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공화당 대선 후보 존 매케인이 알래스카 주지사 세라 페일린을 부통령 후보로 지명한 후 공화당의 인기가 올라가고 있다. 존 매케인의 도박이라고 불리는 세라 페일린이 과연 민주당의 거친 공세를 물리치고 백인 여성, 중산층, 그리고 보수층 표를 결집시킬 수 있을지가 금년 대선의 최대의 관건이다.
공화당 전당대회가 미네소타 주(州) 세인 폴(St. Paul)에서 열리기 때문에 공화당의 차세대 리더로 손꼽히는 톰 폴렌티 미네소타 주지사가 부통령 후보로 지명될 것이라는 추측이 많았다. 민주당도 폴렌티 주지사가 공화당 부통령이 되는 것으로 예상하고 선거전략을 세웠다.
존 매케인의 러닝 메이트로는 조지프 리버만 상원의원, 톰 리지 전(前) 펜실베이니아 주지사가 거론되었지만, 내가 생각하기에도 매케인이 워낙 고령이라서 러닝 메이트는 경험은 부족하더라도 보다 젊어야 하지 않을까 했다. 1952년 대선 때 공화당의 대통령 후보로 추대된 아이젠하워가 젊은 상원의원 리차드 닉슨을 러닝 메이트로 지명한 것과 비슷한 이치에서이다. 게다가 리버만은 지난 2000년 대선에선 민주당 앨 고어 후보의 러닝 메이트였고, 톰 리지는 부시 행정부에서 국토안보부 장관을 지내서 ‘부시 3기’라는 말을 듣기 마련이었다. 그렇다면 1960년생인 톰 폴렌티가 적격(適格)이겠지만 진보성향인 미네소타 출신인 폴렌티는 보수진영으로부터 별로 환영받지 못하고 있었다.
금년 대선을 앞두고 미국의 보수진영과 보수논객들이 지지했던 후보는 매사추세츠 주지사를 지낸 미트 롬니였다. 어느 면으로 보나 보수주의자라고 할 수 없는 존 매케인에 불만인 보수논객들은 미트 롬니를 은근히 또는 공개적으로 지지했다. 월스트리트 저널의 페기 누넌은 매케인이 흘러간 인물이라고 했고, 앤 코울터는 매케인의 국내정책 노선을 여러 차례 비판했다. 보수 시각을 반영하는 책을 많이 내는 레그너리 출판사는 미트 롬니 지사를 치켜세우는 책을 일찌감치 내어놓았다. 미트 롬니는 공화당원으로서 민주당의 아성(牙城)인 매사추세츠 주지사를 지냈고, 주지사로서 공화당의 약점인 의료보험 문제를 해결한 바 있다. 부친도 미시건 주지사를 지낸 정치인 집안이지만, 재산이 너무 많은 것과 모르몬 교도라는 약점이 있었다. 레그너리 출판사가 펴낸 그에 관한 책은 이 점이 문제가 안 된다고 강조했다.
한때 유력 후보로 손꼽히던 루디 줄리아니 전(前) 뉴욕시장은 혼외정사(婚外情事)와 경솔한 이혼으로 대통령 후보가 되기에 문제가 있었다. 미트 롬니는 그런 스캔들이 없는 데다 낙태 반대론자였기에 러시 림보, 로라 잉그레이엄 등 보수논객들은 그를 지지했다. 그러나 롬니는 예상과 달리 예비선거에서 매케인에게 맥없이 지고 말았다.
공화당에서도 만일에 힐러리가 민주당 후보가 되면 여성을 부통령 후보로 지명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논의가 있었다. 하지만 공화당원에는 여성 부통령 후보감이 많지 않았다. 콘돌리사 라이스 국무장관은 일찌감치 선거출마를 배제했다. 부시 행정부의 외교 실책에 대해 일정한 책임이 있는 라이스를 부통령 후보로 내세우는 것은 자체가 현명치 못하다. 그 외에도 휼렛-패커드 사장을 지낸 칼리 피오리아가 거론되었으나 현실성은 희박했다.
