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술년 국치 1백년

    칼럼 / 안은영 / 2010-12-20 14: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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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봉승 극작가
    (신봉승 극작가)

    2010년, 일본제국에게 나라를 빼앗긴지 100년 째 되는 해도 얼마 남지를 않았다. 새해 초, 여러 언론들은 나라 잃은 통분함을 상기하자면서 연일 특집시가를 쏟아내는 것으로 뭔가 일을 저지를 것만 같았던 결기가 하늘을 찔렀지만, 정작 <경술년 국치>가 있었던 8월이 되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조용하기만 하였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국민성을 두고 ‘죽 끓듯 하는 냄비’에 비유하곤 하지만, 그건 국민성이 아니라 실천이 따르지 않고 말만 앞세우는 이 땅의 지식인들의 나태와 무책임 탓이다.

    실제로 21세기에 들어선 지도 어언 10년이 지났건만 말로만 떠들썩한 것 말고는 달라진 곳이 눈 닦고 찾아도 없다. 대통령은 ‘공정한 사회’로 가자는데도 사회전반은 불공정으로 일관하고 있다. 말과 행실이 이토록 상반되는 나라는 우리 말고는 별로 없지를 않나 싶기도 하다. 지난 번 새해 예산안이 통과되는 대한민국 국회의 꼬락서니를 보고 있노라면 한심한 정도를 넘어서서 참담해지는 심회를 가늠할 길이 없다. 학벌도 만만치 않고, 전직도 화려한 지식인들이 주먹다짐을 하는 광경은 눈뜨고 보지 못한 참경이다. “왜 그래야만 했는가?”라고 물으니 “그렇게 하지 않으면 다음 번 공천을 받을 수가 없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고 한다. 결국 우리나라 정당들은 말 잘 듣고 몸싸움 잘하는 사람들을 공천한 셈이고, 그들에게 표를 던진 유권자는 더욱 할 말이 없어진다. 그러니 국회의 폭력사태가 9년 째 되풀이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지를 않겠나.

    좀 솔직하게 적어보면 우리 대한민국의 처지는 어떠한가. 꼭 1백 년 전 나라를 빼앗길 때의 사정과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 나라는 있어도 국가의 미래를 가늠하는 프로젝트를 운영할 줄 모르는 것이 그 때와 다름이 없고, 정부는 있어도 다스림이 없는 것이 또한 그때를 빼닮았다. 게다가 그 때에 비해 악조건은 더 늘어나 있다. 국토의 분단이 그렇고, 지역감정으로 인한 국론의 분열이 그렇고, 보수와 진보로 갈라 세우는 터무니없는 명분의 대립이 또한 그러하다.

    정부요직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병역미필이고, 병역을 면제 받기 위해 손가락을 자르고, 생니를 빼는 사람들이 있는 판국인데도 해병대에 지원하여 지옥훈련을 받겠다는 젊은이가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이 무엇을 말하는가. 연평도의 사건을 지켜본 다음에도 해병대에 지원하는 젊은이가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이 또한 무엇을 말하는가. 젊은이들의 현명함을 정부나 언론, 그리고 배웠다는 지식인들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음이 아니겠는가.

    이에 대한 해결책은 오직 한 길밖에 없다. 나라의 정체성을 기반으로 하는 정신적 근대화에 나서는 일이 유일한 방법이다. 그러고 보니 생각나는 게 있다. “아무리 큰 학문도 실천이 따르지 아니하면 무용지물‘이라는 율곡 선생의 말씀을 차라리 우리에게 일러주는 경고가 아니고 무엇인가.

    우리 역사를 서툴게 배우고, 잘 못 인식한 지식인들이 우리역사를 비하하고 폄하하느라 이 땅의 청소년들에게 <국사>를 가르치지 않는다. 서울대학에 진학하기 위해서는 국사를 공부해야 한다. 여기까지는 그나마 다행이지만, 연세대, 고려대, 이화여대와 같은 명문 사립대학에 진학하는 학생들은 국사를 공부하지 않아도 된다. 결국 국사를 모르는 학생들만 선발하겠다는 꼴이나 다름이 없다. 그런 유명대학의 총장들과 교수들은 모두가 많은 공부를 한 지식인들이다. 왜 국사를 모르는 학생들만 뽑아야 하는지를 소신 있게 밝힐 법도 한데, 아무도 입을 열지 않으면서 연구비만 챙긴다.

