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 유형별 합격자 공개? 그건 둘째 문제다

    기고 / 김유진 / 2009-09-27 15: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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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종배 시사평론가
    교육단체가 비판한다.

    교육과학기술부가 대학 정보공시 내용에 고교 유형별 합격자 수를 포함시키려는 것에 대해 ‘학교 서열화를 심화시킬 것’이라고 비판한다.

    “특목고 출신 학생들이 많이 입학한 대학을 좋은 대학으로 인식할 우려가 있고, 좋은 대학을 많이 보낸 학교가 역시 좋은 고교로 인식될 우려가 크다”고 한다.

    판에 박힌 비판이다. 맞지만 효용은 적은 비판이다.

    현실이 된 지 오래다. 대학교가 SKY대학과 비 SKY대학으로 갈린 지 이미 오래고, 서울 소재 대학과 비 서울소재 대학으로 나뉜 지 오래다.

    대학 서열화 심화를 운위하는 게 낯설 정도로 대학은 이미 일렬종대로 늘어서 있다.

    고교도 마찬가지다.

    특목고와 자사고가 일반고 위에서 훨훨 날고 있다는 건 코흘리개 초등학생도 안다.

    교육단체 관계자의 말 속에도 이런 현실이 그대로 녹아있다. “특목고 출신 학생들이 많이 입학한 대학을 좋은 대학으로 인식할 우려가 있다”는 말에는 특목고는 ‘좋은 고교’라는 현실적 인식이 전제돼 있고, “좋은 대학을 많이 보낸 학교가 좋은 고교로 인식될 우려가 크다”는 말에는 ‘좋은 대학’이 이미 선험적으로 전제돼 있다.

    달라질 건 별로 없다. 대학 정보공시 내용에 고교 유형별 합격자 수를 포함시킨다고 해서 특목고와 일반고의 간극이 더 넓어질 것도, SKY대학과 비 SKY대학의 격차가 더 벌어질 것도 없다.

    간극과 격차는 이미 넓어질 만큼 넓어져 있고 벌어질 만큼 벌어져 있다.

    오히려 도움이 될지 모른다. 대학이 고교 유형별 합격자 수를 공개하면 특목고 우대, 나아가 고교등급제 적용 여부를 파헤칠 수 있는 실마리를 확보할지 모른다.

    각 대학이 정말로 특목고를 우대한다면 고교 유형별 합격자 수를 공개하지 않은 것보다 공개하는 게 제어와 단속에 도움이 될지 모른다.

    우려할 건 따로 있다. 일반고 내에서의 격차와 서열이 심화되는 경우다.

    대학 정보공시 내용에 고교 유형별 합격자 수가 아니라 고교별 합격자 수가 포함되는 경우다.

    이런 현상이 빚어지면 갈 데가 없어진다.

    고교가 ‘특수’와 ‘일반’으로 나뉜 것으로도 모자라 ‘일반’ 이 다시 등급별로 매겨지면 내 자식이 비빌 수 있는 언덕이 아예 사라져 버린다.

    교과부는 물론 이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한다.

    대학 정보공시 내용에는 물론 고교 정보공시 내용에도 출신 고교별, 진학 대학별 학생 수는 공개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소용없다. 마침표만 찍지 않았지 문장은 이미 완성됐다. 고교선택제를 도입하기로 했고, 고교 학생별 수능 원점수를 국회의원에게 공개하기로 했다.

    이것으로도 모자라 이번에는 고교별로 교원평가 결과의 지표별 평균점수도 공개할 계획이다.

    이런 방안이 시행되면 열어준다.

    어느 일반고가 더 우수한지를 한 눈에 꿸 수 있는 길을 열어주고, 특목고에 못 간 한을 조금이라도 풀 수 있는 길을 열어준다. 더불어 일반고 서열화를 심화시킬 길을 열어준다.

    그래도 이해할 수 있다.

    백번이 아니라 천번은 양보해야 겠지만 아무튼 이해할 수 있다.

    학생과 학부모가 조금이라도 ‘좋은 일반고’를 선택하려는 움직임을 정당한 권리 행사로 받아들일 수 있다.

    한 가지 문제만 선결하면 통 크게 양해할 수 있다.

    위장전입이다. ‘좋은 일반고’ 근처에 집 한 채 갖고 있는 사람을 지인으로 두지 않은 사람은 꿈꾸기 힘든 위장전입, 거꾸로 말해 ‘빽’ 있고 ‘연줄’ 있는 사람만이 시도할 수 있는 위장전입을 ‘발본색원’ 한다면 이해할 수 있다.

    장관 청문회 때마다 문제가 되는 위장전입을 정권이 나서서 근절할 수 있다면 양해할 수 있다.

    어차피 ‘뺑뺑이’다.

    특목고가 아닌 일반고에 가야 하는 학생은 ‘뺑뺑이’를 통해 ‘좋은 일반고’를 배정받기도 하고 ‘나쁜 일반고’를 배정받기도 한다.

    고교선택제가 시행돼도 이 시스템은 변하지 않는다.

    이런 ‘뺑뺑이’ 시스템에서 자행되는 위장전입은 ‘상위등급’이 될 수 있는 기회를 가로채는 행위다.

    ‘좋은 일반고’에서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새치기 하는 행위다.

    사교육비가 없어 내 자식을 특목고에 못 보내는 것도 억울한데 ‘빽’ 없고 ‘연줄’ 없어 내 자식을 ‘좋은 일반고’에도 못 보낸다면 부모 가슴이 어떻겠는가.

    피멍으로도 모자라 검버섯이 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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