이런 와중인 지난 5월18일, 뉴욕타임스는 힐러리 이후의 여성 대통령 유망주 12인을 선정해서 발표한 바 있다. 민주당원으론 캐슬린 시벨리우스 캔저스 주지사, 에미니 클러버샤 미네소타 출신 상원의원, 리사 매디건 일리노이 법무장관, 재넷 나포리타노 애리조나 주지사, 베벌리 퍼뷰 노스캐롤라이나 부지사, 그리고 힐러리의 딸 첼시를 들었고, 공화당원으론 세라 페일린 알래스카 주지사, 케이 허친슨 텍사스 출신 상원의원, 칼리 피오리나 전(前) 휼렛-패커드 사장, 메그 휘트먼 전(前) 이베이 사장, 콘돌리사 라이스 국무장관, 사라 스틸먼 미주리 재무장관을 들었다.
뉴욕타임스가 든 공화당원 여성 대통령 재목 중에서도 실제로는 페일린 주지사와 케이 허친슨 상원의원 정도가 현실성 있는 후보였지만 두 사람 모두 지명도가 떨어진다는 결점을 안고 있었다. 한편 존 매케인이 조지프 리버만을 러닝 메이트로 삼으려 한다는 소문이 있자, 보수진영에선 음성적으로 미트 롬니를 러닝 메이트로 밀었다.
예상을 뒤엎고 매케인은 44세의 알래스카 주지사 세라 페일린(Sarah Palin)을 러닝 메이트로 지명했다. 공식 발표가 있기 몇 시간 전에야 페일린이 지명될 것으로 알려 졌기 때문에 톰 플랜티 미네소타 주지사가 러닝 메이트가 될 것으로 예상하고 미리 기사를 써놓았던 기자들은 당황했다.
나는 우리 시간으로 밤 2시 30분까지 CNN에서 생방송되었던 러닝 메이트 발표를 지켜보았다. 나는 페일린이 대단한 연설가이고, 사람을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지명대회에서 공식연설도 마찬가지로 대단히 좋았다. 지명대회에서 루디 줄리아니의 연설과 미트 롬니의 연설도 역시 좋았다. 이라크 전쟁 실패와 재정적자로 수렁에 빠진 공화당이 비로소 활력을 되찾는 것 같았다.
존 매케인에게는 항상 ‘이단자(maverick)’이란 꼬리표가 따라 다닌다. 공화당원이면서도 경우에 따라선 당론과 배치된 견해를 거침없이 피력하기 때문이다. ‘이단자’의 영어 단어가 ‘maverick’인 것은 남북전쟁 후 벌어진 텍사스 독립전쟁 당시 영웅이던 새무엘 매버릭(Samuel Maverick)이 자기 농장의 가축에게 낙인(brand)을 찍는 것을 거부한데서 유래한 것이다. 그 후 어느 집단이나 성향으로 낙인찍히지 않고 독자적으로 활동하는 사람을 ‘매버릭’이라고 부르게 됐다. 하지만 새무엘 매버릭은 멕시코 군에 포로로 잡혀 있으면서도 목숨을 걸고 텍사스에 충성을 맹세한 애국자였다는 데서 보듯이, 경우에 따라선 ‘이단자’가 진정한 애국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매케인은 원래 애리조나 주(州)와 관계가 없다. 재혼한 부인 신디의 집안이 애리조나의 거부(巨富)라서 재혼 후에 애리조나에 정착했을 뿐이다. 매케인은 배리 골드워터 상원의원이 은퇴를 한 자리를 이어받아 상원의원이 됐다. 매케인이 골드워터의 자리를 계승했다는 사실은 묘한 기분을 불러일으킨다.
1960년에 배리 골드워터가 ‘보수주의자의 신념(The Conscience of a Conservative)’라는 작은 책자를 내고 ‘작은 정부’ ‘풀뿌리 민주주의’ ‘비대한 중앙정부로부터 독립’을 선언했을 때 코네티컷, 뉴욕, 펜실베이니아에 뿌리를 두고 있던 기성(旣成)계층 공화당원들은 “저런 서부 촌놈들”하면서 멸시의 눈길을 보냈다. 배리 골드워터를 지지했던 사람들은 ‘민주당의 2중대’가 되어 뉴딜에 찬성하고, 안보문제에 둔감하며, 또한 대중의 삶과 멀어져 버린 당시 공화당 지도부에 반기(叛旗)를 든 젊은이들이었다. 거기에 윌리엄 버클리 같은 당시로선 젊은 보수논객이 가담했다. 당시로선 배리 골드워터가 바로 ‘매버릭’이었다.
