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길을 목전에 둔 소방차의 시동이 꺼진 것을 상상할 수 있는가?
개인의 목격담 혹은 지인과의 주고받은 이야기가 곧 기사거리가 되는 인터넷 바다 속에서 이는 곧 내 가족, 내 집이 피해를 입은 것처럼 ‘나의 일’이 되어 문제를 의식하고, 대화하며 문제제기를 갖는 일련의 반복과정을 통해 사회적 이슈가 된다.
반면 도로 위 요란하게 사이렌을 울리며 멈춰서 있는 소방차를 보는 시민들의 시선은 어떠한가? 의례히 일어나는 일이라며 꽉 막힌 도로에서 어쩔 수 없는 일로 치부하고 있지는 아니한지. 이런 일은 비단 도로에서만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주택가 및 아파트 단지 내의 무분별한 주차행태는 소방차의 진입과 진압활동을 방해하는 걸림돌이 돼 짧은 길을 우회하게 하고 쉽게 진화할 수 있는 불길을 거세게 만들며 결국 있어서는 안 될 인명피해를 불러오기도 한다.
문제가 이러할진대 이 두 경우 모두 앞선 ‘나의 일’의 경우와는 달리 사회적 이슈가 되지 못한다. 요란한 사이렌소리에 창문을 올려버린 부끄러운 손, 혹은 집근처 가깝게 주차하기를 원하는 부끄러운 발. 바로 나의 자화상이기 때문이 아닐까?
이러한 불편한 진실은 사회적 인프라망의 부재를 이유로 한 개인적인 불만을 품게 할 수는 있어도 자신의 경험담을 터놓고 대화하고 소통하기를 꺼리게 한다. 사회적 이슈가 되지 못하는 이유이다.
‘소방차 길터주기’의 시작은 여기부터이다. 누구나 알고 있지만, 잘 지켜지지 않는 것. 누구나 할 수 있지만 개인의 편의상 미뤄만 오던 것. 부끄러운 자화상에 타부시 돼버린 불편한 진실을 벗어 던질 때 우리는 비로소 잘못된 것을 잘못된 일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불특정다수 속의 익명의 한사람에서 벗어나 소방차의 생명길에 파란 신호등이 돼줄 성숙한 시민의식을 기대한다. '소통(대화, 문제제기)'은 또 다른 “소통(차량의 원활)”을 낳을 수 있다.
개인의 목격담 혹은 지인과의 주고받은 이야기가 곧 기사거리가 되는 인터넷 바다 속에서 이는 곧 내 가족, 내 집이 피해를 입은 것처럼 ‘나의 일’이 되어 문제를 의식하고, 대화하며 문제제기를 갖는 일련의 반복과정을 통해 사회적 이슈가 된다.
반면 도로 위 요란하게 사이렌을 울리며 멈춰서 있는 소방차를 보는 시민들의 시선은 어떠한가? 의례히 일어나는 일이라며 꽉 막힌 도로에서 어쩔 수 없는 일로 치부하고 있지는 아니한지. 이런 일은 비단 도로에서만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주택가 및 아파트 단지 내의 무분별한 주차행태는 소방차의 진입과 진압활동을 방해하는 걸림돌이 돼 짧은 길을 우회하게 하고 쉽게 진화할 수 있는 불길을 거세게 만들며 결국 있어서는 안 될 인명피해를 불러오기도 한다.
문제가 이러할진대 이 두 경우 모두 앞선 ‘나의 일’의 경우와는 달리 사회적 이슈가 되지 못한다. 요란한 사이렌소리에 창문을 올려버린 부끄러운 손, 혹은 집근처 가깝게 주차하기를 원하는 부끄러운 발. 바로 나의 자화상이기 때문이 아닐까?
이러한 불편한 진실은 사회적 인프라망의 부재를 이유로 한 개인적인 불만을 품게 할 수는 있어도 자신의 경험담을 터놓고 대화하고 소통하기를 꺼리게 한다. 사회적 이슈가 되지 못하는 이유이다.
‘소방차 길터주기’의 시작은 여기부터이다. 누구나 알고 있지만, 잘 지켜지지 않는 것. 누구나 할 수 있지만 개인의 편의상 미뤄만 오던 것. 부끄러운 자화상에 타부시 돼버린 불편한 진실을 벗어 던질 때 우리는 비로소 잘못된 것을 잘못된 일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불특정다수 속의 익명의 한사람에서 벗어나 소방차의 생명길에 파란 신호등이 돼줄 성숙한 시민의식을 기대한다. '소통(대화, 문제제기)'은 또 다른 “소통(차량의 원활)”을 낳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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