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든 탑이 허망하게 무너지는 이 땅의 현실
‘공든탑이 무너지랴’
많은 사람이 입에 올리는 속담이다. 정말 공든탑은 무너지지 않는가.
무너져서는 안 되고 무너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공든 탑도 무너진다.
눈앞에서 무너진다.
어처구니없게 무너진다.
무너지는 공든 탑은 이 나라의 깨어 있는 모든 국민이 정성을 모아 세운 비원의 탑이다. 참으로 허망하다.
탑을 세우는 데 맨 앞장을 서서 공을 들인 사람이 있다. 박원순이다. 신문 줄이나 읽는 사람치고 박원순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사람들은 그를 시민운동의 대부라고도 한다.
참여연대를 알 것이다. 이 나라 시민운동의 중심이었다. 온갖 부조리가 판을 치는 세상에서 참여연대는 힘들게 시민운동을 전개했다. 참여연대를 만드는 데 중심이었고 이끌어 온 박원순. 사람들은 그를 사심 없는 시민운동가로 알고 있고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박원순은 참여연대를 궤도에 올려놓고 다음에는 ‘아름다운 재단’ ‘아름다운 가게’ 그리고 ‘희망제작소’로 이어지는 시민운동을 전개하며 희망의 씨를 뿌렸다.
그런 박원순이 고소를 당했다. 이유는 명예훼손이다. 누구의 명예를 훼손했기에 고소를 당했는가. 겁난다. 국정원이다. 대한민국이다. 박원순이 그들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것이다.
박원순은 지난 6월 ‘국정원이 민간인을 사찰한다’면서 대통령과 국정원장을 향해 레임덕과 퇴임 후 구속 가능성을 언급하고 강력한 경고 메시지를 전달했다.
국정원은 박원순에게 “허위사실을 말해 국정원과 국가의 명예를 훼손했다”면서 2억 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낸 것이다.
박원순을 향한 국정원의 소송은 십여 년 동안 쉼 없이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하여 온몸을 던져 온 박원순에게는 잔인한 돌팔매였다. 상을 주고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2억 원을 배상하라는 소송을 내다니. 아아 기 막혀.
“소심한 저는 소송 이야기를 들으면서 스스로 위축되기도 했다.”
“갑자기 노무현 대통령 생각도 났다.”
“영광이다, 이 시대의 고난 받는 사람들과 함께 해서 너무 행복하다.”
행복하다는 그가 눈물을 흘렸다. 행복하다는 박원순이 눈물을 흘렸다. 한 점 부끄럼 없이 국민을 위해 헌신한 그에게 국가가 준 선물은 고통이었다. 눈물을 흘리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얼마나 많은 국민들이 함께 눈물을 흘렸을까.
“국정원이 박원순을 고소한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
법률해석을 하는 법제처의 이석연이 한 말이다. 적절하지 못하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잘못했다는 것이다. 잘못했으면 반성해야 되고 고쳐야 한다.
국민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서명운동이 시작됐다.
원고를 대한민국으로 기재한 국정원의 소장도 공개되었다.
“원고 ‘대한민국’에서 내 이름을 빼달라”
“이름을 빼지 않으면 명의도용으로 고발하겠다”
“대한민국 구성원인 나는 이런 소송에 동의한 적이 없다”
대한변협도 일어났다.
“국민이 국가기관의 잘못을 비판할 헌법상 자유가 보장돼 있는 민주사회에서 국가 권력기관이 개인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수단으로 악용될 우려가 크다”
“국정원이 개인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것은 적절하지 못하므로 재고하기 바란다”
박원순이 시도하고 이룩한 여러 시민운동과 ‘나눔의 철학’은 진흙탕 같은 우리 사회를 사람의 냄새가 풍기는 따스한 공동채로 만드는데 큰 기여를 했다. 아무리 머리를 짜내며 생각해도 박원순이 누구의 명예를 훼손시켰는지 알 도리가 없다.
오히려 박원순을 고소함으로써 국정원이 그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생각이다. 이 땅의 시민단체들이 모두 들고 일어났다. 명예훼손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진정 명예훼손은 누가 당했는가.
대한민국의 명예를 훼손한 사람은 명백하게 실정법을 위반하고도 말 한마디로 어물쩍 넘어가려는 대법관, 법무부 장관 검찰총장 같은 사람이다.
비리백화점이라는 낯 뜨거운 조롱을 받고 있는 총리 후보 같은 사람들이다.