1964년 대선에서 골드워터는 비록 패배했지만 그의 패배는 16년 후에 로널드 레이건이 대통령에 당선되는 기초가 되었다. 배리 골드워터는 “워싱턴의 비대한 관료주의로부터 우리 가정, 우리 마을, 우리 주(州), 그리고 우리나라를 지키자”고 주장했다. 로널드 레이건은 골드워터를 위해 캘리포니아에서 지원유세를 했고, 그것을 기반으로 1966년 선거에서 레이건은 캘리포니아 주지사로 당선됐다.
미국에서 새로운 보수 혁명이 일어난 그 애리조나에서 매케인이라는 ‘매버릭’이 또 다시 대통령 후보가 되었으니, 이것이 무슨 ‘조화(造化)’가 아닌가 싶다. 그리고 매케인은 지금 미국의 프론티어인 알래스카의 젊고 매력적인 여성 주지사 세라 페일린을 러닝 메이트로 지명했다. 세라 페일린은 자동차 경주차를 몰고, 사냥을 즐기고, 허스키 개가 끄는 얼음 썰매를 타며, 미국 총기협회 종신회원이고, 낙태 반대론자이고, 성실한 기독교인이고, 다섯 아이를 키우는 극성스럽고 헌신적인 보통 어머니이다. 페일린이 주는 이미지는 ‘성실하고 가정적인 보통사람’이지만, 최근 타임지의 기사에 의하면 그녀는 대단한 정치적 감각과 성취욕구를 갖고 있다고 한다. 지명대회에서 행한 페일린의 연설은 바로 배리 골드워터 그 자체였다. 워싱턴 정치를 거침없이 몰아 붙여서 허리케인 때문에 부시 대통령이 참석하지 않은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골드워터는 젊은 시절에 망망한 대지가 끝없이 펼쳐지는 애리조나에서 말 타기를 즐겼고, 밤이 되면 담요를 땅바닥에 깔고 하늘의 별을 보면서 잠을 자기도 했다. 그러한 대자연 속에서 느끼는 경건함과 자유가 바로 당시로서는 새로운 ‘보수주의’의 뿌리인 것이다. 미국의 마지막 프론티어는 물론 알래스카이다. 알래스카의 대자연 속에서 자란 페일린의 연설이 골드워터를 연상케 하는 것은 무리가 아니다.
러셀 커크와 윌리엄 버클리가 골드워터를 지지했듯이, 빌 오라일리, 앤 코울터, 로라 잉그레이엄 등 보수논객들은 세라 페일린을 지지하고 있다. 젊은 여성 논객 미셀 말킨은 세라 페일린에 대해 거의 열광하고 있다. 보수층의 지지를 얻고자 한 매케인의 전략은 성공한 것이다.
나중에 알려진 바에 의하면, 월스트리트 저널의 젊은 여성 논설위원 킴벌리 스트라셀(Kimberley Strassel)이 세라 페일린을 러닝 메이트로 지명하라고 매케인에게 강력히 추천했다고 한다. 킴벌리 스트라셀은 1994년에 프린스턴 대학을 졸업하고 월스트리트 저널에 입사해서 1999년에 논설위원이 됐다. (학번으로 계산해 보면 스트라셀은 대략 36세가 된다. 나는 스트라셀이 미국의 차세대 대표 보수논객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근착 타임지는 세라 페일린은 커버스토리로 다루었다. 기사 외에도 공화당을 헐뜯는 칼럼을 쓰는 것을 업(業)으로 삼고 있는 조 클라인의 칼럼이 실려 있는데, 거기에는 매케인이 ‘권력을 국민에게(Power To the People)’이란 슬로건이 찍힌 티셔츠를 입은 카리카쳐를 실었다. ‘권력을 국민에게’가 바로 세라 페일린이 상징하는 것인데, 그것이 바로 골드워터와 레이건을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다. 매케인인 내세운 슬로건인 ‘국가가 먼저(Country First)’와 더불어 보수주의 원칙을 잘 보여준다.
작년 가을에 여성 보수논객 로라 잉그레이엄(Laura Ingraham)이 펴낸 책의 제목이 바로 ‘권력을 국민에게’였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느껴지며, 또한 금년 초에 데이비드 프럼(David Frum)이 펴낸 책의 제목 ‘컴백 : 다시 승리할 수 있는 보수주의(Comeback : Conservatism That Can Win Again)’도 역시 새삼스럽다. 이 같은 '지적 인풋(intellectual input)’이 있기 때문에 세라 페일린이 부통령 후보가 되는 것이다. 부도덕하고 부패하고 노쇠한 보수, 대중과 멀어진 보수, 지적 인풋이 없는 보수는 이미 ‘보수’가 아니고 ‘이익집단(crony)’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우리는 깨달아야 한다.