    지식인 사회가 병들면 나라의 가치가 무너진다. 죽 끓듯 하는 우리 사회의 병폐는 결국 지식인들의 설천의지로 고쳐질 수밖에 없다. 달력의 마지막 한 장을 바라보며 ‘내년엔 좀 나아지려니.’하는 생각으로 자위해 본다.
    [지면]

    경술년 국치 1백년
    신봉승 극작가

    2010년, 일본제국에게 나라를 빼앗긴지 100년 째 되는 해도 얼마 남지를 않았다. 새해 초, 여러 언론들은 나라 잃은 통분함을 상기하자면서 연일 특집시가를 쏟아내는 것으로 뭔가 일을 저지를 것만 같았던 결기가 하늘을 찔렀지만, 정작 <경술년 국치>가 있었던 8월이 되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조용하기만 하였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국민성을 두고 ‘죽 끓듯 하는 냄비’에 비유하곤 하지만, 그건 국민성이 아니라 실천이 따르지 않고 말만 앞세우는 이 땅의 지식인들의 나태와 무책임 탓이다.
    실제로 21세기에 들어선 지도 어언 10년이 지났건만 말로만 떠들썩한 것 말고는 달라진 곳이 눈 닦고 찾아도 없다. 대통령은 ‘공정한 사회’로 가자는데도 사회전반은 불공정으로 일관하고 있다. 말과 행실이 이토록 상반되는 나라는 우리 말고는 별로 없지를 않나 싶기도 하다.
    지난 번 새해 예산안이 통과되는 대한민국 국회의 꼬락서니를 보고 있노라면 한심한 정도를 넘어서서 참담해지는 심회를 가늠할 길이 없다. 학벌도 만만치 않고, 전직도 화려한 지식인들이 주먹다짐을 하는 광경은 눈뜨고 보지 못한 참경이다. “왜 그래야만 했는가?”라고 물으니 “그렇게 하지 않으면 다음 번 공천을 받을 수가 없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고 한다. 결국 우리나라 정당들은 말 잘 듣고 몸싸움 잘하는 사람들을 공천한 셈이고, 그들에게 표를 던진 유권자는 더욱 할 말이 없어진다. 그러니 국회의 폭력사태가 9년 째 되풀이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지를 않겠나.
    좀 솔직하게 적어보면 우리 대한민국의 처지는 어떠한가. 꼭 1백 년 전 나라를 빼앗길 때의 사정과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 나라는 있어도 국가의 미래를 가늠하는 프로젝트를 운영할 줄 모르는 것이 그 때와 다름이 없고, 정부는 있어도 다스림이 없는 것이 또한 그때를 빼닮았다. 게다가 그 때에 비해 악조건은 더 늘어나 있다. 국토의 분단이 그렇고, 지역감정으로 인한 국론의 분열이 그렇고, 보수와 진보로 갈라 세우는 터무니없는 명분의 대립이 또한 그러하다.
    정부요직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병역미필이고, 병역을 면제 받기 위해 손가락을 자르고, 생니를 빼는 사람들이 있는 판국인데도 해병대에 지원하여 지옥훈련을 받겠다는 젊은이가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이 무엇을 말하는가.
    연평도의 사건을 지켜본 다음에도 해병대에 지원하는 젊은이가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이 또한 무엇을 말하는가. 젊은이들의 현명함을 정부나 언론, 그리고 배웠다는 지식인들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음이 아니겠는가.
    이에 대한 해결책은 오직 한 길밖에 없다. 나라의 정체성을 기반으로 하는 정신적 근대화에 나서는 일이 유일한 방법이다. 그러고 보니 생각나는 게 있다. “아무리 큰 학문도 실천이 따르지 아니하면 무용지물‘이라는 율곡 선생의 말씀을 차라리 우리에게 일러주는 경고가 아니고 무엇인가.
    우리 역사를 서툴게 배우고, 잘 못 인식한 지식인들이 우리역사를 비하하고 폄하하느라 이 땅의 청소년들에게 <국사>를 가르치지 않는다. 서울대학에 진학하기 위해서는 국사를 공부해야 한다. 여기까지는 그나마 다행이지만, 연세대, 고려대, 이화여대와 같은 명문 사립대학에 진학하는 학생들은 국사를 공부하지 않아도 된다. 결국 국사를 모르는 학생들만 선발하겠다는 꼴이나 다름이 없다. 그런 유명대학의 총장들과 교수들은 모두가 많은 공부를 한 지식인들이다. 왜 국사를 모르는 학생들만 뽑아야 하는지를 소신 있게 밝힐 법도 한데, 아무도 입을 열지 않으면서 연구비만 챙긴다.
    지식인 사회가 병들면 나라의 가치가 무너진다. 죽 끓듯 하는 우리 사회의 병폐는 결국 지식인들의 설천의지로 고쳐질 수밖에 없다. 달력의 마지막 한 장을 바라보며 ‘내년엔 좀 나아지려니.’하는 생각으로 자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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