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이야기지만 스탠포드 대학에, 일본이 세계 경제의 큰 별로 등장하기까지 자민당의 역할론을 주장하는 오끼모토라는 유명한 일본인 교수가 있었다.
그의 분석에 따르면 자민당은 선진국 중 유일하게 정권교체 없는 일관성으로 오늘의 일본을 만든 ‘일등공신’이다.
또한 후쿠다, 다나까, 나카소네, 하시마도, 다케시다 등 당내에서 복잡하게 얽혀있는 각 계파 영향력마저도 찻잔 속 태풍으로 잠재울 수 있는 힘 역시 자민당의 저력이 발휘한 결과라며 본국(일본)에 대한 자부심을 가감없이 드러냈다.
당시 그 교수의 말은 정치를 지향하던 내게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나의 연구대상 리스트에 추가됐다.
그 후 동경대 객원연구원으로 일본에 머물러 있으면서 일본의 정당이나 의사당, 일본 정객들을 찾아다니며 일련의 노력들을 기울였던 것도 그에 대한 ‘깨달음(?)’을 찾는 자구책이었다.
그런 차원에서 자민당은 내게 풀리지 않은 난공불락의 존재로 자리잡고 있던 터였다.
그런데 드디어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자민당의 아성이 무너지고 54년만의 정권교체가 이뤄진 것이다.
전 세계 도하 언론은 하또야마 유키오 민주당 대표의 활짝 웃는 모습과 아소다로 총리의 일그러진 모습을 극단적으로 대비시켜가며 8.30 총선으로 정권을 교체한 일본의 표정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민주당 308석, 자민당 119석, 공명당 21석, 공산당 9석, 사민당 7석, 모두의 당 5석, 국민신당 3석.
민주당이 압승한 8.30 총선은 가히 혁명이라 부를 만하다.
종전 이후 줄곧 일본을 지배해 온 기득권 정치집단이 유권자의 힘에 밀려난 사건이니 왜 아니겠는가.
무능한 자민당에 염증을 느낀 민심은 16선의 가이후 도시키 전 총리에게 정치인생 49년 만에 첫 고배를 안긴 것을 비롯. 자민당내 최대 파벌의 수장인 마치무라 노부타카 전 관방장관, 야마자키 다쿠 전 부총재, 아소 총리의 친구인 나카가와 쇼이치 전 재무상, 9선의 요사노 가오루 재무상 전직 총리 등 거물급 여권 인사들을 ‘팽’시키며 변화를 갈망하는 속내를 드러낸 것이다.
전현직 각료와 당3역 경험자 가운데 지역구에서 민주당이 표적공천해서 내보낸 20~40대 여성 등 정치신인들에게 패배한 정치인은 줄잡아 44명에 이른 것으로 나타났다.
90년대 초반 무렵 자민당의 한차례 위기가 있었다.
그 위기를 막아낸 건 고이즈미다.
개혁을 표방하며 구원투수로 등장한 고이즈미는 높은 대중의 지지를 등에 업고 자민당에게 무소불위의 권력을 환원시켜주는 효자노릇을 톡톡히 한 셈이다.
그러나 뒷심 없는 고이즈미의 개혁 정책은 결과론적으로 자민당의 몰락을 독촉한 결과를 초래했다. 자민당으로 하여금 권력의 달콤함에 안주하게 했고 무능과 부패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게 만든 독소로 작용한 것이다.
고이즈미의 약발이 자민당의 발목을 잡는 부메랑이 되어버린 일본의 정치현실에서 국적을 초월한 권력 무상을 보게 된다.
일본의 정권교체는 인간의 손에 쥐어진 이상 바뀌게 돼 있고 또 그러면서 끊임없이 혁신의 대상이 되거나 환골탈태 절차를 통해 거듭나는 수순을 밟아야 하는 존재일 수 밖에 없는 권력의 속성과 한계를 절감하게 해줬다.
이는 권력의 속성이 그동안 배우고 감지한 틀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준 것이고 나의 정치적 신념의 당위성을 입증한 결과이기도 하다.
관전하는 입장에서 일본의 정권교체를 우리 정치의 반면교사로 삼을 수 있는 호재로 생각하자고 한다면 너무 몰인정한 처사일까.
허욕이 정치현실을 지배하기로는 우리 역시 일본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한정된 권력에 앉기만 하면 끝을 헤아리지 못하게 되는 건 너나 없는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훌륭한 지도자의 최우선 조건은 스스로의 한계를 인식할 수 있는 힘이 아닐까 싶다.
유한한 권력으로 할 수 있는 건 큰 틀에서의 정치개혁 기조 정도에 불과하다는 현실을 자각해서 크게 욕심 부리지 않는 절제의 미덕 말이다.