공화당 전당대회가 미네소타 주(州) 세인 폴(St. Paul)에서 열리기 때문에 공화당의 차세대 리더로 손꼽히는 톰 폴렌티 미네소타 주지사가 부통령 후보로 지명될 것이라는 추측이 많았다. 민주당도 폴렌티 주지사가 공화당 부통령이 되는 것으로 예상하고 선거전략을 세웠다.
존 매케인의 러닝 메이트로는 조지프 리버만 상원의원, 톰 리지 전(前) 펜실베이니아 주지사가 거론되었지만, 내가 생각하기에도 매케인이 워낙 고령이라서 러닝 메이트는 경험은 부족하더라도 보다 젊어야 하지 않을까 했다. 1952년 대선 때 공화당의 대통령 후보로 추대된 아이젠하워가 젊은 상원의원 리차드 닉슨을 러닝 메이트로 지명한 것과 비슷한 이치에서이다. 게다가 리버만은 지난 2000년 대선에선 민주당 앨 고어 후보의 러닝 메이트였고, 톰 리지는 부시 행정부에서 국토안보부 장관을 지내서 ‘부시 3기’라는 말을 듣기 마련이었다. 그렇다면 1960년생인 톰 폴렌티가 적격(適格)이겠지만 진보성향인 미네소타 출신인 폴렌티는 보수진영으로부터 별로 환영받지 못하고 있었다.
금년 대선을 앞두고 미국의 보수진영과 보수논객들이 지지했던 후보는 매사추세츠 주지사를 지낸 미트 롬니였다. 어느 면으로 보나 보수주의자라고 할 수 없는 존 매케인에 불만인 보수논객들은 미트 롬니를 은근히 또는 공개적으로 지지했다. 월스트리트 저널의 페기 누넌은 매케인이 흘러간 인물이라고 했고, 앤 코울터는 매케인의 국내정책 노선을 여러 차례 비판했다. 보수 시각을 반영하는 책을 많이 내는 레그너리 출판사는 미트 롬니 지사를 치켜세우는 책을 일찌감치 내어놓았다. 미트 롬니는 공화당원으로서 민주당의 아성(牙城)인 매사추세츠 주지사를 지냈고, 주지사로서 공화당의 약점인 의료보험 문제를 해결한 바 있다. 부친도 미시건 주지사를 지낸 정치인 집안이지만, 재산이 너무 많은 것과 모르몬 교도라는 약점이 있었다. 레그너리 출판사가 펴낸 그에 관한 책은 이 점이 문제가 안 된다고 강조했다.
한때 유력 후보로 손꼽히던 루디 줄리아니 전(前) 뉴욕시장은 혼외정사(婚外情事)와 경솔한 이혼으로 대통령 후보가 되기에 문제가 있었다. 미트 롬니는 그런 스캔들이 없는 데다 낙태 반대론자였기에 러시 림보, 로라 잉그레이엄 등 보수논객들은 그를 지지했다. 그러나 롬니는 예상과 달리 예비선거에서 매케인에게 맥없이 지고 말았다.
공화당에서도 만일에 힐러리가 민주당 후보가 되면 여성을 부통령 후보로 지명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논의가 있었다. 하지만 공화당원에는 여성 부통령 후보감이 많지 않았다. 콘돌리사 라이스 국무장관은 일찌감치 선거출마를 배제했다. 부시 행정부의 외교 실책에 대해 일정한 책임이 있는 라이스를 부통령 후보로 내세우는 것은 자체가 현명치 못하다. 그 외에도 휼렛-패커드 사장을 지낸 칼리 피오리아가 거론되었으나 현실성은 희박했다.
이런 와중인 지난 5월18일, 뉴욕타임스는 힐러리 이후의 여성 대통령 유망주 12인을 선정해서 발표한 바 있다. 민주당원으론 캐슬린 시벨리우스 캔저스 주지사, 에미니 클러버샤 미네소타 출신 상원의원, 리사 매디건 일리노이 법무장관, 재넷 나포리타노 애리조나 주지사, 베벌리 퍼뷰 노스캐롤라이나 부지사, 그리고 힐러리의 딸 첼시를 들었고, 공화당원으론 세라 페일린 알래스카 주지사, 케이 허친슨 텍사스 출신 상원의원, 칼리 피오리나 전(前) 휼렛-패커드 사장, 메그 휘트먼 전(前) 이베이 사장, 콘돌리사 라이스 국무장관, 사라 스틸먼 미주리 재무장관을 들었다.
