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연극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문화 / 차재호 / 2010-03-31 19:08:07
    • 카카오톡 보내기
    파국으로 치닫는 욕망들의 충돌… 현대적 캐릭터 관객공감
    배종옥·이승비·오민석등 열연… 동숭아트센터서 내달 23일까지


    “사람들이 그랬어요. 먼저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타고 다음엔 또 이름이 ‘묘지’라는 전차로 갈아탄 다음에 여섯 정거장 더 가서 엘리지안 필드, ‘낙원’에 내리라구요.” 블랑쉬가 무대에 등장하자마자 내뱉는 이 말은 곧 블랑쉬의 인생을 축약한다. 블랑쉬가 없었던 ‘낙원’에 블랑쉬가 ‘욕망’을 몰고 등장한다. 결국, 블랑쉬는 ‘묘지’로 향하게 된다.



    미국을 대표하는 극작가 테네시 윌리엄스의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가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 돼 무대에 올려졌다.

    ‘블랑시’를 맡은 탤런트 배종옥(46)은 “블랑시를 연기해 욕만 먹지 않으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너무 기대가 많고 잘 알려진 작품에 출연하다 보니까 정말 긴장된다”며 “그런 긴장감이 오히려 좋은 작품을 만드는 동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배종옥은 대학 재학시절부터 ‘블랑시’를 연기하길 꿈꿨다. “나이가 들어서 ‘블랑시’를 맡게 되니 설레면서도 부담돼 잠을 설칠 만큼 고통스럽다”며 “이 고통이 발전의 계기가 되고 관객들에게 의미로 다가가길 바란다”고 전했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는 주요 배역 4명의 서로 다른 욕망들을 잘 보여준다. 환상 속에서 살고 있는 블랑쉬, 언니를 불쌍히 여기지만 현실을 지키고픈 스텔라, 남성우월주의자 스탠리, 사랑 그 자체에 충실했던 미치.

    블랑쉬는 처음부터 끝까지 하얀 옷을 입고 무대를 휘젓는다. 잠옷, 목욕 가운, 파티 드레스…. 모두 하양 일색이다. 흰색은 그녀의 어두운 과거를 감추고 환상에서 살고 싶은 그녀의 갑옷과도 같은 구실을 한다.

    “당신이 누군지 몰라도, 난 언제나 낯선 사람들의 친절에 의지해 왔어요.” 블랑쉬는 마지막까지 환상 속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스텔라는 현실에 안주한 여성이다. 환상 속에 있는 언니를 동경하고 불쌍히 여기지만 남편에 순응한다. 남편과의 사이에 충실하고 싶은, 지극히 현실적인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고 가정을 지키기 위해 필사적이다. 슬퍼하면서도 언니를 내치는 것에 묵인하는 2중적 인물이기도 하다.

    스탠리는 자신의 왕국을 잃어버리고 싶지 않은 난폭한 왕이다. 말 잘 듣는 아내, 함께 할 수 있는 친구들, 작지만 아늑한 집…. 이 공간에 블랑쉬가 침입하면서 그는 잔인해진다. 즉흥적이고 폭력적이지만 자신의 것을 지키려는 몸부림일 뿐이다. 물질과 쾌락을 중시하는 현실적인 욕망에 솔직한 인물이다.

    블랑쉬를 사랑하는 미치는 위의 세 인물에 비해서는 비중이 작지만 가장 개인적인 욕망에 충실하다. 블랑쉬가 보수적이고 정숙한 여자라고 믿고 그 사랑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하지만 그 관념이 무너진 순간, 그는 억눌렀던 자신의 욕망을 분출한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에는 선인도, 악인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저 각자의 욕망을 갖고 있는 욕망에 충실한 이들만이 존재할 뿐이다. 현실 안주든 환상이든 상관없다.

    ‘블랑쉬’로 배종옥과 이승비가 더블 캐스팅됐으며 ‘스탠리’ 이석준, ‘스텔라’ 이지하, ‘미치’ 오민석 등이 등장한다. 연출은 대학로의 젊은 연출가 문삼화가 맡았다.

    문 연출은 “우리 연극에는 비비언 리, 말런 브랜도는 없다”며 “배종옥만의 블랑시, 이승비만의 블랑시 등을 확실히 선보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는 연극배우 오민석, 유안, 한철훈, 박해수, 김설, 이현균 등도 함께 한다.

    5월23일까지 서울 동숭아트센터에서 만날 수 있다. 2만~5만원.

    [ⓒ 시민일보.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차재호 차재호

    기자의 인기기사

    뉴스댓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