나도 한 때 알량한 권력이긴 하지만 권력의 편린을 맛 본 적이 있는데 주위의 용비어천가만으로도 권력이 천대만대 갈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지기란 순식간이었다.
더 가관인 것은 용비어천가 부르는 사람들이 더 없이 고와보이고 측근으로 여겨진다는 사실이다.
이마저도 그 자리를 떠난 이후 깨닫게 된 일이다.
돌이켜보면 얼굴 붉어질 일이지만 권력이 커질수록 가장 경계해야 할 대목이라는 생각에 고해성사하듯 털어놓았다.
초상집이 된 자민당.
지금은 어떨지 모르지만 이번 참패가 그들에게 좋은 약이 될 수 있다면 이번의 실패를 아픔으로만 받아들일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패전을 기화로 자민당이 환골탈태할 수 있다면 역전의 기회는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민심을 잡을 수 있는 전화위복의 기회가 될 수 있도록 전열을 가다듬어야 한다.
남의 나라 일이라 조심스럽지만 민주당이 장기 집권할 수 있는 기회에 앞서 자민당에게 한 번 더 기회가 주어진다고 전망되기 때문이다.
또 변화를 싫어하는 일본으로서도 입에 비록 쓴 약이지만 치유의 기회를 얻은 셈이다. 유권자의 반란(?)을 통해 하늘이 일본에게 재기할 기회를 열어 줬다고나 할까.
이 같은 공식은 우리나라의 정권 교체 과정에서도 이미 학습한 바 있다.
물론 민주당이 어떤 식으로 국민 기대에 부합하는 변화를 주도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이 역시 생각처럼 쉽지 않다는 걸 지난 역사가 말해주고 있기에 하는 말이다.
자민당이 주는 교훈은 특정 국가, 특정 정당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 부터 나온다는 말이 헛구호가 아니라는 사실을 새삼 환기 시켜줬다.
이제는 더 이상 국민 위에 군림하려는 정치는 환영받지 못한다.
국민이 특정 집단의 기득권 유지를 위한 소도구가 되기를 거부하고 나선 세상이 됐다.
바야흐로 국민을 섬기며 국민과 더불어 함께 숨쉬는 정치만이 뿌리를 내릴 수 있게 된 현실을 인식하자.
위민정치를 지향했던 선인들의 지혜를 다시한번 돌아볼 때이다.
9월의 화창한 첫 날, 일본의 변혁을 보면서 우리 정치에도 희망의 화두가 건져 올려지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적어보았다.
그의 분석에 따르면 자민당은 선진국 중 유일하게 정권교체 없는 일관성으로 오늘의 일본을 만든 ‘일등공신’이다.
또한 후쿠다, 다나까, 나카소네, 하시마도, 다케시다 등 당내에서 복잡하게 얽혀있는 각 계파 영향력마저도 찻잔 속 태풍으로 잠재울 수 있는 힘 역시 자민당의 저력이 발휘한 결과라며 본국(일본)에 대한 자부심을 가감없이 드러냈다.
당시 그 교수의 말은 정치를 지향하던 내게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나의 연구대상 리스트에 추가됐다.
그 후 동경대 객원연구원으로 일본에 머물러 있으면서 일본의 정당이나 의사당, 일본 정객들을 찾아다니며 일련의 노력들을 기울였던 것도 그에 대한 ‘깨달음(?)’을 찾는 자구책이었다.
그런 차원에서 자민당은 내게 풀리지 않은 난공불락의 존재로 자리잡고 있던 터였다.
그런데 드디어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자민당의 아성이 무너지고 54년만의 정권교체가 이뤄진 것이다.
전 세계 도하 언론은 하또야마 유키오 민주당 대표의 활짝 웃는 모습과 아소다로 총리의 일그러진 모습을 극단적으로 대비시켜가며 8.30 총선으로 정권을 교체한 일본의 표정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민주당 308석, 자민당 119석, 공명당 21석, 공산당 9석, 사민당 7석, 모두의 당 5석, 국민신당 3석.
민주당이 압승한 8.30 총선은 가히 혁명이라 부를 만하다.
종전 이후 줄곧 일본을 지배해 온 기득권 정치집단이 유권자의 힘에 밀려난 사건이니 왜 아니겠는가.
무능한 자민당에 염증을 느낀 민심은 16선의 가이후 도시키 전 총리에게 정치인생 49년 만에 첫 고배를 안긴 것을 비롯. 자민당내 최대 파벌의 수장인 마치무라 노부타카 전 관방장관, 야마자키 다쿠 전 부총재, 아소 총리의 친구인 나카가와 쇼이치 전 재무상, 9선의 요사노 가오루 재무상 전직 총리 등 거물급 여권 인사들을 ‘팽’시키며 변화를 갈망하는 속내를 드러낸 것이다.