뉴욕타임스가 든 공화당원 여성 대통령 재목 중에서도 실제로는 페일린 주지사와 케이 허친슨 상원의원 정도가 현실성 있는 후보였지만 두 사람 모두 지명도가 떨어진다는 결점을 안고 있었다. 한편 존 매케인이 조지프 리버만을 러닝 메이트로 삼으려 한다는 소문이 있자, 보수진영에선 음성적으로 미트 롬니를 러닝 메이트로 밀었다.
예상을 뒤엎고 매케인은 44세의 알래스카 주지사 세라 페일린(Sarah Palin)을 러닝 메이트로 지명했다. 공식 발표가 있기 몇 시간 전에야 페일린이 지명될 것으로 알려 졌기 때문에 톰 플랜티 미네소타 주지사가 러닝 메이트가 될 것으로 예상하고 미리 기사를 써놓았던 기자들은 당황했다.
나는 우리 시간으로 밤 2시 30분까지 CNN에서 생방송되었던 러닝 메이트 발표를 지켜보았다. 나는 페일린이 대단한 연설가이고, 사람을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지명대회에서 공식연설도 마찬가지로 대단히 좋았다. 지명대회에서 루디 줄리아니의 연설과 미트 롬니의 연설도 역시 좋았다. 이라크 전쟁 실패와 재정적자로 수렁에 빠진 공화당이 비로소 활력을 되찾는 것 같았다.
존 매케인에게는 항상 ‘이단자(maverick)’이란 꼬리표가 따라 다닌다. 공화당원이면서도 경우에 따라선 당론과 배치된 견해를 거침없이 피력하기 때문이다. ‘이단자’의 영어 단어가 ‘maverick’인 것은 남북전쟁 후 벌어진 텍사스 독립전쟁 당시 영웅이던 새무엘 매버릭(Samuel Maverick)이 자기 농장의 가축에게 낙인(brand)을 찍는 것을 거부한데서 유래한 것이다. 그 후 어느 집단이나 성향으로 낙인찍히지 않고 독자적으로 활동하는 사람을 ‘매버릭’이라고 부르게 됐다. 하지만 새무엘 매버릭은 멕시코 군에 포로로 잡혀 있으면서도 목숨을 걸고 텍사스에 충성을 맹세한 애국자였다는 데서 보듯이, 경우에 따라선 ‘이단자’가 진정한 애국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매케인은 원래 애리조나 주(州)와 관계가 없다. 재혼한 부인 신디의 집안이 애리조나의 거부(巨富)라서 재혼 후에 애리조나에 정착했을 뿐이다. 매케인은 배리 골드워터 상원의원이 은퇴를 한 자리를 이어받아 상원의원이 됐다. 매케인이 골드워터의 자리를 계승했다는 사실은 묘한 기분을 불러일으킨다.
1960년에 배리 골드워터가 ‘보수주의자의 신념(The Conscience of a Conservative)’라는 작은 책자를 내고 ‘작은 정부’ ‘풀뿌리 민주주의’ ‘비대한 중앙정부로부터 독립’을 선언했을 때 코네티컷, 뉴욕, 펜실베이니아에 뿌리를 두고 있던 기성(旣成)계층 공화당원들은 “저런 서부 촌놈들”하면서 멸시의 눈길을 보냈다. 배리 골드워터를 지지했던 사람들은 ‘민주당의 2중대’가 되어 뉴딜에 찬성하고, 안보문제에 둔감하며, 또한 대중의 삶과 멀어져 버린 당시 공화당 지도부에 반기(叛旗)를 든 젊은이들이었다. 거기에 윌리엄 버클리 같은 당시로선 젊은 보수논객이 가담했다. 당시로선 배리 골드워터가 바로 ‘매버릭’이었다.
1964년 대선에서 골드워터는 비록 패배했지만 그의 패배는 16년 후에 로널드 레이건이 대통령에 당선되는 기초가 되었다. 배리 골드워터는 “워싱턴의 비대한 관료주의로부터 우리 가정, 우리 마을, 우리 주(州), 그리고 우리나라를 지키자”고 주장했다. 로널드 레이건은 골드워터를 위해 캘리포니아에서 지원유세를 했고, 그것을 기반으로 1966년 선거에서 레이건은 캘리포니아 주지사로 당선됐다.
