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9의거는 자유민주주의다

    기고 / 유은영 / 2012-04-18 17: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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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은경(서울남부보훈지청 복지과)

    요즘 대중음악 중에 ‘내가 제일 잘 나가~’가 한창 유행이었다. 무한경쟁에서 1등만이 살아남는다는 신조가 팽배한 사회에서 이 노래는 비록 재미있는 음률을 타고 있지만 한편으론 씁쓸한 기분이 들게 한다.


    이제 곧 4.19의거가 있었던 53번째 그 날이 돌아온다. 제1공화국의 위정자들은 제1인자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헌법에 명시된 자유민주주의 이념도 망각하고 치욕의 사건을 남겨놓았다. 일제강점기에서 벗어나 그토록 열망하던 조국의 광복을 맞이했건만, 일본인들에게 핍박받던 ‘우리 백성’을 보며 울분했던 지도자들과 그의 추종자들은 또 다른 역사의 장에 올라서자 이제 그 ‘우리 백성’을 내 편이 되고 네 편이 되게 하였다.


    자유민주주의를 표방한 제1공화국의 대통령은 임기 4년의 직을 세 번이나 역임하였다. 임기 마지막 해인 1960년 그의 나이 86세다. 3.15부정선거, 김주열 학생 의문사, 4.19의거자에게 총격 대응을 하면서까지 정권의 제1인자로 존재하려 했던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제1공화국은 자유민주주의였던가?


    4.19의거자는 아마도 이점에 고심했을 것이다. 제1공화국에 항거한다는 것은 내가 이 나라의 주인이고 자유민주주의에서 국가는 국민의 의사를 존중해야 하고 국민은 국가에 호소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결연히 거리로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여기에 4.19의거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


    고등학교 국어시간에 배웠던 김구 선생의 '나의 소원'이 떠오른다. 목숨을 건 독립투쟁 속에서 피지배국의 설움을 가슴에 켜켜이 누르고 해방될 우리나라의 이상을 간절히 그리는 선생의 애국애족심에 가슴이 벅찼었다.


    조국의 독립만이 그의 목표요, 독립된 조국에서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문화적 번영에 동참하며 행복하게 사는 것이 선생의 최종 도달점이었다. 1등을 떠들썩하게 부추기는 현 세태에서 자유민주주의를 부르짖던 4.19의거로 막을 내린 제1공화국의 말로를 다시 한 번 되짚어본다. 제1인자로서 추대 받는 것은 당연하나 책임 또한 1등으로 짊어져야 한다는 사실을 망각한 정권의 말로를...... 4월의 하늘을 바라보며 김구 선생이 소원했던 그 이상과 4.19의거 국가유공자의 외침을 기억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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