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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혜숙(영상 번역가)
영화에 대한 아무런 정보도 없이 <셰임>을 보러 갔다. <엑스맨:퍼스트 클래스>에서 매그네토로 나왔던 마이클 패스벤더가 주연으로 나온다는 것 정도만 알았다. 보고 나면 참 슬퍼진다는 얘기를 주워듣고 막연하게 슬픈 사랑 얘기겠거니 싶었다.
영화가 시작되면 공허한 눈빛을 하고 침대에 가만히 누워 있는 브랜든(마이클 패스벤더)의 모습이 한참 동안 카메라에 잡힌다. 눈도 깜박이지 않고 미동도 하지 않아 마치 정지 화면을 보는 듯하다. 그러다 침대에서 일어나 알몸으로 집안을 돌아다니는데 그의 온몸에서 외로움과 쓸쓸함, 공허함이 뚝뚝 떨어진다. 자동응답기를 켜자 여자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나야. 전화 받아. 받으라구.”하지만 브랜든은 무심한 듯 자기 볼일에만 집중한다.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브랜든의 여동생 씨씨(캐리 멀리건)다. 미리 연락도 없이 불쑥 들이닥친 씨씨는 “우린 남매잖아.”라는 이유를 내세우며 시종일관 브랜드한테 애정을 갈구한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브랜든은 씨씨가 매달리면 매달릴수록 더 외면하고 밀어낸다.
브랜든은 밤에 헤어진 애인한테 전화해 계속 “사랑해.”라고 말하며 매달리는 여동생이 못마땅하다. 씨씨가 사랑에 목말라하며 사랑에 집착한다면, 브랜든은 육체적 쾌락에 집착한다. 집이고 회사고 장소를 가리지 않고 자위를 하며, 시간 날 때마다 포르노물을 보고, 콜걸을 불러 욕구를 해결한다.
브랜든과 씨씨는 둘 다 관계 맺기에 서투르다. 육체적 관계에만 몰두하던 브랜든은 정신적 교감도 함께 나눌 수 있는 여성과는 정작 육체적 관계를 못 맺는다. 그렇다고 브랜든이 육체적 관계에만 만족하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끝없는 성욕을 채우면 채울수록 브랜든은 더 깊은 외로움에 함몰된다.
영화 후반부에서 카메라는 두 여성과 쓰리섬 관계를 맺는 브랜든의 모습을 극적인 클로즈업으로 잡는다. 세 사람의 몸이 마구 엉켜서 마치 하나인 듯 보이지만, 관계가 절정으로 달할수록 브랜든의 표정은 점점 더 절망으로 일그러져만 간다. 가장 친밀함을 느껴야 하는 순간에, 브랜든은 오히려 더욱 고립돼 간다.
씨씨 역시 계속 사랑을 갈구하지만, 그럴수록 주체 못할 외로움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한다. 정상적인 인간관계를 맺지 못하는 브랜든과 씨씨를 보고 있자면, 우리들의 모습과 많이 닮아서 마음 한구석이 서늘해진다.
스마트폰과 SNS가 발달하면서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타인과 그물망처럼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 원한다면 누구하고도 쉽게 소통을 할 수 있지만, 이상하게 오히려 더 외롭고 쓸쓸해진다. 인터넷상에서 단문을 주고받으며 교류를 한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오프라인에서는 관계 맺기에 서투르다.
어떨 때는 오프라인에서 만나는 친구나 가족들보다 온라인상에서 언제고 연결이 끊어질 수 있는 타인에게 의존하기도 한다.
브랜든은 자신의 외로움을 남들 앞에서는 결코 드러내지 않는다. 그리고 외롭다고 온몸으로 표현하는 여동생도 살갑게 안아 주지 못한다. 항상 끝없는 외로움을 느끼면서도, 타인의 외로움에는 무심한 모습. 바로 현대인의 쓸쓸한 자화상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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