병역 면제 의혹, 위장전입, 소득세 탈루, 논문 중복 게재, 금품수수 의혹까지 받았는데 이런 사람이 총리가 된다면 대한민국의 명예는 어떻게 될 것인가.
또한 박원순에 대한 국정원의 명예훼손 고소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하는 언론들은 어떤가. 의로운 사람이 핍박받는 것을 보고도 침묵하는 대한민국 언론이 바로 대한민국의 명예를 땅에 떨어트리는 주인공이다.
박원순은 왜 고소를 당해야 했는가. 왜 국민과 시민단체의 반발과 저항을 분명히 알면서도 이런 철부지 같은 몰상식한 행동을 한 것일까.
박원순이 인물이 없어 고통받는 야권의 새로운 지도자가 될 수 있다고 믿고 있으며 이를 차단하기 위해서인가.
정부 비판자를 겁주기 위해서며 시민단체의 후원자들과 기업에게 경고를 하는 것인가.
이미 시민단체에 후원금이나 기부금을 보내던 기업들이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후원을 끊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짓이란 말인가. 명색이 민주주의 국가라는 대한민국에서 어찌 이런 짓을 할 수가 있단 말인가.
정상적인 눈으로는 이해가 안 되는 비정상이다. 그럼 미친 눈으로 봐야 정상적으로 보인단 말인가. 민주국가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현실에서 당당하게 일어난다.
퇴임한 전직 대통령을 끊임없이 핍박하여 강요된 자살로 이르게 했다는 비정상적 권력이다. 그래서 5백만의 추모객이 눈물을 흘리게 한 권력이다.
칼을 의사가 잡으면 목숨을 살리고 강도가 잡으면 흉기가 된다. 권력은 어떤가. 권력을 마구 휘두르면 국민은 괴롭고 잘 쓰면 국민이 행복하다.
기자회견을 하면서 노무현 대통령이 생각난다고 한 박원순의 말이 그냥 들리지 않는다.
무슨 의미인가. 모두들 알 것이다. 의인이 핍박받는 시대가 다시 올 줄 누가 알았겠는가.
일관되게 시민운동 한 길에만 전념해온 박원순이다.
누구에게나 한결같은 겸손, 신뢰 그 자체인 행동, 그의 진정성을 박원순을 만난 사람은 잊지 못한다.
그래서 시민운동의 선구자가 되고 존경받는 인물이 된 것이다.
그게 싫은가. 외눈박이 세상에서 두 눈 가진 게 죄인가.
박원순이 한 일을 일일이 기록하자면 끝이 없고 한이 없지만 한 가지만 이야기하자. 우리 국민은 박원순에게 큰 빚을 지고 있다는 것이다.
많은 시민운동가들이 정치에 발을 담구어 망가지고 비판을 받았다. 거의 유일하게 순수한 시민운동의 외길을 걸어온 사람이 박원순이다.
이명박 정부를 위해서나 국민을 위해서나 어떤 이익도 없는 이런 짓을 하는 것이 한심하다. 이 정부에는 그렇게도 상식적 사고를 하는 사람이 없단 말인가.
국민은 박원순을 보면서 정연주를 생각한다. 미네르바를 생각한다. 학교에서 쫓겨난 신태섭 교수를 생각한다.
우리는 박원순의 모습에서 순교자의 모습을 발견한다. 아무것도 바라는 것 없이 오로지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온몸을 불사른 순교자의 모습, 그의 눈물을 보며 함께 눈물을 흘린 국민이 얼마나 많을 것인가.
만약 우리가 그의 지고지순한 영혼을 감싸고 그를 망가트리려는 적들과 싸우지 않는다면 박원순도 쓰러질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문득 생긴다. 절대로 그런 일이 생겨서는 안 된다.
우리 국민이 온몸으로 박원순을 지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국정원의 ‘박원순 소장’에 기록되었듯이 박원순을 고소한 ‘대한민국’ 국민이 되는 것이다.
어떠한 권력도 불의한 짓의 결과가 어떻게 나타나는지 국민이 보여줘야 하는 것이다.
‘공든 탑이 무너지랴’는 속담이 있다. 우리는 지금 공든탑이 무너져 가는 현장에 있다. 그러나 공든탑은 절대로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을 국민이 보여줘야 한다.
박원순의 눈물은 우리 국민 모두의 눈물이다. 우리 모두 눈물을 거두고 정의의 길을 가야 한다.
나는 오늘 노무현 대통령 생신을 기리기 위해 봉하로 간다. 그분의 묘소에서 그분에게 온 국민과 함께 박원순을 지켜 달라고 기원할 것이다.
