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폭력 악(惡) 융합행정이 관건이다

    기고 / 지영환 / 2013-05-16 11:35:00
    • 카카오톡 보내기
    지영환(경찰청 대변인실 소통담당ㆍ시인)

    법과 원칙을 준수하는 것이야말로 민주주의의 선진국가가 되는 길이 아닌가 싶다. 아리스토텔레스는“인간은 완성됐을 때 가장 훌륭한 동물이지만, 법과 정의에서 이탈했을 때는 가장 사악한 동물”이라고 했다.

    사회의 '4대 악(惡)' 중 학교폭력 왕따 사례를 재구성 해 보자. 가림이와 미연이는 같은 초등학교를 다니다 같은 중학교에 입학한 친한 친구 사이였다. 같이 어울려 다니는 소영이, 아람이, 재희랑도 모두 친했지만, 둘은 특별히 더 친했다. 아무래도 초등학교를 같이 다녔다는 것 때문에 공통분모가 많아서였을 것이다. 그런데 그 친한 친구로부터 왕따를 당하니, 미연이는 배신감에 치가 떨리고 죽고만 싶었다. 몇 달 전이었다.

    중간고사 시험 시간, 대각선으로 뒤에 앉은 가림이가 선생님 눈을 피해 조그만 소리로 속삭이며 물었다.“야, 19번 문제, 그거 공식이 뭐였지?” 미연이는 선생님이 들을까 봐 눈치가 보여 아무 소리도 안 하고 가만있었다. 그러자 조금 있다 가림이가 또 물었다.“야, 선생님 안 볼 때 빨리 좀 가르쳐 줘.”“몰라. 니가 생각해서 풀어.”그렇지 않아도 문제가 안 풀려 골치가 아팠던 미연이는 귀찮게 하는 가림이가 짜증 나 톡 쏘듯이 말했다. 그런데 그 말이 가림이에게는 날카로운 비수처럼 와서 꽂혔다. 마치 시험 시간에 커닝 같은 건 하면 안 되는데 왜 하려고 하느냐는 투로 들렸던 것이다. 자존심이 확 상해 버린 가림이는 결국 생각이 나지 않아 그 문제를 풀지 못한 채 시험지를 냈다. 다른 문제를 다 풀었기에 망정이지, 안 그랬더라면 시험을 망칠 뻔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험 시간이 끝나고 쉬는 시간, 미연이가 가림이 쪽을 돌아보며 말했다.“야, 아까 그거 속력은 시간분의 거리야.” 가림이는 기가 막혀서 미연이를 째려보았다. 누가 지금 말해 달랬나? 아까 물어볼 땐 잘난 척 튕기더니, 지금 아이들이 다 듣는 데서 말하는 건 무슨 경우인가? 가림이는 갑자기 미연이의 뒤통수가 보기 싫어지고, 옷의 목 부분에 낀 때가 더러워 보였다.

    학교 폭력 근절을 위한 한 걸음 내딛기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먼저 여자아이들의 공격성을 살펴 보자. 왕따는 남학생보다는 주로 여학생들 사이에서 많이 발생한다. 남학생은 때리거나 놀리는 등 직접적인 방식으로 상대를 괴롭히지만, 여학생은 대꾸를 안 하거나 외면을 하는 등 잘 드러나지 않는 간접적이고 심리적인 방식으로 상대를 괴롭힌다.

    그렇기에 왕따는 단순한 폭력보다 피해 학생에게 더 큰 상처를 줄 수 있다. 왕따의 초기 단계에서는 피해 학생이 눈치를 못 챌 수도 있다. 하지만 시간이 가면서 심리적인 고통이 커지고, 그때는 이미 많은 아이들이 왕따에 가담하여 사태는 되돌릴 수도 없게 되어 버린다. 또한 남학생은 대개 자신과 친하지 않은 아이를 따돌리지만, 여학생은 친한 친구 중 하나 또는 가장 친한 아이를 따돌리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왕따를 당한 아이는 강한 배신감과 함께 세상으로부터 홀로 단절된 느낌을 경험하게 된다.

    학자들에 의하면 여자의 뇌는 남자의 뇌에 비해 청각과 언어중추가 더 발달되어 있고, 기억을 형성하고 유지하는 해마상 융기도 더 크다고 한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상대방의 얼굴 표정과 목소리를 읽어서 상대의 마음을 알아채는 능력이 더 뛰어나고, 그런 까닭에 관계를 형성하고 유지하는 데도 더 재능을 보인다고 한다. 이것은 과거 남자들이 직접 사냥을 하고 맹수와 싸웠던 데 비해, 상대적으로 약하며 아이를 데리고 있던 여자들은 채집을 하면서 위험을 피하기 위해 여럿이 연대할 필요가 있었고, 거기에서 소외되지 않기 위해서는 상대의 마음을 읽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에 그런 능력이 더욱 발달했다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여자들은 소외되는 것을 매우 두려워하며, 소외의 위험성이 있을 때 말과 표정 등으로 공격하고, 그 공격에 더 민감하며, 그 고통과 원한을 더 오래 기억한다. 그래서 흔히 여자아이들 사이의 왕따는 폭력보다도 해결하기가 힘들다고 한다. 왕따를 시키는 방식도 매우 다양하다. 약점 캐내서 뒤에서 헐뜯기, 없는 얘기 지어내서 소문내기, 아무것이나 트집 잡아 비난하기, 불러도 대답 안 하기, 마치 벌레 보듯 째려보기, 모든 부탁을 차갑게 거절하기, 중간에 말 톡톡 끊기, 뒤에서 이상한 손짓․몸짓하기, 투명인간 취급하기 등등 자존감에 상처를 주어 마음의 고통을 받게 하는 식이다.

    왕따로 인한 고통은 심리적인 것이어서 오래도록 치유하기가 힘든 경우가 많으며, 성격장애, 정신분열로 이어지기도 하고, 심한 경우 자살에 이르기도 한다. 그 피해는 당사자 한 명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가족에게까지 확대되어 온 가족이 고통 속에서 살게 되기도 한다. 그럴 경우 가해 학생은 평생 동안 죄의식을 안고 살아가야 할 수도 있다. 사소한 미움, 복수심 따위에서 시작한 일이 서로에게 평생의 상처로 남게 되는 것이다. 앞의 사례의 경우도 사소한 일이 계기가 되어 시작된 왕따로 인해 피해 학생은 자살을 생각할 정도로 심한 고통을 받았다.

    다행히 심각한 일이 벌어지기 전에 발견되어 문제 해결을 할 수 있었고, 피해 학생은 친구들과의 관계를 회복할 수 있었다. 사실 사소한 데서 시작되는 것인 만큼 초기에 문제를 인지하고 관계를 잘 풀어 갈 수 있다면 심각한 학교 폭력으로까지 발전하지 않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학교와 가정, 사회에서의 관심과 교육이 더욱 필요하다.

    학교폭력은 학생과 교사들의 적극적 의지가 중요하다. 경찰은 117 신고센터 확대 운영, 학교전담경찰관 배치, 선도ㆍ처벌 대상을 명확히 분류해 가해자ㆍ피해자 학생 사후관리 강화, 경찰단계 다이버전(Diversion) 법제화,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활용한 가해학생에 대한 선도ㆍ치료 프로그램 개발과 시행 등 '학생ㆍ학부모 등 수혜자 맞춤형 대책'을 추진은 물론 민(民)·관(官)·학(學) 융합행정으로 학교폭력을 근절해야 효과가 클 것이다.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시민일보.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지영환 지영환

    기자의 인기기사

    뉴스댓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