미국에서 새로운 보수 혁명이 일어난 그 애리조나에서 매케인이라는 ‘매버릭’이 또 다시 대통령 후보가 되었으니, 이것이 무슨 ‘조화(造化)’가 아닌가 싶다. 그리고 매케인은 지금 미국의 프론티어인 알래스카의 젊고 매력적인 여성 주지사 세라 페일린을 러닝 메이트로 지명했다. 세라 페일린은 자동차 경주차를 몰고, 사냥을 즐기고, 허스키 개가 끄는 얼음 썰매를 타며, 미국 총기협회 종신회원이고, 낙태 반대론자이고, 성실한 기독교인이고, 다섯 아이를 키우는 극성스럽고 헌신적인 보통 어머니이다. 페일린이 주는 이미지는 ‘성실하고 가정적인 보통사람’이지만, 최근 타임지의 기사에 의하면 그녀는 대단한 정치적 감각과 성취욕구를 갖고 있다고 한다. 지명대회에서 행한 페일린의 연설은 바로 배리 골드워터 그 자체였다. 워싱턴 정치를 거침없이 몰아 붙여서 허리케인 때문에 부시 대통령이 참석하지 않은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골드워터는 젊은 시절에 망망한 대지가 끝없이 펼쳐지는 애리조나에서 말 타기를 즐겼고, 밤이 되면 담요를 땅바닥에 깔고 하늘의 별을 보면서 잠을 자기도 했다. 그러한 대자연 속에서 느끼는 경건함과 자유가 바로 당시로서는 새로운 ‘보수주의’의 뿌리인 것이다. 미국의 마지막 프론티어는 물론 알래스카이다. 알래스카의 대자연 속에서 자란 페일린의 연설이 골드워터를 연상케 하는 것은 무리가 아니다.
러셀 커크와 윌리엄 버클리가 골드워터를 지지했듯이, 빌 오라일리, 앤 코울터, 로라 잉그레이엄 등 보수논객들은 세라 페일린을 지지하고 있다. 젊은 여성 논객 미셀 말킨은 세라 페일린에 대해 거의 열광하고 있다. 보수층의 지지를 얻고자 한 매케인의 전략은 성공한 것이다.
나중에 알려진 바에 의하면, 월스트리트 저널의 젊은 여성 논설위원 킴벌리 스트라셀(Kimberley Strassel)이 세라 페일린을 러닝 메이트로 지명하라고 매케인에게 강력히 추천했다고 한다. 킴벌리 스트라셀은 1994년에 프린스턴 대학을 졸업하고 월스트리트 저널에 입사해서 1999년에 논설위원이 됐다. (학번으로 계산해 보면 스트라셀은 대략 36세가 된다. 나는 스트라셀이 미국의 차세대 대표 보수논객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근착 타임지는 세라 페일린은 커버스토리로 다루었다. 기사 외에도 공화당을 헐뜯는 칼럼을 쓰는 것을 업(業)으로 삼고 있는 조 클라인의 칼럼이 실려 있는데, 거기에는 매케인이 ‘권력을 국민에게(Power To the People)’이란 슬로건이 찍힌 티셔츠를 입은 카리카쳐를 실었다. ‘권력을 국민에게’가 바로 세라 페일린이 상징하는 것인데, 그것이 바로 골드워터와 레이건을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다. 매케인인 내세운 슬로건인 ‘국가가 먼저(Country First)’와 더불어 보수주의 원칙을 잘 보여준다.
작년 가을에 여성 보수논객 로라 잉그레이엄(Laura Ingraham)이 펴낸 책의 제목이 바로 ‘권력을 국민에게’였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느껴지며, 또한 금년 초에 데이비드 프럼(David Frum)이 펴낸 책의 제목 ‘컴백 : 다시 승리할 수 있는 보수주의(Comeback : Conservatism That Can Win Again)’도 역시 새삼스럽다. 이 같은 '지적 인풋(intellectual input)’이 있기 때문에 세라 페일린이 부통령 후보가 되는 것이다. 부도덕하고 부패하고 노쇠한 보수, 대중과 멀어진 보수, 지적 인풋이 없는 보수는 이미 ‘보수’가 아니고 ‘이익집단(crony)’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우리는 깨달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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