‘공든탑이 무너지랴’
많은 사람이 입에 올리는 속담이다. 정말 공든탑은 무너지지 않는가.
무너져서는 안 되고 무너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공든 탑도 무너진다.
눈앞에서 무너진다.
어처구니없게 무너진다.
무너지는 공든 탑은 이 나라의 깨어 있는 모든 국민이 정성을 모아 세운 비원의 탑이다. 참으로 허망하다.
탑을 세우는 데 맨 앞장을 서서 공을 들인 사람이 있다. 박원순이다. 신문 줄이나 읽는 사람치고 박원순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사람들은 그를 시민운동의 대부라고도 한다.
참여연대를 알 것이다. 이 나라 시민운동의 중심이었다. 온갖 부조리가 판을 치는 세상에서 참여연대는 힘들게 시민운동을 전개했다. 참여연대를 만드는 데 중심이었고 이끌어 온 박원순. 사람들은 그를 사심 없는 시민운동가로 알고 있고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박원순은 참여연대를 궤도에 올려놓고 다음에는 ‘아름다운 재단’ ‘아름다운 가게’ 그리고 ‘희망제작소’로 이어지는 시민운동을 전개하며 희망의 씨를 뿌렸다.
그런 박원순이 고소를 당했다. 이유는 명예훼손이다. 누구의 명예를 훼손했기에 고소를 당했는가. 겁난다. 국정원이다. 대한민국이다. 박원순이 그들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것이다.
박원순은 지난 6월 ‘국정원이 민간인을 사찰한다’면서 대통령과 국정원장을 향해 레임덕과 퇴임 후 구속 가능성을 언급하고 강력한 경고 메시지를 전달했다.
국정원은 박원순에게 “허위사실을 말해 국정원과 국가의 명예를 훼손했다”면서 2억 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낸 것이다.
박원순을 향한 국정원의 소송은 십여 년 동안 쉼 없이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하여 온몸을 던져 온 박원순에게는 잔인한 돌팔매였다. 상을 주고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2억 원을 배상하라는 소송을 내다니. 아아 기 막혀.
“소심한 저는 소송 이야기를 들으면서 스스로 위축되기도 했다.”
“갑자기 노무현 대통령 생각도 났다.”
“영광이다, 이 시대의 고난 받는 사람들과 함께 해서 너무 행복하다.”
행복하다는 그가 눈물을 흘렸다. 행복하다는 박원순이 눈물을 흘렸다. 한 점 부끄럼 없이 국민을 위해 헌신한 그에게 국가가 준 선물은 고통이었다. 눈물을 흘리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얼마나 많은 국민들이 함께 눈물을 흘렸을까.
“국정원이 박원순을 고소한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
법률해석을 하는 법제처의 이석연이 한 말이다. 적절하지 못하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잘못했다는 것이다. 잘못했으면 반성해야 되고 고쳐야 한다.
국민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서명운동이 시작됐다.
원고를 대한민국으로 기재한 국정원의 소장도 공개되었다.
“원고 ‘대한민국’에서 내 이름을 빼달라”
“이름을 빼지 않으면 명의도용으로 고발하겠다”
“대한민국 구성원인 나는 이런 소송에 동의한 적이 없다”
대한변협도 일어났다.
“국민이 국가기관의 잘못을 비판할 헌법상 자유가 보장돼 있는 민주사회에서 국가 권력기관이 개인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수단으로 악용될 우려가 크다”
“국정원이 개인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것은 적절하지 못하므로 재고하기 바란다”
박원순이 시도하고 이룩한 여러 시민운동과 ‘나눔의 철학’은 진흙탕 같은 우리 사회를 사람의 냄새가 풍기는 따스한 공동채로 만드는데 큰 기여를 했다. 아무리 머리를 짜내며 생각해도 박원순이 누구의 명예를 훼손시켰는지 알 도리가 없다.
오히려 박원순을 고소함으로써 국정원이 그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생각이다. 이 땅의 시민단체들이 모두 들고 일어났다. 명예훼손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진정 명예훼손은 누가 당했는가.
대한민국의 명예를 훼손한 사람은 명백하게 실정법을 위반하고도 말 한마디로 어물쩍 넘어가려는 대법관, 법무부 장관 검찰총장 같은 사람이다.
비리백화점이라는 낯 뜨거운 조롱을 받고 있는 총리 후보 같은 사람들이다.