전현직 각료와 당3역 경험자 가운데 지역구에서 민주당이 표적공천해서 내보낸 20~40대 여성 등 정치신인들에게 패배한 정치인은 줄잡아 44명에 이른 것으로 나타났다.
90년대 초반 무렵 자민당의 한차례 위기가 있었다.
그 위기를 막아낸 건 고이즈미다.
개혁을 표방하며 구원투수로 등장한 고이즈미는 높은 대중의 지지를 등에 업고 자민당에게 무소불위의 권력을 환원시켜주는 효자노릇을 톡톡히 한 셈이다.
그러나 뒷심 없는 고이즈미의 개혁 정책은 결과론적으로 자민당의 몰락을 독촉한 결과를 초래했다. 자민당으로 하여금 권력의 달콤함에 안주하게 했고 무능과 부패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게 만든 독소로 작용한 것이다.
고이즈미의 약발이 자민당의 발목을 잡는 부메랑이 되어버린 일본의 정치현실에서 국적을 초월한 권력 무상을 보게 된다.
일본의 정권교체는 인간의 손에 쥐어진 이상 바뀌게 돼 있고 또 그러면서 끊임없이 혁신의 대상이 되거나 환골탈태 절차를 통해 거듭나는 수순을 밟아야 하는 존재일 수 밖에 없는 권력의 속성과 한계를 절감하게 해줬다.
이는 권력의 속성이 그동안 배우고 감지한 틀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준 것이고 나의 정치적 신념의 당위성을 입증한 결과이기도 하다.
관전하는 입장에서 일본의 정권교체를 우리 정치의 반면교사로 삼을 수 있는 호재로 생각하자고 한다면 너무 몰인정한 처사일까.
허욕이 정치현실을 지배하기로는 우리 역시 일본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한정된 권력에 앉기만 하면 끝을 헤아리지 못하게 되는 건 너나 없는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훌륭한 지도자의 최우선 조건은 스스로의 한계를 인식할 수 있는 힘이 아닐까 싶다.
유한한 권력으로 할 수 있는 건 큰 틀에서의 정치개혁 기조 정도에 불과하다는 현실을 자각해서 크게 욕심 부리지 않는 절제의 미덕 말이다.
나도 한 때 알량한 권력이긴 하지만 권력의 편린을 맛 본 적이 있는데 주위의 용비어천가만으로도 권력이 천대만대 갈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지기란 순식간이었다.
더 가관인 것은 용비어천가 부르는 사람들이 더 없이 고와보이고 측근으로 여겨진다는 사실이다.
이마저도 그 자리를 떠난 이후 깨닫게 된 일이다.
돌이켜보면 얼굴 붉어질 일이지만 권력이 커질수록 가장 경계해야 할 대목이라는 생각에 고해성사하듯 털어놓았다.
초상집이 된 자민당.
지금은 어떨지 모르지만 이번 참패가 그들에게 좋은 약이 될 수 있다면 이번의 실패를 아픔으로만 받아들일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패전을 기화로 자민당이 환골탈태할 수 있다면 역전의 기회는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민심을 잡을 수 있는 전화위복의 기회가 될 수 있도록 전열을 가다듬어야 한다.
남의 나라 일이라 조심스럽지만 민주당이 장기 집권할 수 있는 기회에 앞서 자민당에게 한 번 더 기회가 주어진다고 전망되기 때문이다.
또 변화를 싫어하는 일본으로서도 입에 비록 쓴 약이지만 치유의 기회를 얻은 셈이다. 유권자의 반란(?)을 통해 하늘이 일본에게 재기할 기회를 열어 줬다고나 할까.
이 같은 공식은 우리나라의 정권 교체 과정에서도 이미 학습한 바 있다.
물론 민주당이 어떤 식으로 국민 기대에 부합하는 변화를 주도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이 역시 생각처럼 쉽지 않다는 걸 지난 역사가 말해주고 있기에 하는 말이다.
자민당이 주는 교훈은 특정 국가, 특정 정당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 부터 나온다는 말이 헛구호가 아니라는 사실을 새삼 환기 시켜줬다.
이제는 더 이상 국민 위에 군림하려는 정치는 환영받지 못한다.
국민이 특정 집단의 기득권 유지를 위한 소도구가 되기를 거부하고 나선 세상이 됐다.
바야흐로 국민을 섬기며 국민과 더불어 함께 숨쉬는 정치만이 뿌리를 내릴 수 있게 된 현실을 인식하자.
위민정치를 지향했던 선인들의 지혜를 다시한번 돌아볼 때이다.
9월의 화창한 첫 날, 일본의 변혁을 보면서 우리 정치에도 희망의 화두가 건져 올려지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적어보았다.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시민일보.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