛불’ 같은 일이 생겨서는 아니 되겠다는 굳은 결의는 갸륵하지만, 겨우 생각해 냈다는 발상이 ‘불법집회 집단소송’이니 측은한 생각마저 든다.

    불법시위로 인해 피해를 입은 상인들은 물론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그들은 선정당사자 제도를 이용해서 얼마든지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시위로 인해 피해를 입은 상인들은 도심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선정당사자 제도를 통해 원고를 모집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하지만 불법시위와 집회로 인해 입은 영업상의 피해를 소송을 통해 구제 받기 위해선 넘어야 할 장벽이 적지 않다. 우선 가해자를 특정하기가 쉽지 않다. 주최자가 있더라도 주최자가 모든 상황을 지휘하고 통제한다고 볼 수는 없다. 또한 불법집회가 오래 계속되었다면 그것을 사전에 막지 못한 경찰의 책임도 무시할 수 없다. 경찰이 교통을 차단해서 영업장으로의 접근이 원천적으로 봉쇄되었다면 그것이 과잉조치가 아닌가 하는 문제가 생긴다.

    한나라당이 정말로 불법집회 피해자를 돕기 위해 집단소송을 도입하고자 한다면, 미국처럼 민사소송법을 개정하는 방안을 택하기 바란다. 미국처럼 모든 분야에서 집단소송을 허용하란 말이다. 그러면 집회와 시위로 인해 피해를 입은 상인들 뿐 아니라, 식품 위생법규를 위반한 식품과 음식을 사먹은 소비자, 황당한 과대광고에 인해 속은 소비자, 사소한 부품에 하자가 있는 전자제품을 산 소비자, 잠시 정전(停電)이 되어서 불편을 겪은 사람들, 정치인들의 터무니없는 발언(‘강을 하수구 인 양 쓰는 나라는 우리나라 밖에 없다’는 등)에 기분이 상한 시민들도 집단소송을 제기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 민사소송법을 개정해서 모든 분야에 집단소송을 도입하자는 데는 민주당과 민노당도 적극 찬성할 것이니, 국회통과도 너무너무 쉬울 것이다. ‘불법집회 집단소송제’가 도입되면 외국 신문에 해외토픽으로 등장하겠지만, 민사소송법을 개정해서 집단소송을 전면적으로 도입하면 그럴 우려도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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