병역 면제 의혹, 위장전입, 소득세 탈루, 논문 중복 게재, 금품수수 의혹까지 받았는데 이런 사람이 총리가 된다면 대한민국의 명예는 어떻게 될 것인가.
또한 박원순에 대한 국정원의 명예훼손 고소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하는 언론들은 어떤가. 의로운 사람이 핍박받는 것을 보고도 침묵하는 대한민국 언론이 바로 대한민국의 명예를 땅에 떨어트리는 주인공이다.
박원순은 왜 고소를 당해야 했는가. 왜 국민과 시민단체의 반발과 저항을 분명히 알면서도 이런 철부지 같은 몰상식한 행동을 한 것일까.
박원순이 인물이 없어 고통받는 야권의 새로운 지도자가 될 수 있다고 믿고 있으며 이를 차단하기 위해서인가.
정부 비판자를 겁주기 위해서며 시민단체의 후원자들과 기업에게 경고를 하는 것인가.
이미 시민단체에 후원금이나 기부금을 보내던 기업들이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후원을 끊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짓이란 말인가. 명색이 민주주의 국가라는 대한민국에서 어찌 이런 짓을 할 수가 있단 말인가.
정상적인 눈으로는 이해가 안 되는 비정상이다. 그럼 미친 눈으로 봐야 정상적으로 보인단 말인가. 민주국가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현실에서 당당하게 일어난다.
퇴임한 전직 대통령을 끊임없이 핍박하여 강요된 자살로 이르게 했다는 비정상적 권력이다. 그래서 5백만의 추모객이 눈물을 흘리게 한 권력이다.
칼을 의사가 잡으면 목숨을 살리고 강도가 잡으면 흉기가 된다. 권력은 어떤가. 권력을 마구 휘두르면 국민은 괴롭고 잘 쓰면 국민이 행복하다.
기자회견을 하면서 노무현 대통령이 생각난다고 한 박원순의 말이 그냥 들리지 않는다.
무슨 의미인가. 모두들 알 것이다. 의인이 핍박받는 시대가 다시 올 줄 누가 알았겠는가.
일관되게 시민운동 한 길에만 전념해온 박원순이다.
누구에게나 한결같은 겸손, 신뢰 그 자체인 행동, 그의 진정성을 박원순을 만난 사람은 잊지 못한다.
그래서 시민운동의 선구자가 되고 존경받는 인물이 된 것이다.
그게 싫은가. 외눈박이 세상에서 두 눈 가진 게 죄인가.
박원순이 한 일을 일일이 기록하자면 끝이 없고 한이 없지만 한 가지만 이야기하자. 우리 국민은 박원순에게 큰 빚을 지고 있다는 것이다.
많은 시민운동가들이 정치에 발을 담구어 망가지고 비판을 받았다. 거의 유일하게 순수한 시민운동의 외길을 걸어온 사람이 박원순이다.
이명박 정부를 위해서나 국민을 위해서나 어떤 이익도 없는 이런 짓을 하는 것이 한심하다. 이 정부에는 그렇게도 상식적 사고를 하는 사람이 없단 말인가.
국민은 박원순을 보면서 정연주를 생각한다. 미네르바를 생각한다. 학교에서 쫓겨난 신태섭 교수를 생각한다.
우리는 박원순의 모습에서 순교자의 모습을 발견한다. 아무것도 바라는 것 없이 오로지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온몸을 불사른 순교자의 모습, 그의 눈물을 보며 함께 눈물을 흘린 국민이 얼마나 많을 것인가.
만약 우리가 그의 지고지순한 영혼을 감싸고 그를 망가트리려는 적들과 싸우지 않는다면 박원순도 쓰러질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문득 생긴다. 절대로 그런 일이 생겨서는 안 된다.
우리 국민이 온몸으로 박원순을 지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국정원의 ‘박원순 소장’에 기록되었듯이 박원순을 고소한 ‘대한민국’ 국민이 되는 것이다.
어떠한 권력도 불의한 짓의 결과가 어떻게 나타나는지 국민이 보여줘야 하는 것이다.
‘공든 탑이 무너지랴’는 속담이 있다. 우리는 지금 공든탑이 무너져 가는 현장에 있다. 그러나 공든탑은 절대로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을 국민이 보여줘야 한다.
박원순의 눈물은 우리 국민 모두의 눈물이다. 우리 모두 눈물을 거두고 정의의 길을 가야 한다.
나는 오늘 노무현 대통령 생신을 기리기 위해 봉하로 간다. 그분의 묘소에서 그분에게 온 국민과 함께 박원순을 지켜 달라고 기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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