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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혜숙(영상번역가)
“로마는 사람을 홀리는 도시 같아.” 영화 <로마 위드 러브>에서 잠시 로마로 여행 온 모니카가 하는 말이다.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울적한 상태에서 미국에서 유럽으로 멀리 떠나 왔으니 제정신이 아닐 테다. 그러니 로마에 홀릴 수밖에. 하지만 좀처럼 “별일”이 일어나지 않는 평범한 일상 속에서 제정신으로 살고 있는 나 역시, 로마에 홀리고 말았다.
<로마 위드 러브>는 우디 앨런 감독이 <매치 포인트>의 런던,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의 바르셀로나, 그리고 바로 전작인 <미드나잇 인 파리>의 파리에 이어, 네 번째로 유럽의 도시를 배경으로 만든 영화다. 매일 밤 자정이면 1920년대 파리로 돌아가곤 했던 <미드나잇 인 파리>가 한밤의 꿈이었다면, <로마 위드 러브>는 한낮의 꿈 같은 이야기이다.
영화는 네 가지 이야기가 옴니버스 형식으로 전개된다. 유명한 건축가 존은 우연히 만난 건축학도를 보며 꿈속을 헤매듯 추억에 잠기고,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다가 하루아침에 유명인이 된 레오폴도는 꿈인지 생시인지 몰라 어안이 벙벙하다. 은퇴하고 무기력하게 살던 오페라 감독 제리는 예비 사돈한테서 노래 재능을 발견하고 무대에 세우려고 애쓴다. 로마로 신혼여행을 온 밀리와 안토니오는 각자 마음속에 품고 있던 환상을 실현하게 된다. 이렇게 모두 로마에서 뜻하지 않게 꿈속에 빠진다.
꿈이라는 건 깨어나는 순간이 있기 마련. 예비 사돈을 오페라 무대에 세우려다 실패한 제리에게 아내가 이렇게 한마디 던진다. “당신의 망상이었어.” 영어 대사를 보면 ‘판타지(fantasy)'라고 나온다. 꿈을 꾸는 당사자에게는 ’판타지‘가 환상이자 꿈이지만, 옆에서 지켜보는 제3자에게는 그저 ’망상’으로 보이는 것이다. 존 역시 사랑하는 여인을 찾아서 꿈속에 있듯 행복하다고 말하는 건축학도 잭에게 이렇게 말한다. “개꿈 꿨다고 쳐.”
어쩌면 우리 모두, 망상에 사로잡혀 개꿈을 꾸며 사는지도 모른다. 내 사업이 초대박을 칠 거라는 망상,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평생 행복할 거라는 헛기대, 유명한 남자배우를 만나 진한 키스를 나누고 싶다는 개꿈. 하지만 설사 망상이라도, 설사 개꿈이라도, 우리는 꿈꾸는 걸 멈출 수 없다. 꿈을 포기하는 순간 삶도 죽어 버리므로. 그래서 영화 속 주인공들은 얼굴에 설레임이 가득하다. 잠시나마 일상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판타지(망상이든 개꿈이든)를 이룰 수 있었으니까.
우리가 어딘가로 여행을 떠나는 건, 평범한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은 열망 때문이다. 여행이 더 아름답고 낭만적으로 느껴지는 건 짧은 시간 안에 끝나기 때문이다. 여행이 끝나면 다시 집으로,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와야 하기 때문이다. 영화 속에 비춰지는 로마는 골목 구석구석까지 눈부시게 빛난다. 로마에서 사랑에 빠지고, 잊었던 열정을 되찾고, 아련한 추억을 떠올리는 게 너무나도 당연하다. 로마에 홀린 사람들이 꿈에서 깨어나 다시 현실로 돌아오는 순간에도 로마는 여전히 묘한 마력을 발산한다. “로마는 사람을 홀리는 도시 같아.”라는 모니카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할 수밖에 없다.
그나저나 <미드나잇 인 파리>를 보고 한동안 파리에 가고 싶다는 열망에 몸살을 앓았는데, 이제는 <로마 위드 러브> 때문에 당분간 로마로 떠나고 싶어 온몸이 근질거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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