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양호 위령제와 국가안보

    기고 / 진용준 / 2011-04-06 15:31:00
    • 카카오톡 보내기
    최충근(인천중부서 연안파출소장)
    최충근(인천중부서 연안파출소장)
    서해바다 웅장한 인천대교 앞에 말없이 서있는 위령탑이 바닷바람을 맞고 있다.
    연안부두에서 북서쪽으로 끝없이 펼쳐진 금빛물결 넘실대는 인천앞바다 멀리 고깃배들이 바람결에 일렁이는 모습이 햇살이 반짝되며 시야에 들어온다.

    1883년 개항이후 연안부두의 일부인 항동은 본래 대부분이 바다로 1915년 일제가 매립하여 항동으로 칭호하게 되었고 1970년대 해안 대(大 )매립공사로 부도공사가 진행되면서 앞으로 북방교역과 수도권을 배후로 한 환태평양 시대의 개막으로 세계적인 항만이 있는 지역으로 거듭나면서 서해안 일원의 100여개 섬 인천의 관문 연안부두 바다쉼터가 저멀리 보인다.
    지난해 4월2일 천안함 피격사건의 구조, 수색활동에 참여 하였다가 침몰한 금양98호 선원의 희생정신을 기리기 위한 추모식에 참석하기 위하여 발걸음을 옮기며 희생된 선원들을 생각하면서 다시한번 고인의 영면을 기원하며 희생선원들의 넋을 빈다.
    이들은 연안부두에서 숙소를 두고 생활하다가 바다에서 조업후 여름 금어기때가 되면 일시 상륙하여 필자가 근무하는 파출소(옆)연안부두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다음 금어기가 지나면 다시 바다조업을 재개하는 사람들이다.
    필자도 참석한 이날 추모식은 유족30여명과 농림수산부장관, 해경청장, 신두호 인천지방청장등, 1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고인에 대한 묵념, 경과보고, 위령제 제막식, 조사낭독, 헌화, 분양순으로 이어져 그들의 고귀한 넋을 위로하고 죽음을 값지게 승화시켜 사회의 귀감이 되도록 하고자면서 약1시간에 걸쳐 추모식이 끝났다.
    국민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며 무사귀환을 바랐던 선원들은 사고해역 인근인 인천시 옹진군 대청도에서 천안함 수색활동에 참가하였다가 선장과 기관장 포함 총 9명이 끝내 돌아오지 못하였다.
    필자가 근무하는 파출소(옆) 해양센타 식당주인 아주머니는 침몰한 그날이 김선장님을 비롯한 선원들을 모두 기억하며 내가 하루세끼 밥도 해주었는데 선장님이 사고당한 날이 생일이었다며 선원들이 평소 좋아하던 생선등 제사상을 간단히 올려 놓고 제를 지내며 벌써 1년이 지났다며 안타까워 하고 있었다.
    청산은 나를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창공은 나를보고 티없이 살라하네 탐욕도 벗어놓고 성냄도 벗어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 조선개국을 예언하며 고려시대 무학대사의 스승이며 공민왕 왕사로 있던 나옹선사의 선시가 떠오른다.
    천안함 사건, 연평도 도발사건은 국가안보의식을 고취시킨 사건들이다.
    특히 삶의터전인 바다에서 조업하던 선원들까지 희생시킨 금양98호 사건을 계기로 고귀한 넋을 위로하고 죽음을 값지게 승화시켜 사회의 귀감이 되도록 역사에 길이 남아야 하겠다.
    새벽시간 112순찰차창 밖으로 보이는 위령비를 바라보자 바다를 향하여 팔을 뻗으며 동료선원들의 고깃배의 무사조업을 기원하는 듯한 힘찬 외침의 메아리가 울려 퍼지는 듯 하다.
    이제 남은 것은 국민들의 굳건한 국가안보의식이 중요한 때로 언제든지 북한의 도발에 단호하게 대처하여 국가와 국민의 안위에 만전을 기하여야 할 것 이다.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시민일보.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진용준 진용준

    기자의 인기기사

    뉴스댓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